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미국에 사는 친구와 핸드폰 문자메세지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다, 왓츠앱이나 카카오톡이나 라인이 아닌, 문자메세지. 우리는 지금까지도 줄곧 문자메세지로 대화를 나누고, 둘 중 누구도 이 수단을 바꾸자고 얘기하지 않는다. 친구는 심지어 나랑 문자메세지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핸드폰이 아닌 아이패드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에겐 시차가 있고 또 이렇게 다른 수단으로 인해 대화의 텀이 존재해도, 둘중 누구도 이걸 바꾸자고 하지 않고 그냥 있는대로 대화한다. 어젯밤은 그렇게 우리가 서로 바로 폰과 패드 앞에 있었던 시간. 이미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주해 정착해 살고 있는 친구는 나의 싱가폴 생활에 대해 물었다.
<그 나라에서 갑자기 좋아진 게 뭐야, 예상하지 못햇는데 달라진 환경으로 인해 갑자기 좋아지게 된 것.>
우선, 한 번 언급하고 영상을 찍은 적이 있지만, 오렌지 착즙주스가 있다. 나는 오렌지주스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곳에 와서 착즙주스를 맛보고는, 그걸 최상의 맛으로 먹기 위해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오렌지 주스를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지? 아마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또 오렌지 주스를 사먹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곳에서 이렇게 먹기 때문에 나는 오렌지 주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혼자 술 마실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술을 자주 마셨지만, 늘 친구들이랑 함께이거나 아니면 집에서 마셨다. 집에서 혼자 마실 때도 있지만 엄마랑 같이 마실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혼자 밖에서 나가 마셨던 적은 없다. 그것은, 내게 여행에서나 허용되는 것이었다. 한국을 떠나 여행을 하게 되면, 그곳이 어디든 혼자 술 마시는게 자유로웠다. 대신, 혼자 여행하게 된다면 밤에 술집을 찾는 일은 삼갔고, 호텔 로비에서 마시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저녁을 먹고 슬렁슬렁 나가서 혼자 맥주를 마시거나 와인을 마실만한 곳이 있다. 그곳은 낮에 가도 누구든 앉아 맥주며 와인을 마시고 있는 곳이다. Fair Price 라는 마트 한쪽에 bar 가 마련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마트에서 산 고기를 8달러의 수수료를 받고 구워주고, 마트에서 산 와인을 8달러의 수수료를 받고 잔과 얼음을 빌려주며 자리를 내어준다. 다른 식당과는 달리 서비스차지나 세금이 없어서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이곳을 찾곤 한다. 저녁 시간대에 가면 사람이 많아 자리 잡기가 수월치않다. 혼자라면 테이블 자리가 아닌 bar 자리에 앉을 수 있는데, 그렇게 bar 자리에 앉노라면, 나처럼 혼자 와서 술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언젠가 한 번은 저녁 8시쯤 슬렁슬렁 나가서 와인을 한 잔 한 적도 있고, 또 언젠가 한 번은 기네스를 마신 적도 있다. 그보다 더 자주, 오후에 가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물론, 언제나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낮시간에도 저녁시간에도 그리고 밤시간에도,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그리고 혼자서 자유롭게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신다. 이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나도 자주 가는 편인데, 만약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렇게 아무때고 나가서 술 한 잔 혼자 즐기고 올 곳이 없어서 이곳이 참 그리울 것 같다.
그렇게 자주 가다 보니 바텐더 한 명과는 하이, 하고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 날은 그러니까, 목요일이었나보다, 책을 읽어야지 싶어서 책 한 권들고 가서 맥주를 주문했다. 그런데 그동안 본 적 없던 남자 바텐더가 하우 아 유, 하면서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 좋다고 고맙다고 웃고 넘겼다. 주문해둔 맥주 한 잔을 다 마신 시간이 오후 네시 오십분 쯤이었고, 나는 한 잔 더 시킬까, 기네스 시킬까, 그만 시키고 좀 더 머무르다 갈까 고민하다가, 해피아워가 끝나는 다섯시 전에 빨리 한 잔 더 시키자! 하고는 같은 맥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그러자 남자 바텐더가 새로 내려준 맥주를 내 자리에 놓아주면서,
"너 왜 오늘은 기네스 안마셔?"
라고 묻는게 아닌가. 앗, 나는 이 직원을 처음보는데... 처음이 아닌건가. 내가 기네스 마시는걸 아네? 나는 웃으면서, 해피아워잖아, 라고 응수했다. 내가 알기로 기네스는 해피 아워 적용이 안되고 언제나 같은 값에 파인트로만 있고 가격이 거의 12달러에 가까웠다. 저 맥주는 파인트가 못되는 양에 8달러이고. 그런데 직원이 내게 맥주는 해피아워 적용이 안된다고 하는게 아닌가. 앗, 다섯시까지 해피아워잖아? 내가 당황해 물으니, 그건 와인만 적용된다는 거였다. 나는 놀라서 "난 몰랐어!" 했고 직원과 동시에 웃었다. 나 기네스 마시고 싶었는데! 그래서 함께 웃었다.
금요일인 어제 저녁에는 수업 끝나고 바로 집근처 마라탕 파는 식당으로 가 포장 주문을 했다. 처음 이 식당에 왔을 때 어떻게 주문하는지 몰라 마침 홀에 나와계신 직원분께, 나 여기가 처음인데 어떻게 주문하면 돼? 물었더랬다. 그 때 그 직원분이 여기서 그릇을 꺼내 원하는 야채를 담고, 이 저울에 무게를 달고, 네가 어떤 국물을 원하는지 선택하고, 추가주문할 게 있으면 여기서 선택하고, 그리고 계산하면 돼, 라고 말해줬더랬다. 덕분에 마라탕을 포장해와서 너무 맛있게 먹었는데, 그 뒤로 친구가 왔을 때 함께 가서 먹기도 했더랬다. 그러다가 그 직원분을 보았는데, '어 너 또 왔네!' 하며 반겨주셨고, 나는 '어, 나를 기억하네?' 하면서 웃으면서 인사했더랬다. 그런데 마침 어제 그 직원분이 보였다. 그 직원분은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시며 "널 또 봐서 기뻐!" 해주셨고, 나 역시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어디에서 왔냐, 일본에서 온거냐 물으셨고, 나는 한국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 직원분은 안녕하세요, 하시는거다. 하하하하. 살갑게 챙겨주시더니, 내가 내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소스를 작은 통에 챙기고 있는데 옆에 와서는 "봉투 줄까, 김치 가져갈래?" 하시는게 아닌가. 나는 요즘 내가 만든 김치를 먹고 있어서 딱히 김치를 가져갈 생각은 없어서 아니야 괜찮아, 고마워, 라고 말했는데, 소스를 다 담고 생각해보니 마침 내가 만든 김치가 똑 떨어졌고, 다시 담그기 전까지 김치는 있어야 하니, 김치를 좀 가져갈까 싶어지는거다. 그래서 다시 그 직원분께 가서, '팩 줄 수 있어? 나 마음이 바뀌었어. 김치 가져갈게" 했더니 그 분이 웃으시며 물론이지!, 한국인들은 김치 먹잖아! 하시면서 봉투를 챙겨주셔서 김치를 마구 퍼왔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맛이 없다는 게 함정..
얼마전에는 마트에서 생마늘을 조금 사고 싶었다. 일전에 깐 생마늘을 한 봉지 샀었는데, 몇 개 먹지도 못했는데 곰팡이 때문에 다 버려야했고, 그래서 살 엄두가 안났더랬다. 그렇지만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땐 꼭 생마늘을 먹고 싶거든. 그러다가 마트에서 까지 않은 생마늘을 무게를 재서 파는걸 보게 되었다. 언젠가 저걸 사야지, 하다가 며칠 전에 드디어 이걸 조금만 사보자, 하게 되었고, 그런데 저기서 봉투를 뜯어서 내가 원하는 만큼 담는건 알겠는데, 그런데 어디서 가격표를 뽑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걸 좀 볼랬는데 왜 아무도 안사죠? 하는수없이 막 야채매대로 온 젊은 여자분께 말을 걸었다. 내가 이게 처음이라 그런데, 나 이 마늘 사고 싶거든, 어떻게 가격을 알 수 있어? 물어보니 그 분은 니가 원하는 만큼 담고, 저울로 가서 화면에서 마늘을 선택해, 그러면 무게를 달아 가격표가 나올거야, 라고 말해주었다. 음, 할 수있겠다! 나는 마늘을 조금 담아 저울 앞에 섰다. 그 분은 걱정이 되셨는지 따라오셔서 절차를 알려주셨는데, 에러메세지가 떴고,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왜지? 마늘을 너무 늦게 올렸나? 너무 일찍 올렸나? 생각해보는데 그 분은 빵터져서 웃으시며
"너무 조금이라 안된대."
라고 하시는거다. 앗. 그래서 나는 가서 마늘을 조금 더 담아서 다시 무게를 쟀고, 무사히 마늘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혼자서 그 일을 해내었다.
음, 기네스 얘기도 안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기네스는 한국에서 내가 즐겨 마시는 맥주가 아니었다. 너무 싱겁잖아. 캔맥주도 마셔보다가 다시 선택하지 않게 되었고, 생맥주도 시도해보다가 딱히 취향이 아니라 먹지 않게 되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이 bar 에서 기네스를 종종 마신다. 처음엔 다른 사람이 먹는 거 보고 너무 맛있게 생겨서 나도 오랜만에 기네스나 먹어볼까, 하고 마신거였는데, 오 마셔보니 너무 맛있는거다! 나는 이곳 기네스 생맥주는 다른건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캔맥주를 무슨 기구에 넣어 따라주는거였다. 그곳을 통해서 거품이 더 부드러워지는건지, 하여간 마셔보면 참 부드럽고 맛있다. 그래, 이곳에 와서 기네스를 마시는 사람이 되었네?
한국에 가면 오렌지 쥬스도 그립고 기네스도 그리울 것 같다. 그리고 혼자 밖에서 술 마시던 것도 참 그리울 것 같다. 그런데 무엇보다 널 다시 봐서 좋아, 라고 반갑게 인사해주던 식당 직원과 너 왜 오늘은 기네스 안마셔? 라고 물어주던 바텐더도 그리울 것 같다. 그러고보니 지난번 친구랑 같이 갔던 클락키 맥주집에서는 직원이 날 알아보고 내 친구를 가리키며 '네 가족이야?' 물었더랬다. 아니, 내 친구야, 라고 말햇었지. 그래도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좀 길어지다보니 이렇게 인사를 하고, 알은체를 하고, 만나면 반가워해주는 사람들이 생기네. 이런 일이 즐겁고, 그리고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