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제이 May 20. 2017

57 자신의 감정 표현하기

회사에서 일 년에 두 차례 임직원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영어캠프나 자기주도 학습 같은 프로그램이다. 참여하고픈 사람이 많아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정확하게 어떤 교육이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자기주도 학습이나 공부 길라잡이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아주대학교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이틀 동안 스무 명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육이었다. 첫날과 둘째 날 아이를 교육장에 데려다 놓고 부모는 일하러 간다. 퇴근시간과 비슷하게 교육도 마치고, 아이와 함께 귀가하는 일정이었다.


마지막 날엔 부모를 대상으로 30분가량 강연을 한다. 아이들은 옆방으로 이동시키고 부모만 남긴다. 아이가 앉은자리에 부모가 대신 앉아서 강의를 듣는다. 강의 말미에는 조별로 담당 선생님이 부모에게 최종 브리핑(!)을 한다. 이틀 동안 아이 한 명 한 명을 관찰한 결과도 알려주고, 교육시간에 검사한 결과도 나눠준다. 집에 가서 차분히 보라고 하면서 보는 방법을 설명해 주신다. 조별로 동그랗게 얼굴을 맞대고 앉아 선생님의 의견을 듣는다. 누군가 질문을 하면 성의 있게 답변해준다. 끝날 즈음되니 자연스럽게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자신의 아이에 대해 묻는다. 짤막하게 장점과 우려되는 점을 말해준다.


아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모에게 큰 조언이다. 주연이 차례가 왔다. 아들은 수업태도가 좋고, 친구들과도 갈등 없이 잘 지낸다고 했다. 자기 의견을 이해시키려고 고집하지 않고 타인의 의견도 배려하면서 잘 따라준다고 했다. 단점도 알려줬는데, 조금 갸우뚱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표현을 잘 안 한다는 거였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이어서 조금 의아했다. 선생님은 어떤 결과를 보여주면서 감정표현에 대해 부족한 수치를 짚어준다.


그렇게 생각하고 듣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평소에 ‘착한 아들’, ‘말 잘 듣는 아들’이었다. 꾀가 나는 날도 있을 테고, 공부하기 싫은 날도 있을 텐데 그런 싫은 내색을 잘 안 한다. 또 친구들 얘기, 선생님 얘기를 신나게 하다가도 어른이 안 좋게 한 마디 하면 말꼬리를 감추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곤 했다. 조그만 머릿속에 필터가 작동하는 듯 느꼈다. 부모에게 공개해도 되는지 필터를 통과시켜서 공개해도 된다고 판단되는 것들만 얘기해 주는 것 같았다.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평소에 내 행동과 남편의 언행을 점검했다. 남편은 성격이 급하다. 남편은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성격은 좋은 점이 많다. 일 처리가 빠르고 문제가 금방 해결되니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예외상황도 있다.

한 번은 아들이 오랜만에 학교 친구들과의 일화를 얘기하다 한 친구를 나쁘게 말하는 상황이었다.  아빠는 대번에 그 현상을 낚아챈다.


“선생님한테 얘기했어? 그런 건 선생님한테 일러야지”

“선생님한테 얘기해도 안되면 교장선생님한테 얘기하면 돼”

“아빠가 전화해줄까?

”내일 전화해줄게. 선생님 핸드폰 몇 번이야? 번호 불러봐”


남편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남편은 화를 내기 시작했고 집안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고 있었다.

남편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다. 하나뿐인 아들이 학교에서 안 좋은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화나고 열 받는 일이다. 신문에서 읽고, 뉴스에서 본 왕따니, 학교폭력이니 무서운 단어가 떠올랐을 테다. 상상력은 자꾸 커지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지면서 뚜껑이 열린 것이다.

아이에게는 별 대수롭지 않은 상황인데도 듣는 부모는 확대 해석하게 된다. 아들은 일이 커진다고 느꼈고,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아차! 잘못 얘기했구나!’ 싶었을 거다. 그 뒤로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 얘기를 상담 선생님께 들려드렸다.


“그런 경우엔 가만히 대수롭지 않게 들어주셔야 해요”

“그랬구나!” “마음에 동요가 없는 듯 대응하시고, 문제가 큰 상황이면 나중에 선생님을 찾아가서 해결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아이가 편하게 감정을 표현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해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삭히게 되면, 이게 쌓여서 어떤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날지 몰라요.”


그 뒤로는 선생님의 조언을 기억하고 대화할 때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감정을 드러낼 때는 조용히 들어주고, 때론 함께 욕해주고 공감해주려고 한다. ‘엄마한테는 얘기해도 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도록 대화할 때 신경 쓰는 부분이다. (아. 이 글은 진짜 아들이 보면 안 되는데……)

감정을 드러낼 때는 아이가 나아진 거라고 판단돼서 고마운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지금도 자아가 만들어지는 중이다. 나 스스로도 성숙하지 않은 어른이라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불안하다. 오늘은 이렇게 말했다가 내일은 다시 번복하기도 하는 여전히 서툰 엄마다.

매거진의 이전글 56 책 읽기의 중요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