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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벳책 May 12. 2019

돈 벌어도 1인분 17,000원은 부담스러워

수입이 늘어갈수록 소비도 늘어야 하는 것일까

친구 녀석 하나가 어머니가 맛있는 곳을 알려줬다며 돼지갈비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나머지 세명의 친구 중 한 녀석이 맛있어 보인다며 동의했고 나와 한 친구는 좀 더 찾아보자며 결정을 미뤘다. 겉으론 동일한 '거부'표시였으나 속내는 달랐다. 나중에 알게 된 녀석의 속내는 그저 육고기보다는 그날따라 회가 당겼다고 한다. 나는 회도 고기도 상관없었다. 단지 1인분의 17,000원의 가격이 너무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어머니에게서 30만 원씩 용돈을 받아 생활하던 시절은 지났다. 더 이상 나의 삶은 등교와 하교 사이의 존재하지 않았다. 순전히 통장에 찍히는 수익으로만 보자면 매달 찍히는 숫자는 8배가량 커졌다. 하지만 배포는 그 커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는지 큰 금액을 마주할 때는 아직도 손이 떨린다. 항상 소비의 경계에서 머릿속에는 작은 망상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1인분에 17000월이라고?! 술까지 먹으면 인당 3만 원은 족히 나오겠군"라고 생각하며 인당(가끔은 술에 취해 혼자 계산해버리는 낭패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가격을 계산한다. 그러고는 "그 돈이면 3000원짜리 구내식당을 10번이나 갈 수 있다고"라며 내가 가장 적게 지불하는 한 끼의 가격으로 나눠버린다. 웬만해서는 비싼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메커니즘으로 사고는 흘러간다.

욜로(YOLO)니 카르페디엠이니 적당 한말로 자신의 소비를 포장하는 시대의 한중간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도 많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대부분은 아버지로부터 왔으니 아버지에게서 외로움을 배운 게다. 항상 형광등을 끄고, 전기코드를 뽑던 아버지는 그렇게 모은 돈을 모두 저축에 쏟아부으셨다. 시대를 잘 타고난 덕에(적어도 인플레이션율보다 은행 이자율이 높았던 덕에) 꽤나 많은 돈을 모을 수가 있으셨고 그러한 모습을 보고자란 아들은 확신을 가지고 외로움을 견딜 수가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의 아버지가 공무원이셨다면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새 하곤 한다. 자영업을 택하셨기에 언제나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셨다. 몇 번의 실패를 겪으시면서 더욱더 아버지는 '미래'라는 녀석을 적대시하기 시작하셨던 것 같다. 당신에게 있어서 미래는 찬란하고 언제나 행복한 일만 일어나는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언제 어디서나 등 뒤에 칼을 꼽을 수 있는 정적이었고 무뢰배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후 한참 동안(적어도 지금까지) '미래'는 호의적이었다. 아버지는 덕분에 돈을 모을 수가 있었고 지금도 돈을 모으고 계신다.



저번 글에서 언급한 건물주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버지까지, 어느 정도 부를 거머쥔 사람들의 공통점은 수입의 증가폭을 지출의 증가폭이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키워서 수입을 늘리되 항상 겸손하게 그 실력에 대한 과실을 냉장고에 보관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아직까지는 내가 알아낸 유일한 부의 공식이었다. 물론 이십 대 후반의 청년이 만나본 사람이래 봐야 얼마나 많겠냐마는 말이다.


결국 돼지갈비를 뒤로하고 집 근처 허름한 횟집으로 모였다. 소주가 한잔 두 잔 넘어가고 서로 보지 못한 기간을 보상받고자 무던히 근황을 묻는다. 과거 이야기에 웃고 미래 이야기에 진지해지다가 또 연거푸 술잔을 기울인다. 17000원짜리 돼지갈비를 먹었으면 조금 더 우린 즐겁게 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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