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끝날 때는 또다시-

by 햄짱

이것은 일기이다. 일기란 하루 일과를 담는 글로, 으레 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개인적인 기록에 불과한 것이라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기장은 보여지는 곳에 둠으로써 그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한다는 클리셰를 잊으면 안 된다. 가끔은 사소한 외침이 가장 거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그런 믿음을 좋아한다.



글이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해서 이 일기를 쓸 수 있었다. 평생 글을 쓰며 살 줄 알았다. 나와 함께한 글의 역사를 회고했던 모든 순간에 나는 ‘기억나지 않았던 순간부터 글을 썼다’라고 적었다. 그것이 나와 글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명확한 문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월감과 비슷한 감상도 있었다. 100 레벨이 넘었지만 아직도 브론즈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내 게임 실력을 통해, 시간이 능력을 증명하는 게 아님을 배웠음에도 글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나는 글을 거의 읽지 못했고, 쓰지도 않았다. 사실 쓰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솔해지기가 두려웠다. 사실 솔직함이란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잠깐 회사를 다니며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던 말이 있다.


사람들은 내가 보여주는 대로 믿는다


나는 모든 것이 두려운 학생에 불과했지만, 긴장한 모습을 숨기고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다들 날 프로로 받아들여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모두 내가 학생답지 않다고 말했다. 돈을 받고 일하는 세계에서 그것은 칭찬이었고, 끝날 무렵엔 생각 이상으로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확신은 신념이 되었고, 이제 나는 내가 만든 이 ‘이미지 이론’을 맹신한다. 사실 내용을 따져 보면 별 게 아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나의 표상 대신 이상적인 나의 모습으로 본인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된다.



주변 사람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칭찬할 때 내가 바라는 바로 그 모습을 설명하는 수식어를 붙이면 된다고 한다. 직장 동료에게 ‘항상 성실한’ 혜민 씨, 이렇게 말하게 되면 혜민 씨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정말 내 앞에서 성실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게 된다나. 멋진 삶을 살기 위해 멋진 나를 연기하면 정말 멋져진다는 알고리즘이 참 이상하게 느껴지다가도, 막상 해보면 진짜 된다. 자고로 멀티 페르소나 시대가 도래했으니 자아 한 두 개로는 세상 살기 참 팍팍해졌다. 그렇지만 가끔은 헷갈린다. 뭐가 진짜 나인지. 어떤 상황에 어떤 페르소나를 꺼내야 하는지. 멋진 내가 너무 좋아서, 바닥을 치는 나는 보여주기 껄끄러운 것이다.




멋진 나도 진솔한 나이다. 나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다 객관적인 사실에 가까울 수도 있다. 감정은 물감처럼 섞이는 것이기 때문에 가끔 희석되고 바래질 때가 있으므로, 멋진 결과가 증명하는 내가 진짜 나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이 비참할 때의 나보다 남에게 꺼내 보이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동정받는 것도 싫고, 위로받는 것도 싫고, 기왕이면 칭찬받고 싶다. 그래서 환영받지 못하게 된 ‘불쌍한 나’는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사실 내가 굳이 찾지 않은 거다. 보여주기 싫으니까. 보여주지 않으면 나는 멋진 나로만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글을 쓸 수 없었다. 글은 대개 결핍에서 시작하므로, 결핍이 없는 멋진 나는 글을 쓰기 부적합했다. 아무리 진솔하더라도 완벽한 사람은 작가로서 완벽할 수 없다. 일단 재미가 없다. 금수저로 태어난 주인공이 외모로 꼬셔서 애인 만들고, 백수로 놀면서 돈 펑펑 쓰다가100살이 되어 모두가 지켜보는 집에서 평안하게 눈 감는 소설을 누가 볼까? 수필이든 일기든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한 교수님께서 본인은 새벽 5시부터 운동을 하고 하루종일 일을 하다가 저녁 시간엔 중요한 사람을 만나고 밤에는 과제를 검토하고 아무튼 일 분 일초가 아까운 삶을 살고 있다며 나를 불러다가 너는 어떤 삶을 사니, 질문한 적이 있다. 다행히 그날은 새벽에 검도가 가고 싶어서 6시부터 일어나 검도장에 갔다가 바로 등교한 엄청난 하루였기 때문에 교수님을 당황시킬 수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그런 저명하신 교수님의 하루나 건전했던 내 하루나 글로 쓰기엔 다소 부적합할 것이다. 모든 글에는 갈등이 필요하다. 실패와 눈물과 다툼이 있어야 재미도 감동도 있을 수 있다. 글에서 진솔하다는 것은, 내가 가진 굴곡을 드러내는 것이다. 별로 멋지진 않지만, 훨씬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사람마다 글이 어려운 이유가 다를 것이다. 형식의 문제일 수도 있고, 마음가짐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나에겐 용기의 문제였다. 어쩌면 과거에 썼던 글만큼 잘 쓰지 못할 것이라는 부담감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이렇게 장황하게 변명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글은 쓰다 보니 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까워졌고, 그래서 원래의 목적과도 많이 멀어졌다. 글을 쓰려고 보니 글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고, 나처럼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하다 보면 나 또한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좋은 글이란 그래서 어떻게 해야 글이 좀 쉽게 느껴지는지 알려 주며 끝나야 정석이지만, 이모티콘만 남발하는 네이버 블로그들처럼 오늘따라 결론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냥 쉽게 쓰려고 한다. 글은 쓰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이니까. 일단 일기든 뭐든 쓰면 된다. 쓰다 보면 나름의 형식도 생기고, 쓰고 싶은 주제도 생긴다. 나 또한 가장 부끄러운 나를 보여줄 용기가 생길 때까지, 일기를 쓰고자 한다. 이것은 나의 조용한 다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울림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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