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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하 Aug 21. 2020

죽음의 철학

photo by Arif Ibrahim

철학이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 몽테뉴,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


죽음은 철학의 주제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철학이란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죽음의 철학은 자기 인식에서 시작한다. 죽음의 의미를 탐구하고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진정한 삶의 진리를 찾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프랑스 현대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우리의 삶이란 끄덕끄덕 졸다가 깜박 깨어나고 다시 끄덕끄덕 조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이 견딜 수 없어 꿈을 꾸고 잠시 깨어나 텅 빈 현실을 참을 수 없어 다시 꿈을 꾸는 것이 인생이다.


너의 삶 전체는 마치 모래시계처럼
되풀이하여 다시 거꾸로 세워지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또 끝날 것이다.
- 니체, <유고(1881년 봄~1882년 여름)>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생의 시계가 고장 나 버렸다. 시곗바늘은 제멋대로 돌아가거나 멈춰버린다. 일종의 심리적 난파 상태다. 목숨이 벼랑 끝에 걸려 있어서 한 발짝만 움직여도 간단히 끝장날 것 같았다. 날마다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완만하게 생로부터 멀어져 갔다. 내면이 공허한 사막 같아서 그때 죽었더라면 진심으로 고통 없는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지 못한 채 나는 세월 따라 늙어갔다. 젊어서 죽지 못한 사람은 늙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다. 더 침몰하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는 사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버렸다. 내키지 않는 세상에서 단지 살아남기 위해 인생 전체를 어처구니없는 헛수고로 소진해버린 것이다. 일상이 회전목마처럼 죽음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순회한다. 내릴 수도 없고 추월당하지도 않으며 죽음의 언저리를 맴돌 뿐이다. 목마는 시계방향으로 돌아가고 세상은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간다. 내 의식의 분열이 여기에 있다.


 세상 사람 같지 않게 멍하니 
자기 자신에만 몰두해 있다가 
마침 정오를 알리는 열두 번의 종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자,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대체  시를 쳤지?’라고 묻는 사람처럼,
우리도 때때로 나중에 가서야 귀를 비비고는,
무척 놀라고 당황해하며 
우리가 대체 무슨 체험을 했지?’  나아가 
우리가 대체 누구지?’라고 묻는 것이다.
- 니체, <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카이사르는 가장 덜 예측된 죽음이 가장 행복하고 가벼운 죽음이라고 했다. 시간의 덧없음을 깨닫게 된 지금, 나는 그날그날을 살아간다. 더 이상 일 년 후를 계획하지 않는다. 허황된 욕망에 매달리지 않고 내 정신을 완전히 무위에 맡긴다. 내면으로 물러앉아 자유 속에서 뒹굴고 빈둥거린다. 내 인생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쇠락하다가 소멸하기를 원한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생을 가볍게 지나가고 싶다. 영혼의 가치는 높이 올라가는 데 있지 않고 평범하고 정연하게 살아가는 데 있다. 욕망에 찌든 삶은 결코 누릴 수 없는 무소유 인생의 평온함이 있다. 산다는 건 파도처럼 변덕스럽게 요동치는 것이고, 때로 해체되고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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