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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May 24. 2017

61 프랑켄슈타인 쓸래요

2012년 1월,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우리 가족은 아이쇼핑을 좋아한다. 여행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산책 삼아 다니는 걸 즐긴다. 우리 가족이 자주 가는 곳 중에 안양 쇼핑가가 있다. 지하철 안양역에 내려 지하로 내려가면 끝이 안 보이듯 양쪽에 빽빽하게 쇼핑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다. 눈요기하듯 걸어서 가다 보면 교 x문고에서 운영하는 핫 x랙스가 나온다. 사무용품이나 문구류를 좋아해서 자주 가는 곳이다. 예쁘고 신기한 것들이 많다. 가격은 착한 편이 아니라 주로 눈요기만 하고,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만 사 온다. 하지만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충동구매가 잦다. 작년 연말에도 한번 다녀왔다. 이것저것 구경하다 다이어리 코너에 섰다. 연말연시라 다이어리, 스케줄러를 파는 부스가 크게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서 아들을 위한 ‘주니어 플래너’를 하나 사 왔다. 


내가 스케줄러를 쓰기 시작한 건 한 10년쯤 됐을까? ‘소중한 것 먼저 하기’ 온라인 강의를 듣고 그때부터 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쓰고 있다. 초기엔 프랭클린 플래너를 해마다 구입해서 사용했는데, 지금은 회사 수첩을 스케줄러로 활용하고 있다. 예전보다는 많이 간소하게 작성하고 있어서다. 아침에 출근해서 그날 할 일을 리스트 업하고 하나씩 적어놓는다. 수명 업무가 떨어지면 바로바로 스케줄러에 추가한다. 해야 할 업무뿐 아니라 잊지 말고 해야 하는 건 뭐든 적어놓는다. 


  - 공과금 납부하기

  - 엄마한테 전화하기 

  - 책 고집 3차 모임 참석하기


와 같은 것들도 수첩에 적힌다. 까먹지 말아야 할 것들의 나열이다. 나 혼자 볼 거니까 자유롭게 사용한다. 해야 할 업무를 기록하고 기록한 제일 왼쪽에는 작은 네모상자를 그려 넣는다. 진행상황을 체크하기 위한 박스다.          

스케줄러는 수시로 들여다보고 업데이트한다. 완료하면 무조건 ‘v’ 표시하러 수첩을 연다. 그게 습관이 되어서 휴일에 집에 있을 때도 포스트잇을 이용해 1회용 스케줄러를 만들기도 한다. 


“주연아, 스케줄러를 쓰면 좋은 점이 많아. 그날 할 일을 까먹지 않고 할 수 있고, 혹시 언제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날 때도 찾아볼 수가 있어.”

“어른이어도 이런 거 안 쓰는 사람은 많아. 꼭 써야 되는 건 아니지만 쓰면 좋은 점이 많아."

"어떤 사람은 일을 자꾸 펑크 내는 경향이 있어. 약속한 걸 자꾸 안 지켜서 신뢰를 잃는 경우도 있고. 스케줄러 쓰면 까먹는 일이 절대 없어서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

“주연이도 학교 숙제를 까먹고 안 해가거나, 제출해야 될 프린트 물을 안 가져가서 야단맞은 적 있지? 그럴 때 이거 사용하면 까먹을 일이 없어. 어때? 괜찮을 거 같지?”


스케줄러 사러 가기 전에 아들을 꼬셔놓는다. 아들은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 반신반의했는데, 실제 다양하고 예쁜 스케줄러를 보고 마음을 굳힌 듯했다. 1월 1일부터 써보겠다고 한다.  꾸준히 쓰겠다는 다짐을 받고 직접 고른 스케줄러를 사준다. 지금까지는 열심히 쓰고 있다. 강요하거나 잔소리하면 숙제가 될 것 같아 가만히 지켜본다. 지나가는 말처럼, 문득 생각난 것처럼 가볍게 물어보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오늘은 V(완료 표시)가 몇 개야?”

“엄마는 오늘 activity 중에 점 (· , 진행 중 표식)이 하나고, 나머진 다 V 야”


아들도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뜸을 들였다 말하는 게 어째 미심쩍긴 하다. 

어제저녁에도 스쳐 지나듯 물었다가 주연이 한 마디에 빵 터졌다.


“엄마! 내년에는 아니 조금 더 크면 나도 프랑켄슈타인 쓸래, 주니어 플래너 대신에”

“어? 프랑켄슈타인? 그게 뭔데?”

“프랑켄슈타인 플래너! 엄마가 쓰는 거 있잖아요”

“하하. 프랑켄슈타인? 프랭클린 플래너야”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지”

“아~ 그래요? 난 프랑켄슈타인인 줄 알았는데… 엇. 일기에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적었는데”

“커크큭”


아들이 스케줄러를 썼으면 하는 이유 중 제일 큰 것은 덜렁대는 성격 때문이다. 준비물이나 숙제를 스스로 잘 못 챙긴다. 기억이 오래가지 않고 금방 잊어버리거나 놓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엄마처럼 내가 일일이 챙겨주지 못하기 때문에 아들 스스로 챙기는 습관이 들었으면 한다. 


근데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다. 스케줄러에 적어두거나 바로 실행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어른인 나도 그럴진대 아이에겐 무리한 요구다. 아이가 모든 걸 다 잘 챙기면 더 이상 아이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좋은 습관이 들면 어른이 돼서도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스케줄러를 성실히 사용하면 빼먹거나 놓치는 일이 없어진다. 해야 할 일을 적어놓고 수시로 상황 체크를 한다. 완료 표시인 v가 많을수록 보람찬 하루를 산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런 뿌듯함을 한번 느끼면 쓰지 말라고 해도 쓴다. 뭐든 즐거움을 느끼면 자발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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