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밥 놓고 간다”
“감사”
'2주간 방에서 오로지 혼자 있게 되었다.'
3월경 코로나 의료지원을 했고 정해진 기간의 근무가 종료되어 2주간 화장실이 딸린 방에서 자가 모니터링을 했었다. 하루 2번 정해진 시간에 체온을 측정해서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다행히 증상은 없었으나 방심할 순 없었다. 창밖의 나무들은 내 심정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예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집순이지만 역시 선택과 의무는 다르다. 평소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등산을 가고 싶을 정도였다.
당시 창문에서 내려다보며 찍었던 화질 구린 벚꽃 사진
방에 물을 넉넉히 쟁여놨고 식사는 가족이 챙겨줬다. 그 외 도움이 필요할 땐 가족 대화방에 메시지를 남겼고, 주로 개학이 미뤄진 동생이 챙겨줬다. 답답하지만 창문을 열어 자주 환기했고 폰과 노트북이 있으니 버틸만했다. 전자기기의 소중함을 매일 깨달았다.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겨워질 즈음 집중이 잘되는 오전엔 노트북으로 독서를 하기로 했다.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원하는 전자책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은 하이라이트 표시만 해놓다가 결국은 자동 반납되어 떠날 문장들이 아쉬워 기록했다. 주로 에세이를 읽게 된다. 쉽게 읽히기도 하고 작가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솔직함이 좋아서다.
오후에는 ○플릭스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봤다. 어렸을 때 봤던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면 그때는 마냥 재밌기만 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마음이 평화로워지며 위로를 받아 자꾸 찾아보게 된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으면 노트북 화면에 띄우고 그림을 그렸는데, 처음으로 OST까지 틀고 그려봤더니 너무 좋았다. 온전히 그리는데 몰두하여 잡념이 사라지고 다 그리고 나면 뿌듯하기까지 했다. 대학생 때부터 방학이 오면 자기만족으로 그림을 그렸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그리기를 좋아해서 이렇게나마 해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림실력은 별로라 도구만 찍었다ㅎ
하루는 정말 오랜만에 잘 열지 않던 서랍을 열었다. 유치원생 때부터 초등학생 때까지의 일기장들, 그림과 독후감, 편지, 생활 통지표, 상장 등이 한데 모여있는 공간이다. 2번의 이사를 했음에도 유일하게 변함없는 물건들이 있는 공간이라 잠시 고향을 방문한 듯한 기분이 들어 한참 뒤에서야 닫을 수 있었다. 일기를 읽으며 기억나는 순간이 있을 때마다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지금의 나에겐 없는 순수함을 가진 그때의 나를 안아주기도 했다. 일기장에 적힌 당시 친했던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여러 이유로 선뜻 연락하지 못하는 현실에 잠시 씁쓸하다가도 재밌었다.
오랜만에 한참을 뒤적거렸던 추억의 물건들
초등학생 때 일기를 열심히 썼던 것처럼 다시 써보기로 올해 초에 다짐했다. 듬성듬성 썼었는데 2주 동안은 자기 전에 매일 썼다. 그러다 제일 뒷장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했고 그중 하나였던 ‘에세이 공모전 도전하기’를 실천했다. 다짐을 빨리 실행에 옮겼던 게 얼마 만이었던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주로 누군가의 글을 읽거나 나만 보는 일기만 쓰다가 다른 사람에게 읽힐 글을 쓰려니 부족한 필력이라 쉽진 않았다. 또한 거듭되는 퇴고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 편집자 등 책을 만드는 분들의 노고를 다시 한번 깨달았고 읽고 있는 책들이 더욱 감사하게 느껴졌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고 수상도 못했지만 분명한 건 글을 쓰는 동안 굉장히 가슴이 설레고 벅찼다. 무기력한 일상 속에서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원고를 보내는 순간은 심장이 빠르게 뛰기까지 했다. 그런 감정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앞으로도 종종 느낄 수 있길 바란다.
2주가 지나고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다. 당일 선별 진료소로 향하면서 스쳤던 자연이 평소보다 더욱 예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2주간의 시간은 답답하기도 했지만 나를 좀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작년에 수험생활을 하면서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됨과 동시에 나를 전보다 좋아하게 되었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에세이 읽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해보니 한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보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걸 깨닫고 나니 눈물이 나왔다. 한정된 공간이었지만 자연스레 좋아하던 것을 찾아 했고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루기까지 했다. 온전히 내 위주로 생각하며 나에게 집중했던 값진 시간이었고 다시 시작된 수험생활로 지친 지금, 그때의 기억이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는 듯하다.
더불어 그 시간을 큰 불편함 없이 보낼 수 있게 도와준 가족과 지금도 코로나 종식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고생하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모두 건강하게 이겨내서 걱정 없이 만나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