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 따른 무게가 더해진다.
아침 공기에 몸을 이불 깊숙이 웅그린다.
굉음이 울리기 수 분 전, 뒤척이기를 몇 번.
감은 눈으로 세수하며 오늘의 날씨를 직감한다.
서늘한 한기에 두꺼운 외투를 챙긴다.
신발을 신은 발이 땅에 걸음을 딛는다.
얼굴에 닿은 햇살이 따갑게 느껴진다.
선택에 따른 무게가 더해진다.
선택은 무지의 영역에서 기인한다. 암담함에서 느껴지는 두려움, 혹은 미지에서 불러오는 의외성은 확신과의 거리를 팽창시킨다. 영상 디자인을 선택한 것도 철저히 무지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전의 삶은 가이드라인을 따라 공부하고 시험만 응시하는 연속이었다. 반듯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만의 것을 좋아해서 창작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글에서 음악, 영상까지 이어졌다. 이 연쇄 과정은 미지와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보다 일탈과 자기만족의 쾌감이 컸다. 눈앞의 목표에 이성을 빼앗겨 미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터널 시야였다.
쾌락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창작에 눈길을 빼앗겨 더 큰 벽을 넘고자 했다. 영상 디자인은 접점이 없는 분야였다. 단순히 더 완성도 있는 영상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 학원이나 온라인 강의를 수강할 여력은 없었기에 서적을 구매했다. 책을 보고 따라 하기를 반복하며 전례 없던 시간을 할애했다. '흥미'로 시작했지만 점차 '필요'가 되었으며 '책임'으로 자라 있었다. 내 안에서 다른 것들과는 달리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로 변모했다.
볼 수 없었던 미지는 미래를 향한 단서였다. 더욱 완성도 있는 과제물은 좋은 점수를 안겼고 만족감을 주었다. 공모전에 출품을 하더라도 경쟁력이 있었다. 주위와 차별점을 둔 기점에서 다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전공을 살린다면 영상 디자인에 소모했던 시간만큼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하물며 잃어버린 시간은 베일에 싸여있다. 영상 디자인을 선택한 건 전공에 대한 '무지'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점이나 공모전 등의 영상 디자인이 준 긍정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한 오만함이 이끈 결론이다. 현재에 이끌려 보이지 않는 미래의 위험성, 미지에서 불러오는 위기를 인지하지 못했다. 영상 디자인에 대한 무지로 현재가 선택됐다. 그렇다고 마냥 불행하진 않다. 또 행복한 것도 아니다. 그저 어제의 내가 선택한 오늘을 살아간다.
선택에 따른 무게가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