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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May 25. 2017

62 밥 많이 주세요

2003년 11월 작성, 2017년 5월 편집

3살, 33개월의 아들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쓰기 시작한 육아일기는 커갈수록 뜸해진다. 역시 처음 마음을 꾸준히 지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쑥쑥 크는 듯 하지만 또 언제 크나 싶은 마음도 있다. 집에 아이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별다를 게 없는 하루하루가 아이 덕분에 특별해진다. 아이가 있어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한 번은 아들에게 단위를 자연스럽게 가르쳐주고 싶어 대화를 시도했다. 


(나) 주연아! 종이는 한 장이야? 한 개야?

(주연) 한.장

(나) 음... 그럼, 우유 한잔 주세요야, 우유 한 개 주세요야?

(주연) 우유 한잔 주셰요

(나) 연필은 한 자루야? 한 개야? (좀 어려웠다)

(주연)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몰랴

(나) 연필은 한 자루라고 하는 거야. 알았지?


슬슬 엄마와의 대화가 지루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몸을 가만두지 않는다. 소파에 드러누워 뒹굴다가, 발가락을 잡고 이상한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소파 등받이에도 오르락, 내리락하다 다시 오르려 시도한다. 


(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나) 그럼, 밥은 '밥 한 공기만 주세요' 하는 거야, '밥 한 개만 주세요' 하는 거야?

.

.

.

.

.

.

.

.

(주연) 밥 많이 주셰요!


구경하던 어른들 깔깔대고 웃겨 죽는다.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세 살짜리가 저리 유머러스해도 되나? 무슨 개그 프로를 보는 것 같았다. 순발력이라 해야 하나? 작은 변화도 뭐든 좋게만 보인다. 아이가 크고 있구나 증명되는 순간이 있다. 문득 느껴지는 성장의 기록들이 기분 좋게 한다. 이런 게 아이를 키우는 맛이겠거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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