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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제이 May 27. 2017

63 전교 부회장 선거

                                                                                     

2012.9.4  초등 5학년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주연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뭔 일일까 싶어 깜짝 놀라 받아보니 ‘서프라이즈’ 소식이었다. 전교 부회장 선거에 주연이가 나간다고 했는데, 마음이 안 바뀌었는지 물어보는 전화였다. 마음이 안 바뀌었다면 아래 준비물들을 가져오면 된다고 한다.


1. 포스터 (선거공약이 들어간) 2장

2. 피켓 1~2개

3. 연설문 A4 2장 분량


세 가지나 된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들이어서 어려운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퇴근했다. 정작 아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후보로 ‘나간다, 안 나간다’ 계속 고민하더니 토요일 오후엔 결국 ‘안 나가겠다’고 선언한다. OTL 귀찮다나. 준비해 갈 것들을 검색해보니 POP로 돈을 들여서 하는 분위기다. 시간도 없고, 돈까지 들여서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들도 안 나가겠다 하니 그냥 없던 일로 하기로 한다. 잠깐 심쿵 했던 것으로 좋다 말았다. 



2013년 3월, 초등 6학년


작년에 잠깐의 해프닝 이후로 잊어버리고 지냈다. 올해는 어쩐 일인지 아들이 먼저 준비해야 한다고 서두른다. 작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진짜 하고 싶은 눈치다. 작년에 잠깐 알아본 POP를 살짝 고민한다. 사진이랑 돈을 주면 멋들어지게 만들어준단다. 아이들 선거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어설퍼도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다섯째 동생이 미적 감각이 좀 있다. 다섯째네 부부를 초빙해서 엇비슷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처음 예상은 두 시간이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3배나 걸렸다. 대여섯 시간만에 겨우 완성되었다. 실수도 있었고, 삐뚤어진 곳도 있었지만, 여러 사람의 정성이 깃든 작품(!)들이다.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했다. 아들도 자신의 일이니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어떤 문장을 고를지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조율하고 결론을 내린다. 사진은 어디에 배치하고 어떤 색으로 쓸지부터 사소한 것까지 의견교환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밖이 깜깜해져서 몸과 마음이 바빠졌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결과물이다.


  

"두발로 힘껏 뛰겠습니다"로 쓰고 싶었으나 쓰다 보니 칸이 없어 짧게 "두발로 힘껏 뛰겠삼" 으로 줄여 쓰는 등 실수가 있었다. 실수가 있을 때마다 한바탕 웃고 넘어가기도 하고, 처음부터 다시 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좋은 추억이다. 작업 후에 치우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다음날 학교에 들고 가야 하는데, 어디에 담아 가야 할지도 고민이 되었다. 그냥 들고 가야겠다고 결론 내렸다. 


결과는 아들이 전교 부회장이 되었다. 한 학기 동안 하는 활동이었다. 

여러 사람 고생한 게 헛수고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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