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문화초대권을 받아 관람 후 느낀 바를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니 일전에 다녀온 사운드베리페스타가 떠올랐다. 실내가 아닌, 드넓은 공원을 보는듯 했다. 오히려 그때보다 공연장이 더 컸다. 무대 앞에는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존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었고, F&B존의 규모도 그때보다 더 컸다. 무대는 두 개의 무대가 나란히 있었다. 일전에 갔던 사운드베리페스타에서는 두 무대가 떨어져 있었고, 각각 다른 위치에 있었다. 이번에는 무대 간 간격이 거의 없고 이어져 있어서 가수들은 열기가 오르면 두 무대를 넘나들며 공연했다.
원하는 공연을 골라 즐기는 컨셉이기에 두 무대를 나란히 배치한 방식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번갈아가며 공연해도 한쪽에 모여 있으니 원하는 공연을 골라 보는 기분이 덜 느껴질 것 같았다.
주최사인 서드플래닛은 “장르, 세대, 취향을 초월해 음악으로 연결되는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생각하자 모든 게 다르게 보였다. 두 무대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공연하는 가수, 선택한 공연은 아니지만 바로 옆에서 공연을 보면서 어느새 즐기고 있는 관객, 팬과 팬이 아닌 관객의 경계선이 사라지고 음악으로 하나가 된 모습은 취향을 초월한 광경이었다. 하나인 듯 두 개인 무대를 다시 바라보며 메가필드뮤직페스티벌과 잘 맞는 방식이라며 인정했다.
무대 앞에는 Standing Zone, Seating Zone, Picnic Zone으로 나뉘어 있었다. 저번에 봤던 사운드베리페스타도 실내형 뮤직페스티벌인데다 일산킨텍스에서 열려서인지 비교·대조할 수밖에 없었다. 두 개의 무대와 분리된 스탠딩존, 넓게 마련된 F&B존의 테이블, F&B존에서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볼 수 있는 점, 실내에서도 야외 뮤직페스티벌의 기분을 낼 수 있는 환경, 돗자리를 펴고 공연을 볼 수 있는 피크닉존은 사운드베리페스타와 비슷했다. 차별점은 피크닉존의 규모가 더 커졌다는 점과 추가된 Seating Zone이다. 피크닉존의 공간이 커진 만큼 시각적으로도 야외에 있는 듯한 착각이 극대화되었다. Seating Zone은 의자에 앉아서 볼 수 있는 구역이었다.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도 워낙 실내가 넓어서 여유 공간이 있었다. 사람이 몰려도 복잡하거나 답답하지 않았다.
다양하게 마련된 좌석 덕분에 관객은 각자의 방식에 맞게 공연을 즐겼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실내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다채로웠다. 실내형 뮤직페스티벌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주최사는 세대, 장르, 취향만 언급했으나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었다. 메가필드뮤직페스티벌은 실내형이라는 장소도 초월했다고.
메가필드뮤직페스티벌은 23년에 시작하여 꾸준히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이번에는 일산 킨텍스에서 열렸다. 그래서인지 무더위에 영향받지 않고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다는 홍보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무더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다. 특히 식음료를 즐길 수 있는 Food&Beverage Zone은 사람들의 열기와 조리 열기에 일행이 답답해할 정도로 더웠다. 다행히 언제든 재입장할 수 있어서 로비로 나와 진정시킨 후, 다시 관람할 수 있었다. (로비가 더 시원했다)
무대 앞 Standing Zone도 더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손부채질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리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어서 더운 거라고 해도 일전에 다녀온 사운드베리페스타 현장을 생각하면, 그땐 손부채질하는 관객이 많지 않았다. 다행히 저녁 시간대가 되면서 관객이 더 늘어나자, 에어컨 바람이 느껴졌다.
Food&Beverage Zone도 오후 때보다 훨씬 시원했다. 관객이 더 늘어나니 에어컨 온도를 조절한 게 아닐까 싶었다. 관객 수를 보면서 관리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쾌적한 환경을 제공했다면 더 좋았을 듯하다. 더위를 잊고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라고 홍보한 만큼 실제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 주길 바란다.
그날의 라인업은 god, 이창섭, 이승기, 정은지, 하성운, 홍이삭, 윤산하, 공원, 김뮤지엄x도유카, 지수연밴드로 장르가 다채로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관객의 연령대와 유형이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좋아할 만한 라인업으로 꾸려져서인지 40대 이상의 관객이 정말 많았다. 여느 뮤직페스티벌과 달리 연령대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관객 유형도 다양했다. 친구, 연인, 혼자 온 관객, 가족, 부부 동반으로 보이는 중년그룹까지 다양했다. god 공연을 볼 때는 내 옆에 부부와 어린 자녀가 있었는데, 참 보기 좋았다. 그야말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뮤직페스티벌이었다.
신선했던 점은 중년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이었다. 보통 중년관객의 이목을 끌 때 트롯가수를 섭외한다. 그러나 메가필드뮤직페스티벌은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국민 가수를 섭외했다. 모든 가수의 무대에는 옛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 선곡되었다. 그래서 가수는 잘 몰라도 그때 그 시절의 노래가 나오자 따라 부르거나 리듬을 타는 중년관객이 많았다.
나와 일행은 애매한 세대였다. 이창섭처럼 요즘 핫한 가수임에도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지만 정은지나 홍이삭은 잘 알고 관심도가 크며, 이승기나 god는 추억을 소환시켜주는 가수라 열광한다. 우리는 정확히 어느 쪽일지 궁금해하고 있을 때, 확실한 답을 얻은 순간이 있었다.
우리는 Standing Zone과 Food&Beverage Zone을 넘나들며 공연을 즐겼다. 이승기의 공연을 한껏 즐기고 바로 옆에서 이창섭 무대가 시작되기 전, 우리는 Standing Zone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다 눈치채버렸다. 우리를 비롯하여 같이 빠져나온 관객들은 30대 중반 이상 되어 보였고, Standing Zone으로 들어가는 관객들은 30대 초반 이하로 특히 20대가 많아 보였다. 세대교체를 눈으로 확인한 셈이랄까.
한번 보이기 시작하면 계속 보이는 법. 그때부터 내 눈은 주변을 탐색하기에 바빴다. Food&Beverage Zone에서 식음료를 즐기며 주변을 둘러보니 앳된 얼굴을 한 20대는 보이지 않았다. Food&Beverage Zone에 앉아 있는 관객은 모두 30대 중반 이상이었다. 그 광경이 매우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웃었다. 세대를 초월한 메가필드뮤직페스티벌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이승기의 공연이 시작하면서 옛날에 많이 들었던 곡들이 나오자 반가웠다. 중간에 멘트시간에는 이승기 특유의 말투를 들으니, 옛날에 많이 봤던 예능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아마 그 말투를 옛날에 봤던 예능프로그램에서 많이 들어서 그랬나 보다. 추억의 가수를 가까이에서 보고, 라이브와 말소리를 직접 들으니 신기했다. 여느 연예인을 봤을 때와 다른 기분이었다. 유독 더 신기하고, 반갑고, 좋았다.
가장 오래된 추억을 소환한 가수는 god였다. god 순서가 되자 서둘러 Standing Zone으로 갔다. 팬들이 많아서 이미 해당 무대의 Standing Zone은 꽉 차 있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바로 옆 무대의 Standing Zone에 들어갔다. 거리는 가까웠지만, 해당 무대가 아니라서 아쉬워하고 있을 때 귓가에 노랫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팬들이 공연을 기다리는 동안 노래를 부르고 있던 거였다. 울려퍼지는 떼창을 들으며 한 그룹의 팬생활을 했던 소녀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누군가를 애정하는 마음을 잘 알기에 나도 함께 따라 불렀다. 곧이어 내 옆, 앞, 뒤에서 노랫소리가 퍼져나갔다. 국민가수의 등장으로 팬이 아닌 사람도, 연령대 상관없이 모든 관객이 하나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해당 무대 존이 아니라서 아쉬워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는 두 개가 아니라 하나였다.
god가 등장하자 오랜 세월을 초월하여 나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초등학생의 나는 god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많이 좋아하지 않았고, 잠깐이었다. 그렇게 기억했었다. 팬들의 응원구호가 귓가에 들리자 자연스럽게 입을 떼는 나를 보면서 왜곡된 기억이라는 걸 알았다. 동시에 잊고 있던 기억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래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듣고 가사를 외웠던 나, 좋아하는 곡의 악보를 사서 피아노 연주를 해보던 나, god가 나오는 예능프로그램을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봤던 나.... 그제야 ‘god를 꽤 많이 좋아했었구나’라고 인지했다.
그 시절의 그 마음으로 god를 바라봤다. 여전히 팀워크가 좋아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 저런 면을 좋아했었어.’라고 생각했다. 위로와 공감이 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god의 음악 자체를 좋아했던 마음까지 떠올랐다. 노래를 따라 부르고, 몸짓으로 리듬을 타고, 환호하며 온전히 공연을 즐겼다. 그런 나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딱 하나가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god의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그곳에는 깡마르고 왜소한 체격에 머리를 요란하게 묶은 안경 쓴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외향적이고 당돌한 성격에 에너지 넘치는 초등학생의 나였다. 차분하고 내성적인 지금의 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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