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뻗는다고 달빛을 품을 수 있을까.
손을 뻗는다고 달빛을 품을 수 있을까.
저 지붕 위에 올라 발끝으로 서서,
머리 위로 곧은 손가락은 밤공기에 유영한다.
하다못해 흰 노란색을 닮고 싶지만
뉘어져 가는 어둠을 붙잡지 못한다.
아려오는 손을 접어 오늘을 떠나보낸다.
내일도 손을 뻗으면 달의 끝은 닿을 수 있을까.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없어도 주어진 것에 성실히 임했다. 머리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내신과 정시를 함께 대비했다. 이수 학점을 일찍 채워 준수한 성적으로 조기졸업을 했다. 주위에 자랑할 만한 결과는 아니지만 당당했다. ‘노력하면 당연한 결실로 보답받는다.’ 나를 움직이는 믿음이었다. 성실함을 겪은 경험은 나를 비전공자의 삶으로 번져갔다. 혼자 0에서부터 시작해야 했기에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행동했다. 생리활동에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고 자기 개발과 공부에 매진했다. 결국 노력의 결실은 작업물의 형태로써 나타났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운이라는 요소가 결합된 것을 간과했다.
대부분의 노력에 응당한 대가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소규모 스타트업에서 중역을 담당했다. 하나의 디자인 팀을 이끌며 피칭, 디렉팅,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을 모두 수행했다.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쳐도 최저임금에 가까운 급여를 받았다. 디자이너들의 연봉이 비교적 낮은 걸 감안해도 납득할 수 없었다. 먼 타지에서 일가친지 없이 홀로 살면서 생활 수준이 나아지지 않았다. 내 오랜 믿음에 불신이 크게 번져갔다.
성실함에 대한 의구심은 보답에 대한 믿음과 대비를 이뤘다. 반드시 금전의 형태로만 대가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디자인 능력이나 업무 능률이 향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력과 노동의 방향은 보수를 향했다. 성실함에 대한 결과는 병든 몸과 마음이었다. 오랜 시간 나를 움직이게 했던 믿음에 대한 반동은 거대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나를 향한 의심부터 피어올랐다. 해낼 수 있다는 확신과 노력에 대한 믿음은 작아져갔다.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어떤 형태로 미래에 작용될지 회의감이 자욱했다. 그럼에도 매일 움직이는 건 과거의 잔존일까. 그동안 이루었던 경험은 적게나마 일말의 희망으로 남겨져 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력뿐인 걸 알고 있다. 그러므로 회의와 의심 속에서 스스로에게 보답을 안겨줘야만 한다.
손을 뻗는다고 달빛을 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