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싱가포르 살아보기
조식을 먹고 준비를 한 뒤 도착한 곳은 '티옹바루 로드'였다.
가끔 동네에서 산책을 하다가도 내가 다른 지역 주민이거나 외국인이라면 우리 동네에 와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사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참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만큼 지역 특유의 일상을 느낄 수 있는 곳을 가는 걸 좋아하는데, 티옹바루 로드가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라는 블로그 글을 보고 바로 가기로 결정했다.
티옹바루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8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버텨온 5층짜리 낮은 아파트들과 함께 싱가포르에 정착한 화교 1세대의 삶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문화유산 트레일지역(Heritage Trail)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출처] [싱가포르 골목탐방-티옹바루(1)]가장 오래된 거리 하지만 가장 핫한 곳 | 사면냥가)
관광지는 아닌 거주지역인데, 그래서 내가 더 좋아하는 곳이었다.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자 '티옹바루 마켓'이라는 곳이 보였다. 들어서니 마치 아파트 단지 상가나 플라자 같은 느낌이었다. 꽃집, 정육점 등등이 있고 2층에는 푸드코트처럼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티옹바루 마켓을 나와 본격적인 동네 구경을 했다. 높지 않은 아파트 단지가 곳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싱가포르는 곳곳에 아파트가 참 많은데, 한국처럼 정형화된 느낌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외형이어서 아파트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낮은 아파트들을 보니 훨씬 아기자기한 동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네를 걷다 보니 (가본 적은 없지만) 유럽에 온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싱가포르에 산다면 이곳에서 살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싱가포르의 아파트(고층 아파트도 마찬가지)에는 각 집마다 밖에 이렇게 빨래를 널어놓는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신기한 광경이다.
구경하다가 너무 덥고 당이 떨어져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외관도 참 앙증맞은 예쁜 가게였다.
안에 들어가니 내부가 크지 않았지만 사람이 꽤 있었다.
'쿠키앤크림' 맛 아이스크림을 받아 바깥 구경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나처럼 관광객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꽤 많이 보였다. 역시 사람구경은 참 재미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더위를 잠시 식히고, 바로 옆에 있는 소품샵을 갔다.
누가 봐도 싱가포르에서 산 걸 바로 알 것만 같은 책들과 귀여운 스타일의 소품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하나 살까 했는데 가격이 참 사악했다. 소품샵까지 구경하고 나니 이 동네는 콘셉트가 '아기자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옹바루 동네 한 바퀴를 마치고 슬슬 배고파져서 '센텍시티 쇼핑몰'로 향했다.
목이 말랐기에 센텍시티 안에 있는 자판기 오렌지 주스를 한번 더 먹었다. 오렌지주스 자판기는 한국에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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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라서 웬만하면 한 끼는 밥을 먹어줘야 한다.
싱가포르 음식을 찾아보면서 '송파바쿠테'가 유명하다길래 찾아봤는데 처음에는 사진만 보고 크게 먹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침 국물에 밥이 너무나도 간절했기에 센텍시티 안에 있는 송파바쿠테를 갔다.
어차피 나는 먹는 양이 적어서 pork ribs soup와 plain rice만 시켰는데,
밥은 양이 많았고 soup은 양이 좀 적은 느낌이라 아쉬웠지만 국물에 밥을 먹은 것 자체로도 행복했다.
호텔에서 먹는 조식을 제외하고 여행 와서 처음으로 밥다운 밥을 먹은 느낌이었다. (난 정말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싱가포르에 와서 국물에 밥을 먹고 싶다면 송파바쿠테 추천한다. 나처럼 양이 적은 편이 아니라면 다른 메뉴를 곁들여도 좋을 듯하다.
밥을 먹고 센텍시티 쇼핑몰을 구경했다. 싱가포르는 밖과 안의 온도차가 굉장히 크다. 실내에는 냉방 시스템이 너무 잘되어 있어서 더위를 피하기에 딱이다.
시원하게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1층을 걸어 다니던 중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판촉 화장품을 나눠주던 가게 직원이 나에게 판촉물을 주면서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가 내 얼굴만 봐도 한국인인 걸 알다니, 신기하면서도 왠지 그 직원도 한국인인 것 같기도 해서 유심히 쳐다봤다.(하지만 자세히 보니 한국인은 아닌 것 같았다.)
나한테 사용해 보라며 판촉용 로션을 주면서 따뜻하게 인사해 주었는데,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누가 나에게 한국인인 걸 알아봐 주는 것만으로도 새삼스레 따스함을 느꼈다.(타국에서 혼자 여행하다 보니 별 일 아닌 것 같은 일들에도 감성적이어진다.)
센텍시티에서 시원한 아이쇼핑을 마치고, 싱가포르 와서 꼭 먹어보고 싶었던 '사테'를 사러 갔다.
그 유명하다는 '라우파삿 사테거리'로.
사테가 그렇게 맛있다길래 엄청나게 기대를 했다. 맥주에 함께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았다.
사테거리에 도착하니 사람이 바글바글 했다. 극 내향인인 나는 어차피 사테거리에서 혼자 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사람이 많았다.
(평소 혼밥은 꽤 하지만, 이 광경을 마주한 순간 더더욱 포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7번&8번 집으로 갔는데, 한국인인 걸 바로 아는 느낌이었다.(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왔길래..)
포장되냐고 하니, "괜찮아, 괜찮아"라고 얘기해 준 직원님. 얼떨결에 예상치 못하게 들어버린 한국어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혼자 먹기에 많은 것 같긴 했지만 선택지가 없어서 가장 기본인 세트(소, 닭, 새우로 구성된 사테)로 골랐다.
포장된 사테를 받고, 나는 마리나 베이 샌즈로 야경을 보러 갔다. 멀리서 보이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은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을 실감 나게 했다.
마리나 베이 샌즈 몰에 도착해 올라가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야경 감상 장소가 나왔다.
와... 이 말 밖에 안 나올 정도로 황홀한 풍경. 오랜만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지금껏 갔던 어느 여행 장소보다도 이 야경을 보니 내가 정말 싱가포르에 왔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와 천천히 다가갔는데 근처 바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팝송들도 나왔고 야경과 노래는 완벽한 일체였다.
싱가포르 야경이 최고라고 했는데, 직접 내 두 눈으로 보고 나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나는 야경을 진득하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근처에 있던 사람들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거의 1시간 가까이 그곳에 앉아 에어팟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야경을 눈에 담았다.
혼자 해외여행을 하니 물론 자유롭고 행복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외롭기도 하고, 소통이 안 되는 영어로 힘들기도 했다.
짧은 시간 안에 희로애락을 조금씩 느끼면서 여행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걸 다시 한번 깨닫던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이렇게 야경을 보니 외롭고 힘들었던 부분이 싹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곳으로 여행을 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 정도로 야경은 황홀했다.
혼자 여행을 와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의 내 사진은 찍지 않았는데, 이 순간은 꼭 남겨야겠다 싶어 옆에 있던 중국인 부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이 순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영어 표현도 외웠는데 용기 내어 요긴하게 잘 썼다.)
그렇게 한참을 야경과 함께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와 포장해 온 사테를 펼쳤다. 생각보다도 양이 더 많았다. 새우와 닭 사테가 특히 더 맛있었다. 맥주 안주로는 딱이다. 맛있게 먹고 5일 차 여행도 마무리.
5일 차 여행 한 줄 후기
- 혼자 하는 여행이라 외로웠지만 그만큼 또 행복한 하루였다.
싱가포르 여행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날이다. 어제도 열심히 돌아다녀서 오늘은 천천히 돌아다니기로 했다.
첫 번째로 간 곳은 '키노쿠니야 서점'.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고 하며 일본 서점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무슨 서점인가 싶었지만 외국 서점의 분위기를 느껴보자는 의미로 가게 됐다. 서점만의 특유의 분위기가 있으니까.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많았다. 음반에 팬시까지 한 곳에 모여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 교보문고 같은 곳이었다.
한국에 가서 펼치기나 할까 싶어서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또 낭만을 버리지 못하는 나는 결국 책 한 권을 구매했다.
이 책 2권 중에 고민했는데, 하나는 자기 계발에 대한 귀여운 책이었고(왼쪽), 또 다른 하나는 전 날 티옹바루 소품샵에서도 봤던 싱가포르 요리에 대한 일러스트 책이었다(오른쪽).
어차피 둘 다 못 읽을 영어라면 그림이 많은 게 낫지 않을까 싶어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자기 계발 책을 샀다. 인생에서 중요한 여러 가지 부분을 각 테마별로 설명한 책이었는데, 한국의 자기 계발 서적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도 궁금했고 지금 나에게 좀 더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구매했다. 생각날 때마다 꾸준히 들춰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훗날 한 페이지를 번역 없이 이해하는 내 모습도 잠시나마 상상해 보았다.
한국에 와서도 사실 책은 거의 보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싱가포르 간 기념이니 만족한다.
살다가 힘들 때 싱가포르 여행을 추억하면서 한 번씩 꺼내보려고 한다.
서점에서 한국 음반과 한국어 책도 한참 구경하고, 팬시 파는 곳에 가서 작은 노트 3권도 샀다.
그렇게 서점 투어를 마치고, '아이온오차드 몰'을 구경했다. 아이온오차드 몰은 내가 좋아하는 래플스 시티나 다른 쇼핑몰과는 달리 확실히 명품 브랜드가 많은 곳이었다. 들어가서 편하게 구경하기에도 부담스러워서 짧게 돌아보고 배가 고파 식당가로 향했다.
역시 영락없는 한국인은 오늘도 밥을 먹어야 했다. '몬스터 커리'라는 식당에서 매운 치킨 커리를 먹었다.
겉으로만 봤을 때와는 다르게 치킨 커리는 양이 꽤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콤했고, 또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느끼했다.(그래서 다 먹지는 못했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싱가포르가 디저트가 맛있다고 해서, 떠나기 전에 빵은 꼭 먹어봐야지, 했는데 마침 싱가포르에서 대중적인 베이커리 2개(브레드톡, 라벤더)가 모두 오차드몰에 있길래 2군데를 모두 들려 빵을 샀다. 빵은 한국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아이온오차드 몰에서 나와 지인들에게 줄 기념품을 사기 위해 '무스타파 센터'로 향했다.
싱가포르 여행하면서 숙소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계속 버스만 타고 다니다가 MRT(지하철)을 처음으로 타보았다. 내가 많이 헤맬까 봐 걱정했는데, 구글맵 따라 타보니 오히려 버스보다도 훨씬 편한 느낌이었다.
버스보다 배차간격도 짧았다. 진작 MRT 많이 좀 탈 걸 그랬다.
리틀인디아 역에 내려 무스타파 센터에 도착했다.
무스타파 센터는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데, 없는 게 없을 정도로 굉장히 많은 물건들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막상 도착하니 리틀인디아 근처라 그런지, 인도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오기 전에는 잘 정돈된 백화점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잡화 매장 같은 느낌이 강했다.
식품은 물론 약, 화장품, 전자기기, 시계, 금이나 은으로 된 액세서리도 있었다.
물건 종류와 양은 어마무시하게 많았고 가격도 저렴한 것 같았는데 뭔가 또다시 오진 않을 것 같다. 쏟아지는 물건만큼 정신이 없었달까.
나는 한국인 필수 쇼핑리스트라는 호랑이연고, 해피히포 초콜릿, 카야잼, 칠리크랩 소스와 내가 먹고 싶어서 산 라즈베리티와 레몬티를 구매했다.
생각보다 사고 싶은 물건은 많지 않았다. 바세린은 한국에서도 구할 수 있었고 사려던 알카엘처 소화제는 무스타파 센터 내에 약국에 있다고 하는데 다시 약국으로 가려니 사람은 많고 도무지 나오지가 않았다.
거의 2시간~3시간 가까이 돌아다녔던 것 같다. 다리가 너무 아팠다.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고 직원분이 하나씩 계산해 주었는데, 빨리빨리 한국인(난 심지어 급한 성격이 아닌데도)은 정말 속이 터졌다.
특이한 건 구매한 물건은 하나씩 봉투에 담아 케이블타이로 묶어준다.(숙소 가서 짐 정리하면서 하나씩 풀어보다가 잘 안 풀려서 그냥 비닐봉지를 손으로 찢었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숙소에 갈까 하다가, 아쉬운 마음에 어제 본 야경을 다시 한번 보러 가기로 했다.
다리가 너무 아프고 짐이 무거웠지만, 5분이라도 마지막 야경을 눈에 담고 싶었다.
야경을 다시 봐도 감동은 컸다. 마음이 벅차오르는 느낌도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오늘이 이 야경을 보는 마지막이구나, 아쉬운 감정도 들었다.
'여행이 이렇게 끝나가는구나...'
숙소로 돌아와 편의점에서 구매한 스프라이트와 함께 아이온오차드몰에서 산 빵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싱가포르 오면 먹어봐야 한다는 '쥐포빵'도 먹었는데 나는 안에 닭고기가 들어간 쥐포빵(chicken floss bun)을 골랐다. 위에 가쓰오부시 같은 느낌의 토핑이 올려져 있다. 짭짤한 맛이 났다.
쥐포빵 말고도 홍콩 번, 마블 초코빵, 시나몬 롤도 샀는데 내 입맛에는 홍콩 번이 가장 맛있었다.
소소한 야식과 함께 싱가포르의 마지막 밤을 정리했다.
6일 차 여행 한 줄 후기
-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했던 나에게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낀 만큼 앞으로 내 삶에 잘 녹여내면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