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면 멋진 필기체를 가질 줄 알았건만.
볼펜을 받치는 손가락이 아파진다.
느릿한 글씨에 온점이 쉼표로 흘린다.
흰색 바탕에 어지럽혀진 풍경을 바라본다.
어른이면 멋진 필기체를 가질 줄 알았건만.
어린아이처럼 삐뚤빼뚤한 모양새는 여전하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을 풀고 다시 펜을 쥔다.
나이 든 손이 동심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자주 바뀌긴 했지만 분명한 꿈이 있었다. 모두 기억 한구석에 있어 헤아리기 어렵다. 어렴풋이 되뇌어보면 사진가, 작가, 작곡가 등 치기 어린 감정에 막연히 떠들었다. 세상 물정에 밝고 조금이라도 멀리 볼 수 있었다면 어떤 대답이었을까. 수학을 싫어한 것만은 아니었기에 공학도와 관련되지 않았을까. 현실이 좀처럼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이따금씩 떠오르는 비현실적 가정이다. 꿈을 꾸는 게 권장되고 자유로웠을 때, 가지각색이어도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공허하게 모니터를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미숙한 객기는 자립된 영혼을 노래했다. 현실 감각이라는 향신료가 전혀 섞이지 않은, 무색무취의 독약이었다.
머리만 큰 어른은 꿈을 꾸는 것마저 망설여진다. 이상과 가까운 꿈은 감미가 강해 중독되기 쉽다. 가만히 환상을 쫓을 수 없는 나이가 되면 눈앞의 것을 직시해야 한다. 어렸을 적 부르짖었던 미래가 공상이었음을 깨달은 후엔 더 이상 허황된 소망을 품을 수 없다. 비전공자 디자이너가 시장을 따라가려면 꿈결에도 다가갈 수 없다. 당장 오늘의 짐이 내일의 발걸음을 가볍거나 무겁게 만든다. 적어도 지금 내가 취할 선택지는 상당히 한정적이다.
꿈에 대해 열망할 때와 지금의 차이는 그리움뿐이다. 절박하고 절실하며,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기에 달콤함에서 눈을 돌린다. 디자이너로서 늦었던 시작은 발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 예처럼 꿈을 노래할 수 있음에도 입을 막았다. 어떻게든 앞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향하는가. 어디를 원하는가. 정처 없이 나아가는 것도 내가 두 발에 옭아맨 족쇄다. 자신의 무력함에 쫓겨 양지로부터 도망쳤다. 언제까지 한 줌의 빛도 없이 걸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어둠 한가운데서 잠시 생각에 사무친다. ‘이상을 부르짖던 나를 그리워하며 외면했던 걸까, 어떤 꿈이 나의 오늘을 만들었을까, 다시 꿈을 좇아도 괜찮을까.’ 어른이면 바라던 내가 될 줄 알았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변명뿐인 어린아이 일지도 모른다.
어른이면 멋진 필기체를 가질 줄 알았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