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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Feb 12. 2024

단편소설
슈퍼 강속구 대통령 1화

1화 : 우리 가문은 절대로 야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 

2025년 프로야구 개막을 알리는 첫 경기의 시구는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

 

"우리 가문은 절대로 절대로 야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의 아버지는 청년시절 동네에 있는 야구연습장을 종종 다니곤 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작고 허름한 녹색 그물로 뒤덮인 동네 구석탱이에 쳐 박혀 있는 야구연습장이었다. 오락실처럼 백 원짜리를 하나 넣은 후 배트를 잡고 타석에 서면 모터소리와 함께 앞쪽 구멍에서 야구공이 날아오는 방식이었다. 그 당시 대통령의 아버지는 결혼을 하기 전이었다. 그날은 괜스레 의기소침하고 기운이 약간 없는 상태였다. 


"설마 공에 맞겠어?"



 가볍게 설레는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갔다. 동전 하나를 넣었다. 동전이 스르륵 동전통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경쾌한 쇠구슬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기계의 전원이 켜지는 소리음이 들렸다. 


'우우웅'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컨베이어 벨트가 고속으로 돌아가는 기계음이 들렸다. 언제 야구공이 날아올지는 몰랐다. 긴장감에 침을 꿀떡 삼켰다. 이마에도 작은 땀방울이 맺혔다. 


'슝!' 


그 순간 총구에서 총알이 발사돼 듯 딱딱한 야구공이 힘차게 날아왔다. 대통령의 아버지는 날아오는 야구공이 무서워 눈을 질끈 감고는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챵!'

 '딱!'

'털썩!' 



 앞의 두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고 잠시 뒤 '털썩'소리가 들렸다. 야구연습장에서 듣기 어려운 소리였다. 흔히 들리는 소리는 헛스윙을 하여 야구공이 포수자리에 부착되어 있는 고무판에 부딪히는 '퍽'소리, 야구공과 알루미늄이 배트의 스위트포인트가 정확히 맞아서 들리는 경쾌한 '탕'소리, 배트에 스치거나 잘못 휘둘렀을 때 들리는 '챵'소리, 그중에 3번째 소리인 '챵'소리가 들려 파울로 예상되겠지만 '딱', '털썩' 소리가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곧바로 두 소리의 원인이 밝혀졌다. 로켓처럼 강한 추진력으로 날아온 야구공은 대통령의 아버지가 휘두른 낡은 알루미늄 배트의 밑에 살짝 부딪혔다. 공은 그 순간 배트의 원심으로 인해 스핀을 먹고 정확히 30도 밑으로 꺾여 날아갔다. 야구공이 향하는 곳은 정확하게 대통령 아버지의 오른쪽 고환이었다. 헐렁한 팬티를 입고 있었던 대통령 아버지의 고환은 최면술사의 최면추처럼 축 쳐져서 대롱대롱 한가하게 매달려있었다. 어떠한 방어자세도 취하지 않은 채로. 맑은 하늘에 벼락이 치듯 '딱' 소리와 함께 야구공과 대통령 아버지의 고환이 충돌했다. 



날아오는 속도와 배트로부터 전달된 원심력에 의해 스핀을 먹은 야구공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마치 태양 같은 행성이 달에게 날아와 충돌하여 달이 박살 나는 것처럼. 전 세계 구슬치기 챔피언이 혼힘을 다해 유리구슬을 날려 정확하게 목표물을 맞혀 산산조각 내듯, 있어서는 안 되는 행성충돌, 야구공-고환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충돌의 순간 - 



난생처음 들어보는 청아한 구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신비로운 통증이 고환으로부터 느껴졌다. 위험, 설렘, 고통,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통증은 종소리가 퍼져나가는 것처럼, 누나 손등을 간지럽히는 잔잔한 연못 물결이 순식간에 폭풍이 된 것처럼- 태평양 한가운데 나비의 날갯짓이 강력한 태풍을 만들듯이 - 고통은 쓰나미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고환이 진원지가 되어 온몸과 정신이 진도 7.0 초강력 지진처럼 흔들렸다. 고환이 괜히 급소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아버지는 1초 정도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바로 '털썩' 소리와 함께 흙바닥에 쓰러져 기절했다. 


그 사이 야구공은 계속 날아와 고무패드가 매달린 벽에 부딪혀 '슈웅-퍽', '슈웅-퍽' 소리를 내며 쓰러진 대통령의 아버지 위로 '툭', '툭', 떨어져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대통령 아버지는 서서히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눈에 들어온 세상은 자신의 시선과 수평이 아닌 비스듬한 수직을 이루고 있었다. 낯선 풍경이었다. 집에서 옆으로 누워 잘 때나 보던 각도가 하늘색 하늘과 함께 보이니 낯설었다. 흙냄새가 났다. 누워있는 바닥이 거칠게 느껴졌다. 흙바닥에 누워있었다. 혀가 따가웠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술을 진탕 먹고 필름이 끊긴 뒤 새벽에 깬 것처럼 머리가 너무 아팠다. 경우 정신을 차리고 혀에 묻은 흙들을 퉤! 퉤! 하고 뱉어냈다. 기절했을 때 혀가 풀려 흙바닥에 닿은 것이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 파악되었다. 


'얼마나 기절해 있었던 거지? 한 시간 정도 기절해 있었나?' 


시간을 봤다. 고작 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시간이 5분밖에 안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몇 시간, 최소한 몇십 분은 기절한 것처럼 두통이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떤 할아버지가 야구장 바깥에 서서 자신을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하.... 사람이 쓰러져있으면 조금 도와주시지....' 


머리도 아프고 혀끝이 붓고 따갑게 아팠다. 그 잠시 혀가 풀려 혀끝이 흙에 닿았다고 해서 혀에 흙독이 올랐던 것이다. 흙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혀는 참으로 예민한 신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키스를 하는 거구나 가장 세밀하고 섬세한 신체의 감각을 나누는 거구나'라고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바로 물을 마시고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깊은 한숨을 쉬웠다.


 '휴-' 


그리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신기한 꿈을 꾸었다. 고추밭에 있었는데 고추를 따고 있었는데 자신의 크고 튼실한 고추가 갑자기 시들더니 상해버렸다. 너무 아쉬워서 울적한 마음에 쪼그려 앉아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자라고 가슴이 커졌다. 그리고 자신의 고추가 뚝 떨어지더니 여자가 되었다. 여자가 되어 너무 깜짝 놀라 꿈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어머!'


그날 이후 대통령의 아버지는 고자가 되었다. 고자가 된 대통령의 아버지는 점점 여자처럼 행동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근육도 빠지고 몸매도 날씬해졌다. 심지어 피부도 여자처럼 보드라워졌다. 고환에서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자 여성화되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아버지는 외동아들에 3대 독자였다. 이제 가문을 이을 씨앗이 사라진 것이었다. 대통령의 아버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대통령의 친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고자가 되어 가문의 대가 끊어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친할머니는 아들을 다시 남자로 만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뱀을 수 십 마리 고아서 먹이고 오소리를 잡아 먹이고 100년 묵은 두꺼비탕, 사슴피, 멧돼지 새끼 고기도 먹이고 해병대 체험도 보내고 태권도, 유도, 택견, 다양한 격투기 훈련도 시켰다. 심리치료를 통해 남성성을 되찾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유명한 한의원에 가서 온몸에 대침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효험이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친할머니는 망연자실한 체 여자가 돼버린 독자를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계천 약초시장을 지나다가 허름한 한약방을 지나쳤다. 할머니에 시선을 사로잡는 글자가 보였다. 


'고환치료제'


강렬한 빨간색의 궁서체였다.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한 것처럼 무릎도 안 좋은 할머니는 한약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흥분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글자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백발의 한약사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갑자기 들어온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데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 고... 고환 치료.. 제 있어요?" 


그제야 할머니의 말을 알아차린 한약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환치료제 있죠." 


할머니가 감격에 가득 차서 말했다.


 "얼마예요? 얼마든지 살게요."


 한약사는 잠시 기다리라며 뒤쪽으로 갔다가 주전자에서 찬물을 하다 받아서 친할머니에게 주었다. 


"환자 상태에 따라서 치료법이 다양합니다.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한약사는 침착하게 물었다. 친할머니는 찬물을 벌컥 들이킨 후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모든 상황을 듣고 한약사는 말했다.


"상황을 듣자 하니 이런 경우에는 약초로는 안될 것 같네요."


약초로 안되다는 말에 친할머니는 깜짝 놀랐다.


"안된다니요.... 왜요! 안 돼도 주세요! 먹어보고 이야기할게요."


친할머니가 역정을 내며 한의사에 약초를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진정하세요. 지금 같은 상황은 이미 고환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약초로는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다만....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방법이요?? 무슨 방법이요!!? 뜸 들이지 말고 얘기해 보세요! 아들이 회복만 된다면 뭐든 못하겠습니까?" 


친할머니는 답답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한약사를 다그쳤다.


"충격요법입니다." 

"충격요법이요?"

"현대 의학에서도 쓰이는 방법으로 파괴된 조직이나 신경에 더 큰 충격을 줘서 완전히 파괴시킨 후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게 하여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체외충격술이라고도 합니다."

"체외충격술.... 방법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죽어 가는 고환에 강력한 충격을 한번 더 주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야구공에 맞은 고환에 다시 한번 강력한 충격을 주면 고환 세포를 다시 살려낼 수 주장이었다. 친할머니도 처음 들어보는 논리였다. 


"하지만 위험이 따릅니다."

"그게 뭔가요?"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는 것이죠. 야구공만큼 강하고 단단한 물체로 정확히 고환을 타격하여야 해요. 만약 실패하여 고환이 깨져버리기라도 한다면 두 번다시 회복될 수 없습니다."

"성공률이 얼마나 되죠?" 

"지금까지 통계적으로 봤을 때 50:50입니다."


친할머니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50:50 확률. 성공하여 고환의 세포에 다시 불꽃이 튀면 대를 이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해... 해봅시다...! 해봐야죠!"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 수요일에 아드님과 함께 오세요.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아 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충격을 주는지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만 그것은 영업비밀이라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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