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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익 Feb 28. 2022

힐러리 한의 '바흐 샤콘느'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BWV 1004)의 샤콘느


J. S. Bach(요한 세바스챤 바흐)가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한 파르티타 2번(BWV 1004) 중 마지막 5번째 곡인 샤콘느.


이 샤콘느가 포함된 파르티타 2번은 1717년에 작곡이 시작되어 1723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이 곡이 완성되기 전에 바흐는 아내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맞이해야 했다. 파르티타 2번의 마지막 곡인 '샤콘느'가 다른 곡들에 비해 유독 심원한 깊이와 유장한 호흡 배태한 은 이 곡 안에 바흐의 비극적 생애가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슈아 벨은 이 작품을 두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다. 영적으로 강력하고 감정적으로 압도적이며 구조적으로 완벽한 작품이다.”라고 예찬한 바 있다.  1877년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바흐의 샤콘느 우연히 접했을 때 그가 남긴 찬사는 아마 작곡가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가 아닌가 싶다. “그[바흐]는 작은 악기[바이올린]를 위해 가장 깊은 생각과 가장 강력한 감정을 악보에 담아 하나의 온전한 세계를 작곡해 냈습니다. 내가 만일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더라면, 황홀경과 땅을 뒤흔드는 것만 같은 경험에 휩싸인 채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브람스는 오른손에 부상을 입은 클라라 슈만을 위해 이 샤콘느를 '왼손을 위한 피아노 연습곡'으로 편곡해 주는데, 이 버전은 원곡의 참맛을 피아노 건반이라는 별천지에서 나름 원숙히 살려낸 훌륭한 버전이다. 나는 아마추어 피아노 연주자이기 때문에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사용하여 이 곡을 연주하는데 원곡자인 바흐와 편곡자인 브람스 모두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0CbAmyCca0c

레온 플라이셔 연주. 브람스가 왼손을 위한 피아노 연주곡으로 편곡한 바흐의 '샤콘느'




브람스의 편곡이 바이올린의 선율과 바흐가 원초에 의도한 대위적 구조를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은 경우도 있다. 바로 페루치오 부조니가 편곡한 바흐의 샤콘느가 그러하다. 부조니는 이 편곡에서 원곡에 존재하지 않는 화성을 추가하기도 했고, '오르간으로서의 피아노'가 갖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원곡을 보다 복잡하고도 화려하게 편곡해 낸 바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yR8YYLnklQ

A. B. 미켈란젤리 연주. 페루치오 부조니가 오르간적 특성을 살려 창의적으로 편곡한 바흐의 '샤콘느'




사실 포스트의 본 목적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나는 피아노를 사랑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만큼, 부조니의 편곡을 바흐의 오리지널 버전보다 더 자주 들어왔고 브람스의 편곡을 더 자주 연주해 왔다. 그러나 오늘 포스트에서 다룰 연주는 바흐의 오리지널 버전이다. 정확히 지적하자면,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Hilary hahn)이 연주하는 바흐의 샤콘느이다. 그의 연주를 듣다 보니 포스트를 쓰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맨 위에 인용된 힐러리 한의 연주는 몇 가지 매우 중요한 특장점을 갖는다.


1) 우선, 음색이 풍부하면서도 악곡을 선명하게 진행하는 데 있어 매우 적합하다.


2) 주제와 변주가 서로 관계 맺도록 하는 방식이 매우 설득력 있다. '통일성 속의 다양성'이 무엇인지를 모범적으로 들려준다고 말할 수 있겠다.


3) 대위적 악절을 정성껏 분석하여 각 성부를 또렷이 드러내준다. 그 과정에서 각 성부의 음색 간에 차이를 조명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Anderszewski의 <디아벨리 변주곡>을 잇는, 근래에 들은 충격적으로 좋은 연주이다. 힐러리 한이 어려운 곡을 빠르게 잘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에 대한 감상평을 완전히 바꾸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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