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제이 May 21. 2017

58 로봇 배틀 대회

초등학교 4학년,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로봇 배틀 대회’가 있었다.

처음으로 자기가 만든 로봇을 들고 출전했다.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인 ‘창의 로봇교실’ 시간에 만든 로봇이다. 로보로보社에서 주관하는 대회로 처음 열리는지 ‘제1회’라고 쓰여있다. 아들 말로는 그 전에는 탁구공 같은걸 골대에 집어넣는 경기였다가 로봇과 로봇끼리 겨뤄서 승자를 가리는 배틀로 경기 운영방식을 바꿨다고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대회장에 갈 준비를 한다.


<일정>

1. 학교 가는 토요일이라 우선 학교 등교

2.   2교시 끝나고 조퇴 후 동네 소아과 방문 (감기)

3.   약국에 들러 약 타오고, 주차전쟁 통에서 가까스로 탈출

4.   점심을 사 먹고 초행길이니 미리 출발

5.   대회장 도착. 무려 1시간이나 일찍 왔네. OTL    


대회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대회 출전자가 한 30명쯤 되려나 싶었는데, 64명이란다. 서수원 지역만 64명이다. 전체는 얼마나 될까? 궁금해졌다. 주관처가 1회라 서툴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어쩐지 불안하다. 로봇배틀 도전자와 그들의 부모와, 운영하는 스태프들이 섞여 혼란스럽다. 시끄러운 시장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다.  주최 측이 경험이 없어 그러려니 하면서도 회사였으면 상사에게 왕창 깨질 일 처리 능력이다 싶었다. 내년엔, 내후년엔 좀 나아지겠지 기대해본다.

아들은 첫 번째 대결에서 일찌감치 떨어졌다. 원래는 집에 가야 하는데, 축제 분위기를 내기 위해 ‘패자부활’ 기회를 준단다.


두 번째 대결은 주연이 승,

세 번째 대결도 주연이 승,

네 번째 대결도 주연이의 짜릿한 한판승!

계속해서 승리가 이어졌다. 32강에서 16강을 향해 정상궤도에 다시 올랐다.


다섯 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상대로봇은 아들의 것보다 키가 더 크고, 덩치도 더 좋다. 아들은 밑바닥에서 상대의 몸집을 들어 올리는 날쌘 돌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는데, 상대의 힘에는 밀리는 모양이다. 이전에 대결한 로봇들과 달리 쉽게 들어 올리지 못한다.


'어~ 안돼. 조금만 버티자! 조금만! 안돼~~ 에!' 


함께 지켜보는 내 속도 타들어간다.

뚱뚱한 상대방이 코너로 모는데, 조금씩 조금씩 밀리더니 아들의 로봇이 무대 밖으로 먼저 벗어났다. OTL


아~ 아쉬웠다.

패자부활 전에서 열심히 싸웠고, 다시 희망이 생겼는데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많이 아쉬웠는지 아들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얼굴을 애써 외면하는데 훌쩍이는 것 같다.


마침 핸드폰이 울린다. ‘창의 로봇’ 수업을 담당하시는 선생님이다. 마치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전화가 왔다. 아들의 결과를 알려주고 아쉽게 탈락했다고 설명드렸다. 많이 아쉬워하셨다. 아들이 울적해한다고 했더니 그 정도만 해도 잘했다고 칭찬 많이 해주라고 격려해주신다.


학교에서 창의 로봇 수업을 들으며 고치고, 수정하고, 다시 만들고 2주간 노력을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신나 하기도 했고 약간 힘들어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로봇배틀 영상을 찾아보며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부모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만들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가끔 과학상자를 추가로 주문해주는 일과 퇴근해서 그날의 개선상황을 보며 물개박수 치고 감탄해주는 게 전부였다.


그런 영상이 머릿속에서 지나갔다. 이겼으면 더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을 텐데 속상했다.


주연이가 대회에서 우승을 못해도 ‘자랑스러운 아들’은 변하지 않는다. 초반에 떨어졌을 때는 감흥이 없었는데, 패자부활 전에서 살아나 다시 무대에 올라가면서 추락하니 우리 부부도 아들도 힘들었다. 희망고문을 당한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아들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들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한동안 실없는 소리도 하고 장난을 친다. 아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제안하느라 없는 애교(!) 작전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조마조마하고 짜릿한 긴장감이 좋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57 자신의 감정 표현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