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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Mar 06. 2024

궁합도 안 본다는 INTJ와 ENFP

17년지기 동성의 친구와 연인이 되었습니다.

“조셉, 기분 안 좋아?”

“응.”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조금 있으면 나아질 것 같아서 그냥 같이 있으면 돼.”



“와, 진짜 막 행복하다. 아무렇게나 행복하네.”

“왜?”

“플레이팅이 너무 예쁘게 됐어.”



나는 감정 기복이 크고, 지속 시간은 짧다. 기복이 크다는 것은 행복감과 우울감을 즉각적으로, 별 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도 곧잘 울고, 이별한 친구 이야기를 듣다가 울기도 한다. 문득 십 년쯤 전에 다녀왔던 여행지와 그때의 감상이 떠오를 때면 가슴이 벅차 눈물이 흐를 때도 있다. 그래서 눈물이 많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시에 나무젓가락이 깨끗하게 떼어지거나 다이소에서 구매한 조화가 생각보다 테이블에 잘 어울릴 때, 피자 귀퉁이가 바삭하게 씹힐 때 참을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힘들게 지하철 출구 계단을 올라갔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시내버스가 도착하면 왠지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일을 하다 보면 불합리하다고 느낄 때도 있고, 무례한 전화를 받고 화가 날 때도 있다. 작업물이 좀처럼 진도를 못 빼고 있으면 답답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 지속 시간도 짧다. 두세 시간 안팎으로 나쁜 감정은 슬슬 가라앉는다. 


그래서 곤은 나와 대화하는 게 편하다고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돌려 말하는 경우가 없다.  그냥 못해서 그렇다. 나름대로 거짓말이라고 입을 다물고 있어도 표정에 몽땅 표시가 난다. 그럴 거면 거짓말은 안 하는 게 낫다.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내 직설적인 화법에 악의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달라며 몇 번이나 당부했다. 곤은 그런 게 편하단다.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나와 대화로 풀어갈 생각이 있는지 따위의 의향이 입밖으로 즉각적으로 튀어나와서 조치를 취하기가 쉽다는 거다.


곤은 감정 기복이 적다. 고민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면 그 문제에 관해서는 감정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단다. 그런 의미에서 곤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일과 어쩔 수도 있는 일을 잘 구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때로는 어쩔 수도 있는 일에 엄청나게 몰두하곤 한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닥이 잡히면 그건 쉽게 놓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멋진 집요함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인스턴트한 내게 끈질기게 어떤 일에 매달리고 몰두할 수 있는 능력은 내가 가지지 못한 특별함이니까. 


언젠가 곤에게 “자기는 화라는 감정이 없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곤은 당연히 화날 때가 있다고,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화나는 순간이 없겠냐고 했다. 하지만 나처럼 화내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걸.



화는 느끼는데 화를 낼지 말지는 고민하게 돼.


곤이 한다는 대답은 이랬다. 화라는 감정은 느낀다. 그런데 화를 내기 전에 고민한다.

─ 대체 왜?

화라는 건 화약이고 총알이라 장전까지도 할 수 있는데 이 감정을 발사할지 말지를 고민한다는 거다. 총을 쏜다는 행위에는 위협을 하든, 뭘 사냥하든, 축하를 하든 여하간 기대하는 효과가 있을 텐데, 화를 발사하는 데에는 그 감정이 풀리거나 문제가 해결되거나 하는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거다. 

문제가 해결되어야 화가 풀릴 텐데, 내가 화를 내는 걸론 문제가 안 풀린다고.




뭐라고요?

이게 INTJ의 감정인가?



감정은 아무튼 충동적이고, 즉발적인 표현이라 감정을 드러낼지 말지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건 좋다고, 싫은 건 싫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내가 곤의 눈에 신기하듯이, 내 눈에 곤의 그런 면도 신기하겠거니 싶었다.

그래서 곤과 같이 있을 때면, 순간 욱하고 감정이 끓어올랐다가 가라앉곤 한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씩씩거리고 있으면 곤이 아무리 봐도 그다지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울화를 털어놓는 상대방이 너무 침착해서 한 십 분 쯤 투덜거리다 보면, 나도 이렇게까지 화가 날 일은 아니었나? 싶어지는 거다.


이따금씩 곤은 같이 화를 내고 울어주지 못해서 조금 신경쓰인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INTJ인 그녀와 함께 있으면서, 나도 조금 차분하게 내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래서 INTJ와 ENFP는 궁합도 안 본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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