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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여행자 Sep 08. 2020

자신을 용서하라

(사별의 치유와 회복 5)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후 사별자들이 느끼는 죄책감은 아마도 그들을 가장 괴롭히는 감정일 것이다. 사별자가 느끼는 죄책감은 두 가지 측면에서 특별하다. 하나는 용서를 해 줄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엄청난 죄의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사별자들을 만나보면 자신의 배우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 죄책감과 비난은 대부분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타인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또한 미래를 미리 알 수도 없기 때문에 자신의 어떤 언행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만든 억지 죄의식에 얽매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특히 배우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경우는 다른 경우보다 심한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다. 내가 조금만 더 잘해주었더라면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하지만 얼마만큼 잘해주어야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까?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다 대신해주고 신경써주면 가능했을까? 그렇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많은 것을 배려하고 신경 써 준다고 자살을 100%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좀 더 잘 대해주지 못한 것은 자살의 원인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잘 해 주더라도 좀 더 잘 할 수 있는 여지는 항상 있으므로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죄책감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질병으로 배우자를 잃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의 행동과 판단은 배우자의 죽음과 별개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맞다. 병원을 옮겼으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후회가 남게 된다. 미리 병을 발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치료방법에 대한 후회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겠지만 당신은 그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미래의 결과를 알지 못한 채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당신은 똑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옵션B의 저자인 셰릴 샌드버그는 사별 후 겪게 되는 죄책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배우자가 죽었는데 어떻게 즐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지?’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죽은 사람은 당신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우리는 삶을 즐기는 문제에서 자신에게 관대해야 한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난 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춤을 추다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눈물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죄책감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들었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보니 갑자기 너무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사별한지 1년 반도 되지 않았는데, 남편없이도 행복감을 느끼는 것에 큰 죄책감이 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죄책감은 타당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다는 점을 알아차리면서 죄책감을 극복해 나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죄책감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주제를 회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죄책감의 문제를 극복했는지 몹시 궁금했고 자료를 찾고 글을 쓰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다. 다행히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점차 죄책감 문제를 극복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사별자들과 나눈 이야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의 아내는 암 투병 7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나의 후회와 죄책감은 아내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아내의 죽음이 평안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었다. 죽음은 그녀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과 죽음이 임박한 아내에게 아무런 위로도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만약에 ~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반복하면서 괴로워했다.


하지만 관련된 책과 글을 찾아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나는 엉뚱하게도 죄책감 속에서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구하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가 괴롭게 죽음을 맞이했으니 나도 괴롭게 사는 것이 내 마음을 더 편하게 해준다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심하게 죄책감을 느껴도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고 나의 마음도 편해지지 않는다. 나의 죄책감은 죽은 아내에게 어떠한 유익도 끼칠 수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내는 내가 죄책감 속에서 괴롭게 사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죄책감을 조금씩 떠나보내려 한다.


사실 죄책감은 사별자가 겪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배우자와의 영원한 이별을 한 후에 후회가 없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무조건 잘못된 감정으로 정죄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죄책감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잘못이라 생각하는 것에 대해 반성하는 것은 비슷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막아 줄 것이므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과장하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은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별의 슬픔에서 벗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어렵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범한다. 본인만 예외이기를 바라는 것은 신이 되고 싶어하는 욕심이나 다름없다. 오늘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죽은 배우자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싶다. 분명 그 사람은 행복에서 멀어지는 당신의 방황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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