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락방 Dec 22. 2020

당신이 게임의 언어로 말하면

《먼 훗날 우리》

《먼 훗날 우리》, 유약영 감독, 주동우*정백연 주연, 2018


2007년.


'팡샤오샤오'와 '린젠칭'은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다. 린젠칭은 대학생 친구들과  고향에 가는 중이었고 팡샤오샤오 역시 아버지가 사는 곳을 방문하러 가는 거였는데, 폭설로 인해 기차가 멈추고 그들은 내려서 눈밭을  걷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는 사이가 되고, 고향에 도착해서는 팡샤오샤오가 린젠칭의 집으로 가 춘절을 함께 보내며 친구가 된다.

그들은  베이징에 돌아와서도 친하게 지내면서 사이좋은 친구가 되는데 린젠칭은 친구로 지내는 동안 팡샤오샤오의 애인이 여러 차례 바뀌는 것을  보게 된다. 팡샤오샤오는 베이징에서 정착하고 싶었고, 그건 혼자만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이었기에 안정적인 직업과 돈 있는 남자들을  애인으로 사귀어 왔던 것. 그러나 좋은 직업의 남자는 집에서 팡샤오샤오를 반대하고, 팡샤오샤오에게 물질적으로 잘해줄 것 같았던  남자는 유부남이었다. 팡샤오샤오의 연애는 뜻대로 되지 않고 린젠칭과 팡샤오샤오 모두 베이징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채, 서로에게  힘을 주고 우정을 나누다가 연인이 된다. 그렇게 이 가난한 연인의 사랑은 시작된다.


나이도  비슷하고, 젊었으나, 자리 잡지 못하고 늘 가난한 상태로 함께 사는 건 쉽지 않았다. 가난은 이들을 휘청거리게 했다. 팡샤오샤오가  좋은 집에서 살고 싶었던 것, 베이징에 자리 잡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린젠칭과 함께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는 시간들이  불만인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또다시 춘절이 되고 고향에 가는 일들이 반복되는 동안, 그리고 친구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자리 잡고 돈을 버는 동안, 여전히 베이징에서 가난하게 지내는 것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린젠칭은 계속 계속 가난해서 좁은  단칸방에서 사는 자신의 삶이, 성공했다고 거짓말해야 하는 삶이 지겨워졌고 말수가 적어지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예전 같지 않다.  가난은 사랑을 이겼다. 그렇게 팡샤오샤오는 떠나버린다.




2018년.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들은 우연히 그러니까 아주 오랜만에 재회한다. 린젠칭은 비즈니스석에 팡샤오샤오는 이코노미 석에서 짐을  올리다가 마주한다. 또다시 폭설은 내리고 비행기는 출발하지 못한다. 항공사 측에서는 운항이 가능해질 때 출발하겠다며 승객들에게  호텔을 제공하는데,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 승객에게 제공되는 호텔은 다르고, 린젠칭은 팡샤오샤오를 자기 방에 묵게 한다. 그렇게  그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하나씩 둘씩 풀어놓는다. 린젠칭은 말한다. 그때, 나는 너랑 자면 우리가 결혼할 줄 알았어,라고  말했더랬다. 그때, 린젠칭은 열심히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었고, 그 게임의 스토리와 주인공 이름은 팡샤오샤오와 함께 정했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게임이었고, 그들이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라고 물으면서 세상은 무채색이 되는 거지,라고 이 커플은  대화를 나누었더랬다.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그들 앞에는 긴 시간이 쌓여있었고, 그렇게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린젠칭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받는 린젠칭의 수화기 너머로 "아빠" 하는 아이의 외침이 들려오고, 팡샤오샤오는 당황하며 얼른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수화기 너머의 아이는 호텔 방을 한 번 보여달라고 한다. 린젠칭의 아들의 요구대로 전화기를 한 번 휘익 돌리는  사이사이, 팡샤오샤오는 그 전화기 속에 등장하지 않기 위해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자꾸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녀는 지금  이 시간, 숨어야 한다. 들키지 말아야 한다. 숨겨진 존재가 된다. 



그녀는  결국 호텔 바깥으로 나가고, 호텔 바깥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린젠칭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호텔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마침  린젠칭의 회사 사람을 마주친다. 린젠칭의 손에는 여전히 팡샤오샤오의 손이 있었고, 린젠칭과 동료 사이는 어색해진다. 동료와  헤어지고 나서 팡샤오샤오는 잡힌 손을 빼고 방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렇게 차를 타고 베이징에 가기로 하는데, 그  차 안에서 팡샤오샤오는 웃으며 말한다.



"나는 한 때는 너의 연인이었는데 이제는 내연녀 취급을 받고 있네."




아으- 너무 싫다 진짜 ㅠㅠ 내가 드러나면 안 된다는 거. 나 여기 있는데 왜 드러나면 안 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를 드러나면 안 되는 자리에 놓지 마.



이  재회가 있기 전에, 팡샤오샤오는 린젠칭의 성공을 알고 있었다. 린젠칭이 팡샤오샤오와 헤어지고 나서 만든 게임은 린젠칭이 열심히  열심히 가난에서 탈피하고자 이 일 저 일 거듭하는 동안 많은 사용자가 생겼고, 그렇게 큰 회사랑 계약하게 되면서 부자가 되는 거다.  그런 린젠칭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데, 그때 팡샤오샤오의 존재를 언급한다.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지켜봐 주던  존재가 있었고, 그 존재와 함께 이 게임의 스토리를 만들었다, 고. 팡샤오샤오는 혼자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식당에서 틀어둔 티브이를  통해 그 장면을 보게 되는 거다. 



2018년 그들의 재회가 있고 나서, 함께  돌아와 베이징에서 헤어지고 난 후, 린젠칭과 팡샤오샤오는 과거를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가 정리되면서 비로소 무채색이던 세상은  본래의 색을 찾는다. 팡샤오샤오는 린젠칭이 만든 게임을 연다. 게임의 끝, 남자와 여자가 재회하면서 게임 속의 세상도 무채색에서  벗어난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연인이 사랑하다 헤어졌는데 한쪽이 크게 성공할  확률, 그 성공이 티브이에까지 나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가 티브이에 나왔을 때 내가 그 티브이를 시청할 확률과, 그 안에서  내가 언급될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온갖 곳에 영화적 설정이 너무 들어가 있어서 결코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또한,  내가 영화 속의 팡샤오샤오 였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나는 만들어낼 수도 볼 수도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게임을 할  줄 모르니까. 헤어지고 난 후 그가 게임의 언어로 말을 걸어온다면 나는 그것을 제대로 들을 수도 없을뿐더러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그렇다면 나의 세상은 결코 제 색을 찾을 수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살면서 게임하는  남자를 만나지는 말아야겠다... 고 생각했다. (응?) 헤어져도 무슨 말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  ")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 연애해야 먼 훗날 티브이 속에서 인터뷰해도 그 말이 내게 닿을 것이며 어떻게든 보내는 사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가난은  힘이 세다. 가난은 젊음과 사랑을 짓누른다. 서로만 있으면 될 줄 알았고, 그렇게 함께 살 수 있을 줄 알았던 이 커플은 가난  앞에 무릎 꿇고 만다. 팡샤오샤오는 베이징에 와 대학도 안 가고 일하고 살면서 언제나 집 있는 부자 남자 만나 정착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2018년까지도 남자 만나 정착하는 건 되지 않았다. 그나마 혼자서 예전보다 조금 나은 집에 살게 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부자는 어떤 사람들이 되는 걸까. 부자로 태어나야 부자가 되는 거지만 그러나 살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아주 운이 좋게도  갑자기 부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속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겠다. 


나야말로  돈, 돈 거리는 세상 속물인데, 그렇게 외치는데도 돈이 없는 걸 보면 나는 진정으로 돈을 원하지는 않는 걸까?라는 생각도 든다.  돈, 돈 거리지만 로또도 안 사는걸... 돈 너무 좋은데, 나 돈 좋아하는데 그런데 왜 돈은 나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을까?  얼마 전에는 나도 한 번, 하고 주식도 조금 시작해보았는데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폭망 하고 있다... 내가 왜 주식을  샀을까... 히융- 애당초 돈 없는 내가 돈 많은 사람을 만나 연애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꿈꾸지 않는다. 입버릇처럼 책 값 다  결제해주는 사람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딱히 그걸 원하지는 않는다. 내 돈으로 내가 책 사는 게 제일 마음 편한 걸 아는  까닭이다. 다만, 내 돈 뜯어가지만 않으면 된다고 나는 진심으로 룰을 정해놨기 때문에, 그래서 내 돈 뜯어가지는 않는, 그러나  가난한 이들과만 연애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가난한 자들과의 연애이든 부자와의 연애이든,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내  스스로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내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아나스타샤도 그레이 믿고 돈 안 벌고 집에 눌러앉으면 경력 단절되고 나중에  그레이랑 헤어지면 멘붕 온다니까? 그러니까 아나스타샤여, 열심히 일하라! 커리어 쌓고 연봉 높여야 돼!! 그래야 나중에 그레이랑  헤어져도 어느 일터에서도 경력 있는 일꾼으로 돈 벌고 살고 있지. 내가 내 돈 번다면 헤어져도 내 삶에 큰 타격이 없다. 부자 남자  만나 연애할 때 그 연애가 힘들지 않을 수 있지만, 그리고 돈 없는 것보다야 확실히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은 데도 많이 갈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어, 돈 벌어야 돼! 내가 내 돈 벌어야 된다. 헤어지고 나서도 나는 이 땅에 두  발 단단히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므로! 그리고 한쪽에서만 돈을 쓰면 그 돈은 그 상대에게 힘을 준다. 그것은 둘 사이에 권력관계를 형성해버려. 그래서 애트우드도 시녀 이야기에서 여자들 경제력 먼저 뺏어버린 거 아녀, 남자들한테 의지하게 만들라고.  그러니까 돈 벌어야 된다. 그레이가 드레스 이천 벌 사 주는 것만 믿고 있으면 안 돼, 헬리콥터 태워주는 것만 보고 좋아하면 안 돼,  돈을 벌어야 된다!!!


그리고 너희 둘… 어째서… 왜 때문에…2007년에  만났는가… 왜죠…. 2007년은 세기의 로맨스가 시작되는  해인가… 2007년 시작된 사랑 각인되는 사랑인가, 그런 사랑들 중의 하나인가  너희들도…

왜 하필이면 2007년이야, 왜, 왜, 왜…

2007년에 사랑이 찾아온 사람은 무채색의 세상을 살게 되는 것인가. 그것이 그 해의 저주인가…


그럼 이만.

작가의 이전글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