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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 Sep 19. 2023

덴마크 인생학교에서 비빔밥 101인분을 만들다.

쉼과 전환을 위한 안전한 실험실 만들기를 모토로 하는 자유학교는 올해 봄 (관련 기사 : 덴마크 인생학교에 한 달 살기를 왔습니다)에 이어서 가을에 두 번째 덴마크 인생학교(아래 폴케호이스콜레)에 와 있다. 덴마크 인생학교 2기 참여자들과는 보세이 폴케호이스콜레에 한 달 동안의 계획으로 머물고 있으며, 이곳에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학교에서 식당을 책임지고 있는 여러분들의 키친마마 피아입니다. 여러분이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혹시 음식 재료가 식당에서 필요하거나 생일 케이크나 꼭 먹고 싶은 음식 메뉴가 있다면 저에게 이야기해 주세요. 꼭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할 순 없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키친마마의 소개가 있고 난 뒤 비빔밥을 부탁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다음 저녁에 학교 앱 메신저를 통해 키친마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키친마마, 혹시 비빔밥을 먹을 수 있을까요? 한국 학생 6명 모두 돕도록 하겠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비빔밥을 설명하는 페이지와 요리법 링크를 함께 보냈다. 밤 늦은 시간 키친마마에게 답장이 도착했다.


"좋아요. 한번 해 봅시다. 이번 여름에 비빔밥을 5번이나 했거든요. 적당한 날을 찾아봐요. 다음주 목요일 아침 9시 어때요?"


"네 좋아요. 저희 모두 아침 9시에 돕도록 하겠습니다. 학교가 가진 요리법으로 할까요? 아니면 여러분이 요리법을 줄 수 있나요? 보세이에 요리법으로 비빔밥을 경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100인분이 넘는 비빔밥 만들기 프로젝트는 시작이 되었다. 며칠 전에 만들어 둔 김치도 냉장고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었고, 비빔밥에 들어가는 고추장도 하루 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다. 비빔밥 프로젝트의 아침이 왔고, 점심 메뉴로 비빔밥이 나올 것이라고 학교 식당 표지에 크게 쓰여 있었다.             

▲  보세이 학생식당에 점심이 비빔밥임을 알려주는 메뉴판 ⓒ 양석원


가장 먼저 할 일은 100여 명이 먹을 당근과 호박을 자르는 일이다. 도마가 밀리지 않도록 도마 아래 젖은 행주를 깔아 주었고, 그 위에서 모두 열심히 칼질했다. 식당에 스태프들은 아침부터 미리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점심 비빔밥은 온전하게 우리의 책임이었다. 밥과 고기는 오븐에서 미리 준비할 수 있었고, 비빔밥과 같이 내어놓을 샐러드와 반찬들을 준비하는 일도 있었다.


모든 주방 기구가 단체 급식용이었기 때문에 다루는 게 어색했는데, 그때마다 스태프들이 친절하게 다가와서 사용법을 알려주었고, 요리하는 모습을 중간중간 사진으로 찍어서 공유해 주기도 했다.


스태프들의 제안으로 식당 안에는 한국 노래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저녁 음식을 미리 준비하는 동안 콧노래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를 중간 중간 도와주면서 궁금한 것들을 묻고 확인하면서 한순간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마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이, 당근, 호박을 다 썬 다음 이제 볶는 일이 남았는데, 커다란 팬에 넣고 이렇게 저렇게 뒤집기를 여러 번 하고 났더니 당근도 알맞게 익어 갔고 중간마다 소금을 뿌려줬다. 당근을 익힌 다음에는 호박을 익혔는데 순서는 호박이 먼저라고 한다.             

▲  101명의 먹을 비빔밥에 들어갈 호박을 썰어서 큰 팬에 볶는 모습 ⓒ 양석원


이제 와서 어찌하겠는지 다시 호박을 이리저리 잘 볶기 시작했다. 당근과 호박까지는 어느 정도 수월했는데, 의지의 한국인들은 비빔밥 위에 올릴 달걀부침을 하기로 한다. 그렇게 계란 다섯 판을 다시 거대한 팬에 올려놓고 달걀부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키친마마는 몇 번이고 비빔밥을 만드는 방법에 관해서 묻고 확인했다.


"우리도 배우고 싶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의 방법을 알려주고, 여러분들의 방법으로 만들어 보세요."


미리 만들어 둔 김치를 가지고 와서 맛을 본 스태프는 연달아서 "음~ 음~ 음~" 감탄사를 내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켰다.


"오늘 밤 퇴근하고 남편이랑 키스를 할 때 우리 남편이 무엇을 먹고 왔냐고 물을 것 같기는 하지만, 정말 맛이 있네요. 우리가 만든 거랑 정말 맛이 완전히 달라요."


키친마마는 아이스브레이킹 타임이 필요하다며 아이스크림을 가져다주었다. 

▲  아이스 브레이킹 타임이 필요하다며 키친마마가 준 아이스크림을 모아서 기념 사진 ⓒ 양석원


"자, 이제 점심 준비까지 15분이 남았습니다."


키친마마가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이제 준비된 재료들을 잘 담아서 차려놓을 준비를 할 차례이다. 글루텐을 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간장을 사용할 때도 주의를 해야 했고 요리에도 포스트잇을 붙여서 구분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잘 차려진 비빔밥 하나를 예시로 미리 만들어 두고, 비빔밥 재료들을 나름 차례로 한둘씩 놓아두었다.             

▲  덴마크 인생학교 101명의 구성원들이 모두 맛있게 즐긴 비빔밥 정식 ⓒ 양석원


점심시간이 다 되어 사람들이 한둘씩 줄을 지어서 비빔밥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제 비빔밥에 화룡점정 고추장을 내어놓을 시간이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나. 어제 미리 만들어 둔 고추장을 고기를 만들 때 다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소통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고추장 양념이 고기에 배었으니 두고, 고추장은 나중에 양념으로 따로 준비해서 비빔밥과 함께 섞어 먹는 것이 우리의 비빔밥 먹는 방법임을 알려주었다. 맛있는 삶을 위한 소중한 교훈을 하나 남겨둔 셈이다.


키친마마가 학교 전체에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인 게스트 요리사들. 오늘 우리의 한국인 게스트 요리사들이 보세이 식당에 점심으로 비빔밥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하나 둘 씩 비빔밥을 완성해서 식당 식탁에 둘러앉아서 비빔밥을 먹기 시작했다. 음식을 준비한 우리도 가장 먼저 그리고 제대로 비빔밥을 준비해서 열심히 비벼서 한 숟가락을 했을 때 모두가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국인 학생들과 비빔밥을 먹을 때도 포크가 나이프를 사용하는 덴마크 친구들과 차이를 눈 앞에서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고, 교장선생님을 비롯해서 학교에 근무하는 다른 분들이 특히 비빔밥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며 연신 한국 학생들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김치는 아주 맛있는데, 덴마크 사람들을 위해서 조금 만 더 덜 맵게 해 달라는 특별하고 간곡한 주문도 들어왔다. 비빔밥에 고추장 맛을 아는 니콜라스 선생님은 고추장이 없어서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비빔밥과 한국의 매운맛을 좋아하는 탓에 아마도 자신이 다른 나라에 잘못 태어난 것 같다는 농담을 했다. 


덴마크 친구들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비빔밥을 정말 맛있게 먹었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우리들 역시나 흐믓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101명의 비빔밥을 준비하는데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꼬박 3시간의 시간이 걸린 것 같은데, 그 모든 시간과 노력을 보답하듯이 식사를 마친 덴마크 친구들이 너무 맛있게 먹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계속 건네주었다.


비빔밥 만들기 프로젝트는 원래 덴마크 인생학교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미리 계획하지 않았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이만큼 문화를 잘 전달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경험이 없는 것 같다.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 언어도 문화도 서로 다르지만 서로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행복이 그다지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덴마크 사람들은 왜 행복한가요?' 같은 질문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덴마크 인생학교 이야기는 오마이뉴스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general_list.aspx?SRS_CD=0000016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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