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토르가르의 함락과 천도

메와르의 세번째 조할 의식

by 엘아라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악바르는 "대제"라는 칭호가 붙을 만큼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는 특히나 정복 전쟁에 힘썼는데, 호전적이었던 라자스탄 지방을 점령하는데 많은 힘을 쏟아부었다. 그는 라자스탄 지방의 중심 도시를 하나둘씩 장악해나갔고, 마지막으로 메와르의 수도이자 거대한 칫토르 성을 남겨두고 있었다.



1806824A504B58382C8554 악바르 대제



악바르 대제가 칫토르를 공격하던 시기 메와르의 국왕은 라나 우다이 싱이었다.(우다이 2세)

그는 두 번째 칫토르 함락 때 조할을 했던 라니 카르바나티의 둘째 아들이었다. 포위 공격전 간신히 형과 함께 외가로 보내졌기에 목숨을 건졌었다.


악바르 대제는 1567년 메와르를 공격했으며, 칫토르 성을 포위했다. 포위 공격전 메와르의 귀족들은 군주 일가에게 성을 빠져나가길 권했다. 강한 적들에 맞서 죽음을 각오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은 메와르의 전통이었다. 하지만 이전의 두 번의 칫토르 성 함락을 통해서 군주일가와 수많은 귀족들이 죽은 뒤 나라가 매우 혼란했던 것을 경험했었기에 나라를 위해 군주와 그 일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을듯하다. 결국 우다이 싱과 그 일가가 칫토르 성을 빠져나간 직후 악바르 대제의 포위 공격이 시작되었다. 우다이 싱은 칫토르 성을 두 명의 메와르 귀족에게 맡겼는데 그들의 이름은 자이말과 파타였으며 둘 다 십대였다.




193D9448504B587F2EE45B 악바르 대제의 칫토르가르 공격




여섯 달에 걸친 무굴 제국의 포위 공격은 칫토르 성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자이말과 파타는 용감하게 싸웠지만 파타는 큰 부상을 입게 된다. 1568년 2월 칫토르 성은 함락될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에 사령관이던 자이말과 파타는 성 안의 여성들에게 조할 할 것을 명한다.

(이것은 이전의 칫토르 함락 당시 조할 의식을 주도했던 여성들- 라니 파드미니와 라니 카르바나티-이 있어서 자발적이라는 뉘앙스가 강했던 반면 이때는 좀 강압적인 느낌이 들더군요. 물론 라니 카르바나티가 죽은지 50년도 되지 않았기에 강압이었다고 보기 힘들 수도 있을듯하기도 합니다.) 여성들이 조할한 다음날 칫토르의 남성들은 칫토르 성의 일곱 개 성문을 모두 열고 나와 마지막 전투를 했다. 총사령관부터 병사까지 모두가 전투에 참가했는데 한 기록에 따르면 이때 죽은 메와르의 병사는 삼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칫토르를 정복한 악바르 대제는 칫토르의 사령관이었던 자이말과 파타의 용맹함에 탄복했으며 그들의 모습을 칫토르 성문에 새기라고 명령할 정도였다.



115AB24D504B58B134D467 칫토르의 세번째 조할 의식



칫토르의 함락은 악바르 대제의 큰 승리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라자스탄 지방을 무력으로 정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메와르의 군주였던 우다이 싱에게 결혼을 통한 평화조약을 제안한다. 수도 칫토르를 잃게 된 우다이 싱 역시 무굴제국과의 투쟁을 중단하길 원했으며 악바르 대제의 제안을 수락한다. 이렇게 메와르는 무굴 제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게 된다.


메와르의 강력한 요새인 칫토르는 악바르 대제에 의해 점령당했고 악바르는 이 요새를 메와르에 돌려줄 의도가 없었다. 우다이 싱은 자신이 만든 도시인 "우다이푸르"에 수도를 정하게 되고 이곳에 거쳐를 정하게 된다. 우다이 싱은 무굴제국과 대립할 마음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장남인 프라탑 싱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칫토르를 되찾아 메와르의 옛 영광을 되찾길 원했으며 평생 무굴제국에 적대를 맹세하게 된다.



111EF54C504B58EB104F96 우다이푸르의 중심 궁전중 하나인 레이크 팔라스, 현재 호텔로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