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자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부자로 만들어주는 삶의 다양한 측면

by 한들

대학 입학은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그동안 답답했던 수험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의 기쁨은 정말 짜릿했다. 좁게만 느껴졌던 촌 동네를 떠나 서울에 있는 학교에 가게 되어서 정말 설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에 들어간 후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새로운 생활 방식에 적응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듣도 보도 못했던 다양한 문화적 경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놀라웠다. 영화나 연극에서부터 시작해서 사회적 이슈까지 다방면의 주제를 자유롭게 말하는 광경을 보고는 조금 위축되었다. 전공이 언론정보학이었기에 더 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수업 시간에 ‘문화자본’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었다. ‘피에르 부르디외’라는 기상천외한 학자의 이름과 함께. 자본까지는 사회 시간에 교과서로 배웠다. ‘3대 생산 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으로 외웠다. 자본은 돈을 의미했다. 그런데 문화자본은 무엇인가.


이 개념에 대해 배우자, 우리 집에는 돈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문화자본도 거의 축적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 부모님이 갑자기 돈을 많이 벌어서 떼부자가 되었어도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생활 방식을 선택할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부터 결심했다. 금전 자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문화자본을 많이 쌓겠다고 말이다. 그때부터 영화랑 책을 엄청 보고, 미술관도 다니고, 공연도 많이 보러 다녔다. 학교에서 하는 행사는 모두 좇아 다녔다. 우연히도 문화생활을 공짜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 그런 것을 추구하며 좇아 다니니까 그런 기회가 열렸을 것이다.


대학원에 들어간 후 더 많은 문화 자본을 쌓을 수 있었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어려운 책’과 영어로 된 원서를 읽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나를 구분 지어 주었다. 남보다 뛰어나다는 기분에 우쭐해지기도 했다. 이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가지게 된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잠시 스쳐 지나가고야 말았다. 대신 그전까지 가 닿을 수 없었던 깊이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오랫동안 나를 매료시켰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해외에 자주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일본, 말레이시아, 북유럽, 미국 등 다양한 나라로 여행을 다녔다. 비행기 타고 호텔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해졌고, 여러 문화권에 놓여 있어도 쫄지(?) 않는 그런 배포도 생겼다.


이런 경험은 삶을 풍부하게 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절대적인 액수의 금전이 있어야 잘 살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보다는 시간을 보내는 문화 경험이 삶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물건을 사는 것보다는 경험을 하는데 더 많은 투자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은 몸이 메어 있기 때문에 문화생활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가족이랑 여행을 자주 떠나는 편이다. 한 해에 한 번씩은 외국에 나가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코로나 이후 여행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사회 자본이라는 것도 있었다. 한 사람이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가 자본으로 환산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인간관계를 잘 맺고 좋은 사람 속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는 것이다.


또 보니까 긍정심리 자본이라는 것도 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 또 잘 산다는 것이다. 낙관적이고, 희망을 가슴에 품고, 자신이 뭘 하든 잘할 것이라고 믿으며,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일어나는 심리적 특성이 자본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을 잘 살게 하는 많은 요소가 다 자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절대적인 액수의 금전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꽤 괜찮은 부자일 수 있다. 매일매일 안정적이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생활 방식, 그 간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 능력, 좋아하는 책을 고르고 구매할 수 있는 여유, 하루 종일 아이와 뒹굴거릴 수 있는 시간, 글과 이미지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창작력, 다양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시야, 지식을 창출하고 유통할 수 있는 수단… 이 모든 것의 총합이 내가 가진 자본이다. 단순히 통장에 찍힌 액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다중 자본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