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AI로 작업한 포스터 키비주얼을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했다.
내가 보기엔 퀄리티도 충분했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기에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순간 마음이 조금 쓰렸다.
나는 분명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AI를 활용했는데,
클라이언트 눈에는 그게 오히려 “대충, 빨리 해치우려는” 것으로 비친 것이다.
왜 이런 간극이 생기는 걸까.
AI는 이미 결과물을 빠르고 정교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에 와 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좋은 결과물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오래된 감각이, 새로운 도구의 속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의 손을 거친 흔적을 신뢰한다.
작업 과정에서의 땀, 수고, 시행착오가 곧 결과물의 가치라고 믿는 것이다.
AI가 아무리 좋은 결과를 내더라도, 그 안에 인간의 노동 흔적이 보이지 않으면 신뢰하기 어렵다.
AI를 썼다는 사실은 종종 “수고를 덜려고 쓴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그 반대다.
AI를 쓰는 이유는 오히려 더 많은 시안을 빠르게 탐색하고,
그중 브랜드에 맞는 해답을 더 치열하게 찾아내기 위함이다.
효율과 성의를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리면서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한때 전문성은 곧 “손으로 직접 만드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을 만들고, 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설계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문제는 아직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이 전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접 그렸는가”라는 기준으로만 결과물을 평가해버린다.
마지막으로, 클라이언트의 마음속에는 작은 두려움이 숨어 있다.
“버튼만 누르면 나도 할 수 있는 걸로 왜 돈을 내야 하지?”
이 불안이 곧 AI 활용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난다.
결국 문제는 결과물의 완성도가 아니라,
자신이 ‘바보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AI를 쓴다.
더 많은 가능성을 탐색하고, 더 적합한 답을 빠르게 찾아내기 위해서.
다만 이제는 알아야 한다.
AI를 쓰는 디자이너가 무엇을 위해 이 도구를 쓰는지 설명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과정이 보이지 않으면 결과도 오해받으니까.
프롬프트 몇 줄이 만들어낸 결과물 속에도,
디자이너의 안목과 고민은 여전히 깊게 깔려 있다.
그걸 클라이언트가 믿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지금 시대 디자이너가 감당해야 할 또 다른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