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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들 Feb 05. 2024

똑같은 갈등, 다른 선택

힘겨운 갈등 상황에서도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갈등을 겪을 때 마음이 어떤가. 결코 편안하지도 느긋하지도 않다. 화와 짜증이 올라오고 불안해지고 걱정이 되고 속이 답답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수도 있고, 온몸이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고통 속으로 빠져 든다. 불일치와 차이,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이 편할리 없다. 그래서 갈등을 싫어하고 피하고만 싶어 진다.


다르니까 살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것은 새로운 것이고,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세상 사람이 모두 똑같다면, 이 사회, 아니 나라는 존재 자체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걸 못하지만 다른 사람은 잘하고, 나에게 불편한 것이 다른 사람에겐 전혀 불편하지 않아서, 각자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


이 모든 차이와 불일치가 도가니를 이루어서 세계를 지탱해 가고 있고, 그로 인한 혜택을 누리면서 지금 여기에서 생활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갈등은 어쩔 수 없기도 하고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 요소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갈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불쾌하고도 불행한 감정을 어느 정도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감정의 이면에 존재하는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춰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 자체에 휘둘리기보다, 그 감정을 들여다 보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갈등을 겪는 건 힘겨운 일이지만, 그 힘겨움 속에서도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부부 갈등이 모두 사랑과 전쟁일 수는 없지


한 번은 호기심에 부부 갈등에 대한 논문을 읽은 적이 있었다. 배우자의 외도로 인해 위기를 겪은 부부를 연구한 논문이었다. 그 논문을 읽을 당시 나는 결혼 전이었기 때문에, 배우자가 외도를 하는 일이 생기면 이 관계는 무조건 파멸이라고 생각했었다. 부인(혹은 남편)은 분노하고 자신을 배신한 남편(아내)을 미워하고 응징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신을 당한 여자는 억울한 피해자가 되고, 그 고통은 보상받아야 한다고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드라마의 영향이 아마도 클 것이다.


논문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 악감정을 가진 채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면서 이혼을 하는 부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부부는 하나의 유형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여러 경우 중 일부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배우자의 불륜 후 이전보다 훨씬 더욱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어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결혼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어도, 배우자와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결혼 생활과 서로에 대해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논문에서 뿐 아니라, 심리치료 모임에 참여하면서 부부간에 상처를 주고받은 경험을 여러 번 나눌 수 있었다. 남편의 외도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무조건 이혼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배우자의 외도는 분명 뼈아픈 경험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응징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이런 불운한 상황을 겪으면 인생이 끝나는 줄로만 알았던 나의 편협한 생각이 또 한 번 깨지는 순간이었다.


갈등으로 더욱 깊게 알게 되는 것들


어쩌다 갈등이 다가오면 마음이 꽤 괴롭다. 그러면서도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에 관심을 집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갈등 상대와 평소보다 더 많이 대화와 교류를 하게 되고(내면의 갈등일 때는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하게 됨)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정보가 오고 가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많아진다.


나를 괴롭게 만드는 상사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생각하고 이야기하게 된다. 적이라고 생각되는 상대를 자세히 파악하다 보면, 다른 누구보다 친숙하게 여겨지고, 그의 존재를 진정으로 인정하게 되기도 한다. 남편을 흉보고 서운함을 토로하고 불평을 하는 아내가 자신의 남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그에게 기댄다. 사춘기 자녀와 트러블을 겪으면서 서로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부정적인 관계는 고착되거나 더욱 악화될 것이다. 하지만 깊게 관여하고 생각하는 동안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그 갈등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하여 이전에는 결코 가보지 못했을 길을 걸어가 보게 된다.


이해할 수 없었던 상사에 대해 열받으면서도 골똘히 생각해 보면 리더의 상황과 입장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이해하면서 나에게 숨겨져 있던 그림자를 파악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가족 내에서 갈등을 겪으면서 서로를 소유하려는 마음을 거두고, 각자의 삶을 두 발로 서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독립성을 갖추게 되기도 한다.


갈등을 겪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갈등 속에 빠져서 같은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며 허우적 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정적인 패턴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그 갈등을 디딤돌 삼아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훌쩍 도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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