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세상의 리듬을 바꿔 놓았던 시기, 나는 싱가포르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전까지 십여 년은 계절처럼 반복되는 루틴 속에 살았다. 몇 달씩 상하이로 돌아가 일하고, 다시 휴가처럼 싱가포르에 와 머무는 생활.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완전히 이곳에 뿌리를 내려야 했다.
정착 초기, 나는 한국인 커뮤니티 대신 현지 로컬 영어 교회를 선택했다.
나는 우연하게 지인을 통해 자선행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주기적으로 불우한 이웃들에게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주는 활동에 나서게 되었다.
어느 순간, 큰아이도 함께 데리고 나가 보기로 했다. 아이에게도 이 따뜻한 경험을 전하고 싶었다.
그 모임은 후에 알고 보니 합법적인 절차를 갖추지 않은 민간 후원단체였다.
기부받는 사람이 매주 한 번, 70명에서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고 대부분은 선량한 시민들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늘 제일 앞줄을 차지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분노를 뿜어내던 ‘왕언니’ 한 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희 이거 불법인 거 알거든? 당국에 고발할 거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그저 특이한 사람이겠거니 했지만, 가끔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풍경도 목격하게 됐다.
갓 게임을 끝내고 나온 듯한 30대 여성. 기름진 머리에 씻지 않은 얼굴.
‘일은 안 하고 구호식품 받으러 온 건가…?’ 그런 생각이 스쳤다.
두 번째로 아이가 봉사를 다녀온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입을 열었다.
"엄마, 다음엔 안 가는 게 좋겠어요. 이해가 안 되는 게 너무 많아요.
1. 일주일에 한 번, 빵 한 봉지, 계란 한 판, 믹스커피, 통조림, 쌀, 라면, 야채, 간장, 기름. 사실이면 아껴 먹으면 일주일을 살 수 있는 양이에요. 그걸 양보하고 나누면 더 많은 사람들한테 줄수있어요.그런데 다들 서로 먼저 받겠다고 싸우잖아요. 고마움을 전혀 모르고 있어요.
2. 그리고… 다녀오면 마음이 이상해요. 좋은 일을 했는데, 기분이 더 가라앉아요."
그날 이후 우리는 다시 그곳에 가지 않았다.
아이의 말은 단지 판단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질문이었다.
나 또한 5~6회의 봉사를 하며 어딘가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 일이 나에게 남긴 질문은 이것이다.
"선행이란 무엇일까.
무언가를 나누는 것만으로 '좋은 일'이라 말할 수 있을까?
상대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손 내미는 것, 그건 어쩌면 또 다른 방식의 오만은 아니었을까?"
봉사는 때때로, 내 안의 거울을 들이민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예상치 못한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