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존의 하소연

컴공생, 로스쿨에 도전하다 (-1)

by Eliks

지난 글에서, 최종화는 아마 2월 중에 올릴 거라 하였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합불여부가 확정된 다음에 글을 쓰는 것이 리스크가 작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놀랍게도 이는 현시점까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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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난 합격도 불합격도 아닌 미(未)합격 상태이다. 예비합격순위가 1위로 되어있는 것은, 내가 지원한 학교의 전산시스템상 앞에서 추가 합격자가 발생한 만큼 번호가 감소하는 구조라서 그렇다. 현 상태가 유지된다면 나는 내 바로 앞사람에서 합격문이 닫혀버린 꼴이 된다.


이런 상황을 단 세 글자로 표현하는 은어가 "정병존(zone)"이다. 합격권도 불합격권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 걸쳐있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게 마치 정신병에 걸린 듯하다는 맥락에서 쓰인다. 확실히 불확정성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걸 차치하더라도 두 가지의 실질적인 불편함이 있었다.


첫째는 주변인에게 현 상황을 설명할 때 말이 길어진다는 점이었다. 졸업예정자인 나에게 앞으로 뭐 할 거냐 묻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는데, (법학전문)이라는 말만 가리고 "대학원 준비해요"라고 기망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에는 그런 변명을 꾸미는 것조차 귀찮아서 로스쿨 준비를 실토했다. 그래서 가족친지는 물론이고 지도교수님, 미용사분이나 PT선생님에게까지 로스쿨의 예비합격제도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을 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눈 딱 감고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한 번 해보겠다.


내가 로스쿨을 합격하려면 '두 번의 기적'이 필요했다.

로스쿨에서 예비합격자를 추가로 선발하게 되는 사건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기합격자의 등록포기로 인한 빈자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특이하게도 재학생(곧, 예비2학년)의 자퇴 등으로 인한 빈자리이다. 후자를 "결원보충제"(이하 결보)라고 하는데, 결보에 의해 추가되는 합격생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다만 문제는 이 결원보충제도가 올해 입시에서 폐지될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로스쿨 내에서 '반수' 문제가 횡행하여 이에 대한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규정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여전히 반수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요원하여 늘 그랬던 대로 교육부는 결보를 연장시키려 했지만, 변호사 수가 늘어나는 것을 싫어하시는 사람도 있는 만큼 법무부와 충돌이 있어 제동에 걸리게 되었다. 근데 거기에 더해 시행령을 공포해야 할 대통령이 직무정지가 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첫 번째 기적이라 함은 로스쿨법 시행령이 개정됨으로써 내가 합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었다. 내가 받은 예비 번호만큼의 등록포기자가 발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상목 권한대행께서 통과시키며 첫 번째 문제는 해결됐다.

다만 결보가 통과됐다고 안정권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받은 예비 번호가 10번이고, 결보 제도가 동작하던 최근 4년간 최종 예비 번호는 9~12번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특히 작년에는 예비 9번까지만 돌고 문이 닫혔다. 그 두 번째 기적까지 통과해야만 합격할 수 있다.


예비합격의 잔인한 점은 이런 민망함이 한 번으로 안 끝난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합불 각이 눈에 보일 것이다"라고 설명드린 바와 다르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합격 확률이 50%에 수렴하는 현상을 보였다. 게다가 이 추가합격 발표는 전화로 개별통보될 뿐 '마감일'이 없었다. 심지어 2월 19일에도 한 명의 추가합격자가 발생했다. 이 글을 쓰고 발행한 이후 나에게 전화가 오는 세계선도 이론상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불합격(미합격)을 전달받고 전달하는 과정은 꽤 지쳤다.


전공(?)을 살려서, 아예 매일 내 예비번호를 알려주는 봇을 만들었었다.


또 다른 고충은 '붕 뜨는 시간'이다. 사실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첫 포스트에서 이미 적은 바와 같이, "아쉽지만 개발자 회귀"라는 플랜을 준비하고 있었다. 차라리 '우주예비'(가망이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것을 우주로 비유한 표현이다. 9~12번까지 도는 학교에서 예비30번을 받았다면 딱 그런 상황이겠다)를 받았다면 취준이라도 빨리 시작할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다만 언제까지고 손가락만 빨 수는 없겠다는 판단에서, 1월 초부터 개발자 복귀 각을 준비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로스쿨 합격 소식을 전해 들을 경우, 지원 프로세스를 바로 포기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채용 담당자에게 입사 시점을 3월 초로 조절하고 싶다고 양해를 구하는 등 번거로움은 남아있었다. 4개의 회사에 지원했는데, 두 달 동안 겨우 4개의 회사면 사실 꽤 남는 시간이 많은 상태였다. 면접 일정도, 친구 약속도 없는 쉬는 날에는 불안하게 유튜브로 시간만 녹이곤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여태 평생 생각도 안 했던 PT도 이 시점을 즈음하여 시도해 봤다. 운동 후 몸이 피곤할 때 느끼는 특유의 나른함이 확실히 그런 정병존을 버티는 데는 도움이 된 듯하다.


하지만 사실 그런 붕 뜨는 시간을 굴리는 건전한 방법으로써는, 물론 운동도 좋지만 하루종일 운동하는 것도 아니니, 로스쿨생이라면 아마 "민법 선행"을 추천했을 것이다. 이제 와서 찾아보니 로스쿨 합격했으면 제발 민법 1회독좀 하라고 입을 모아 얘기하던데, 나는 안일하게 합격이 확정되면 그때부터 알아봐야지 하고 "민법 선행"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을 소홀히 했다. 그나마 나중에라도 늦바람이 들어서 '무료'로 제공되는 예비강의를 들어보긴 했다. 사실 하루에 1시간씩 잘게 끊어서 들은 바람에, 솔직히 남들 앞에서 "공부했다"고 말하기는 민망한 수준이긴 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렇다. 만약 붙는다면 민법 선행을 하지 않은 것의 부채가 스노우볼처럼 굴러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게 뻔했고,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향후 재수를 준비할지를 고민하기 위해 "내가 법 공부가 잘 맞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유용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재수를 성공하면 그것은 그것대로 어드밴티지가 남을 것이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과학고를 학원 없이 다녔는데도 성적이 잘만 나왔던 시절 때문인지 아직 안일한 태도가 마음속에는 박혀있다. 이래서 어릴 때 실패를 안 한 자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려나. 근데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100+만원 상당의 인강을 그거 하나만 믿고 끊는 건 나로서는 아직 적응하기 힘든 소비 행태기는 하다... 하지만 본격적인 민법 강의에 앞서 무료 내지는 10만 원 내외의 예비강의를 제공해 주시는 강사님들이 계시니 로준을 하든 아니면 애초에 로입을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미리 저렴한 비용으로 맛보기를 해 보는 건 꽤나 유용할 것 같았다.


민법 맛보기 강의는 꽤 재미있었다. 어쩌면 내가 사실상 로스쿨에 불합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가벼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된 사교육 경험이 없어서 일타강사가 이런 것이구나 느끼기도 했다. 입시에 대한 재도전 의사가 있지만, 지금까지의 로스쿨 도전기에서의 후회는 없다. 안일한 마인드셋을 갈아 끼우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로스쿨을 준비하고 싶다 할 정도로 마음이 움직인 건 아니었다. 아마 공부 안 하고 재미 삼아 LEET나 한 번 더 쳐보고 말지 않을까? 일단은 나에게 심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더 가까운 길부터 탐색해보고자 한다.


물론 당장 내일이라도 합격 전화가 온다면, 일단 등록은 하고 볼 듯하다. ㅎ




끝. 정보 전달보다는 심리적 안정(글쓰기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을 위한 휘갈김에 가까웠던 글을, 그럼에도 재밌게 봐주고 반응을 남겨준 독자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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