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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나 노 Nov 05. 2024

결혼식을 감사히 잘 마쳤습니다.

감사일기

결혼식을 감사히 잘 마쳤습니다.


식은 마쳤으나 가정은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알콩달콩 유쾌하고 즐겁게 잘 살아가보겠습니다.


먼저 감사할 것들을 적어 내려 가 봅니다.


1. 사랑하는 만큼 맑은 날씨를 보여주시라는 철없는 기도에도 더없이 맑은 푸른 가을 하늘과 포근한 날씨를 통해 이만큼이나 저를 사랑하신다고 알려주신 하나님 아버지, 결혼의 모든 것을 주관해 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0월 말 답지않게 매우 포근하고 따듯한 날씨였습니다. 하늘이 청명하고 푸르러 온전한 가을 하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먹구름이 잔뜩 끼고 흐린 하늘을 보며 흐린날이 있어 맑은 날이 사랑인 줄을 알았습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며 감사합니다.


2. 먼 길을 달려와주신 많은 하객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만큼이나 사랑을 받고 있다니, 정말 행복합니다. 애정하는 마음 없이는 그 먼 길을 와줄 수 없다는 걸 잘 압니다. 또한, 상황 상 올 수 없었지만 축하하는 마음을 한가득 보내준 지인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뵌 적은 없지만 화면 너머 브런치를 통해 저를 알게 되신 작가님들과 구독자분들의 축하 또한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사랑과 응원은 살면서 꼭 갚아나가겠습니다.

이렇게 또 한 걸음 어른으로 자라도록 어수룩한 저희 두 사람을 축하해 주러 오신 모든 발걸음을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3. 결혼식 당일, 새벽 택시 기사님이 차 댈 곳이 없어 우연히 차를 대고 계셨던 곳이 집 바로 앞 편의점이라 짐을 편히 실었습니다. 선한 기사님 덕분에 메이크업샵에 늦지 않고 잘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4. 메이크업샵에서 예쁜 화장과 헤어를 받아 감사합니다. 아주 예쁜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음에도 감사합니다.


5. 최고의 플래너 동생과 정말 좋은 헬퍼 이모님, 교회동생, 베스트 드라이버 기사님의 도움으로 식장에 늦지 않게 잘 도착해서 감사합니다.


6. 엉성하고 아쉬운 부분도 있던 결혼식이었지만, 그것에 꽂혀 내내 아쉬워만 하기보다는 좋았던 것들과 감사한 것들을 바라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두어야, ‘아쉬움의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완벽주의로 살아가는 것을 멈추려 합니다.


7. 이제는 남자친구가 아닌, 제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대체 무슨 노랠 부른 거야?’라는 질문을 받은 (^^) 엉망진창 축가였습니다만, 그 축가를 통해 완벽하지 않아도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남편은 실전에 약하지만 저는 실전에 강하니 천생연분입니다.

어떻게 표현하자면 망쳐버린 축가에도 기죽지 않고

“저를 축가로 불러주세요!”라고 외치고 다니는 그의 뻔뻔함(?)과 당당함이 제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태도입니다. 저는 실수에 약하지만 남편은 실수에 강하니 천생연분입니다. 배울 점이 큰 사람을 제 남편으로 맞이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8. 이제부터 꺼낼 이야기는 조금 마음이 아린,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혼가정에서 자라, 아빠와 친가친척들에게는 결혼식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진행하려고 했어요. 엄마는 다시 아빠를 만나기를 두려워했고, 저 역시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에요.


‘각각 따로 두 번의 결혼식을 해야 할까? 아니야, 아빠와 친가 쪽엔 혼인신고만 하고 산다고 하자.’

정말 그렇게 하려고 했었습니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결혼사진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 별 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내 인생은 왜 이래’라는 꼬리를 물고 은근히 저를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4월에 하나님께서 아빠를 천국으로 데려가셨습니다. 혼인신고라도 빨리 먼저 하라는 아빠에겐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핀잔 어린 말로 대꾸를 하고서 몰래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아빠가 작년에 적어둔 다이어리엔 ‘내년엔 ㅇㅇ이와 ㅁㅁ이가 결혼했으면 좋겠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고 아빠의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아빠는 천국에 가서야 우리의 결혼 소식을 알았겠지요.

아빠에게는 미안한 마음입니다만, 제 아빠라면 ‘가시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서운하게 아빠한테 결혼 얘기를 안해!’라는 조금의 볼멘소리를 하고선 허허허 크게 웃으며 천국에서 저희를 축복해 주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아빠의 자랑이었습니다. 아빠는 아마도 온 동네방네 천사들에게 크게 외치며 또 한 번 자랑했을 거예요.

“동네 천사들~~ 우리 큰 딸 결혼허요~~!!”

그리고 그 옆엔 먼저 떠난 제 여동생과 강아지 메리도 함께 기뻐하며 있었으리라,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아빠가 떠난 후 엄마는 다시 친가친척들과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고, 저는 양가 친척의 축복 속에 결혼을 마쳤습니다. 특히 아빠의 바로 아래동생인 셋째 작은 아빠는 아빠처럼 간암말기 투병 중인데도 불구하고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러 와주셨습니다.

전날 병원에서 복수를 빼고서 차로 3시간이 넘는 길을 와주셨어요. 그리고 그날 저녁 열이 나셨다고 합니다. 암환자에게는 열이 참 위험해서 그 생명줄을 연장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렸어요. 셋째 작은 아빠는 꼭 우리 아빠를 닮았어요.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시간에 작은 아빠의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니 꾹 참아왔던 눈물이 흘렀습니다. 마치 아빠가 그곳에 잠시 서있는 것 같았어요. 작은 아빠가 무사히 퇴원을 하셔서 감사합니다.


9. 결혼식 후 친구에게서 저희 부부와 메리가 함께 담긴 소중한 선물을 받고 울었어요. 메리를 어찌나 잘 그려냈는지, 다시 돌아온 것만 같아 한참을 쓰다듬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문득, ‘집 문을 열면 메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메리가 떠나서 마음은 아프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집을 비우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결혼식을 잘 마치고 신혼여행도 잘 다녀올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10. 적다 보니 모든 것이 감사하네요.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모든 마음을 다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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