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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Feb 14. 2017

혼자 있고 싶었을 뿐이다.

엄마에게 상처를 주려던 건 아니었다.



나 혼자 밥 먹고 싶어



일곱 시간 동안 친구와 긴 대화를 나눴다.

일어나자마자 불합격 이메일을 확인하고 우울했던 마음을 친구와 이야기하며 다독였다.

취업 이야기부터 연애 이야기, 인간관계, 책, 팟캐스트, 엄마 이야기까지

일곱 시간 동안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대화를 나눴다.

집에 올 때는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도 좋았다.

우울한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애쓴 보람이 있었고 친구가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유튜브 영상을 간단히 찍고 편집을 했다.

편집을 끝내고 씻고 나오니 배가 고팠다.

평소에는 방에서 밥을 먹지만 오늘은 왠지 거실에서 편안하게 밥을 먹고 싶었다.

엄마가 이제 자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대충 상을 차려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았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면 보는 드라마나 영화들이 정해져 있는 편인데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로맨스가 필요해 2012 가 보고 싶어서 1화를 틀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집에서는 주로 혼자 밥을 먹는다.

가족들과 밥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족이랑 밥을 먹으면 꼭 체했다.

먹고 나면 다 토해냈다. (그렇게 내 폭토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유독 혼자 있고 싶었다.

친구와 나눈 대화를 되새기며 혼자 생각 정리를 하고 싶었고 

엄마가 나와 있으면 왠지 불편해서 제발 엄마가 빨리 잠에 들길 바랬다.


한참 밥을 먹고 있을 때 

"아 오늘따라 잠이 안 오네" 하며 엄마가 거실로 나왔다.

"들어간 지 십 분밖에 안됐어, 좀 더 누워있어 봐"라고 하자

"누우면 오분만에 잠들어야지, 오늘은 물 건너갔어" 하며 냉장고에서 우유와 양주를 꺼내왔다.

못된 마음이지만 순간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다 설명할 기운도 없었고

무엇보다 혼자 생각정리를 하려고 했으니 조용히 밥그릇과 반찬들을 챙겨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왜 들어가?" 엄마의 짜증 섞인 질문이 날아왔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나 오늘은 혼자 먹고 싶어서.."

"뭐? 왜? 또 왜?" 

엄마가 무섭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냥 혼자 밥 먹고 싶었어" 

최대한 감정을 절제해서 대답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그거 병이야 병, 정신병자야 진짜"

엄마는 종종 내게 정신병자라는 단어를 썼다.

내가 가장 견디지 못하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싸우고 싶지도 않았고 소리를 지를 힘도 없었다.


"그래, 엄마는 좋겠다 정신병자 딸 둬서 

근데 나 오늘은 진짜 누구랑도 같이 밥 먹기 싫어"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계속 계속 나를 정신병자라 불렀다.

혼자 있고 싶었을 뿐이다.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을 뿐이다.


더 설명하지 않은 나의 잘못도 있지만

그래도 당신의 딸을 정신병자라 부르는 당신은 대체 날 얼마나 사랑하는 걸까 

또 그렇게 바보 같은 질문을 한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애정표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게 있으니까 :)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밥을 좀 편하게 먹고 싶었을 뿐이다.

며칠째 이어지는 불합격에 마음이 많이 아팠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방으로 들어와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체기가 느껴지지만 오늘은 토하지 않을래.

토까지 하면 내가 너무 불쌍해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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