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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Feb 28. 2017

무통주사는 포기 못해.

1980년 추석 전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을 향하던 순간, 청량리 어느 산부인과에서는 한 산모가 사력을 다해 아이를 낳고 있었다. 남들은 아이를 낳을 때 악을 쓰고 욕도 한다는데, 산모는 4kg이 넘는 아이를 낳으면서도 ‘악’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신음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목울대가 아프도록 눌러 삼켰다. 할머니 의사선생님이 자신을 근처에 있는 이대부속병원으로 보낼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제왕절개 수술비용 100만원이 죽음보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산모는 분만실에 누워서도 계산을 했다. 그리고 답을 얻었다. 집을 얻기 위해 진 빚과 남편의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이루어진 방정식에 수술비 100만원이라는 변수가 더해지면 태어날 아이의 미래도 잿빛이 될 거라고.

큰 병원에 가서 제왕절개를 하라는 말도 듣지 않고, 돈 100만원이 무서워서 자연분만을 하겠다며 끝까지 버티는 산모에게 할머니 의사 선생님은 기계를 이용해서 아이를 꺼내는 방법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대신, 산모와 아이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씀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출생의 고단함과 긴박함을 납작한 뒤통수에 고스란히 간직한 아이, 내가 태어났다. 부모님께서 벌인 일생일대의 도박을 통해 세상에 나오며 나는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돈은 무서운 것이다. 둘째, 도박도 무서운 것이다.




얼마 전, 친구가 수술을 했다. 생사를 오가는 수술은 아니었지만, 전신마취를 하고 30분가량 진행되는 수술이었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수술이 끝난 후에 친구가 겪어야 할 고통이 더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수술실에서 나온 친구는 생각보다 의연하게 고통을 참아냈다. 무지하게 아픈데 옆에 계신 엄마가 걱정돼서 억지로 참는 거냐고 친구에게 살짝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수술을 해서 아픈 거야 당연하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하다고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덜한 고통 앞에서 살짝 당황까지 하며, 친구와 나는 15만 원짜리 무통주사의 위력에 감탄했다. 친구가 고통을 덜 느낀 이유가 무통주사 때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우리는 무통주사의 위력을 찬양했다. 그리고 15만 원짜리 무통주사가 ‘비보험’이라는 사실 앞에서, 무통주사가 일으킨 기적과 의학의 발전이 돈 있는 자에게만 기능한다는 사실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자본주의의 엄혹함에 대한 나의 두려움은 태생적인 건지도 모르겠다. 돈 없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세상, 돈 없으면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도 참아내야 하는 세상에서 내가 느끼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매우 희박해 보이지만 제왕절개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다. 어쩌면 나의 맹장이나 쓸개가 죽기 전에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할지도 모른다. 고통마저도 돈 몇 푼으로 치환되는 세상이다. 돈이 없으면 무통주사도 못 맞는다는 생각이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세상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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