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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나 Mar 19. 2024

단편: 교각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기억 안 나는 낡은 교량의 교각들 그늘 밑에서 강에 반사되는 빛을 보았고, 주위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나한테조차 하지 못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발화했다. 교량은 침범당하지 않도록 나를 보호해주는 유일한 시공간이었으며 나는 교각들 사이사이를 거닐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친구들과 달리다가도 춤을 추고, 틈틈이 교량 근처 곳곳에 숨겨둔 노트들을 꺼내어 나에게 없으면 안 될 언어를 알 수 없는 마음에 이끌리듯 만들어냈다. 나는 숨이 턱턱 막힐 때마다 더 자주 교량에 갔고 나이가 자라갈 수록 나는 그곳에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교각에게만은 기댈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성인이라는 나이가 어색한 나이가 됐고, 그때 꿨던 꿈이 기억에 나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없었나 생각이 들게 만드는 텅 빈 기억을 지나치면서 나는 스쳐 들어보지도 않았던 회사의 계약직이 되었다. 여태껏 해온 일보다 편했지만 그동안 혼자 너무 많은 일을 감당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교량이 있는 길을 돌아 출근했다. 한결 같은 날이 반복될 줄 알았는데 우연히 어릴 때 살았던 동네가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되어 교량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갑자기 들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깜빡이는 사태에 처한 기분이었지만 너무 많은 마음을 담았던 교량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러 가기 위해 다시는 올 일 없을 것 같았던 곳에 다시 갔다. 아는 이가 한 명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교량이 무너지는 모습을 건조하게 본 뒤에도 나는 낡은 구조물이나 폐허를 내 마음에 축조시켰다. 몇 시간 동안 유기라는 표현으로 정의될 만한 곳들을 찾아내어 그곳을 샅샅이 돌아다니는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낡은 구조를 가졌다고 해서 나의 교량이 생각나는 것도 아닌데도.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전국 곳곳의 폐허와 낡은 곳을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던 시야를 틔우고 영원히 알 수 없을 수 있었던 사람들과 이어졌다. 헤진 공간들을 기록한 책이 다섯 권이 넘어갔다. 나는 나를 다시 담아둘 공간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안다. 이제 나를 담아두는 것은 내가 되었다. 나는 무너지지 않고 기꺼이 무너짐 당하는 교량에게 그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는 곧은 마음을 담고 무너져도 폐허가 되어도 나에게 방문하는 세계들을 상상한다. 상상에 발 디디게 될 매 순간마다 나의 생은 산산이 신비로워지며 오늘도 살면서 들어보지 못한 곳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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