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간격

by 희망

찰스 존슨, 『중유의 밤』

“Freedom is the distance between the hunter and the hunted.”

자유란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의 거리이다.


찰스 존슨의 『중유의 밤』에 등장하는 문장, “자유란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의 거리이다”는 짧지만 놀라울 정도로 깊은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이 문장은 인간 존재의 조건, 권력의 본질, 그리고 자유의 실체를 드러낸다. 사냥꾼과 사냥감이라는 은유는 단순히 자연 세계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지배와 피지배, 위협과 도피, 억압과 해방의 패턴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사이의 ‘거리’가 바로 자유의 크기이자 질을 결정한다는 말은 인간이 어떻게 자유를 잃고, 어떻게 자유를 회복하는지를 날카롭게 비춘다.


먼저 ‘사냥꾼’은 우리를 통제하고 압박하며, 선택의 여지를 좁히고, 우리로 하여금 도망치게 만드는 모든 힘을 포괄하는 상징이다. 그것은 사회적 규범일 수도, 직장에서의 구조적 억압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사냥꾼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의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 자기혐오, 열등감, 강박, 과거의 상처일 수도 있다. 이 내적 사냥꾼들은 외부의 압력보다 더 집요하고 끈질기게 우리를 뒤쫓으며, 우리가 바라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흡사 사냥감을 몰아붙이듯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반면 ‘사냥감’은 선택권을 잃은 모든 인간의 상황을 상징한다. 통제력을 상실한 채,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의 의도와 힘에 의해 자신의 행동과 감정, 삶의 방향이 좌우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냥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흔히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잃는다. 이때 ‘거리’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심리적 여유, 안전지대, 자기 결정권,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영역을 의미한다.


찰스 존슨이 말하는 자유는 바로 이 ‘거리’를 확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냥꾼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우리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선택할 여지도 없이 도망치는 데만 에너지를 쏟게 된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우리는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고, 자신이 어디로 갈지, 어떻게 살지 결정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자유란 사냥꾼이 사라지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는 그 사냥꾼과의 거리—즉, 나를 억압하고 위협하는 힘으로부터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 문장은 인간이 자유를 잃는 과정을 날카롭게 설명한다. 자유는 한순간에 박탈되는 것이 아니라, 사냥꾼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잠식된다. 일터에서 압력이 조금씩 커질 때, 인간관계에서 누군가의 지배가 강화될 때, 사회적 시선이 점점 우리를 옥죄어 올 때 우리는 어느 순간 ‘도망치는 삶’에 익숙해져 버린다. 그때 우리는 이미 사냥감이며, 자유는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자유를 회복하는 과정은 사냥꾼으로부터 거리를 다시 확보하는 일이다. 그것은 억압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있고, 내면의 사냥꾼—두려움과 상처—을 멀리 밀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냥꾼과의 거리에 따라 인간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며,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선택하고, 움직이고,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자유란 억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느끼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이며, 자기 존재를 지키기 위한 공간이다.


이 문장은 또한 인간관계의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때때로 우리는 사랑이나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너무 깊숙이 관여하려 하거나, 반대로 누군가가 우리의 삶에 지나치게 침범하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건강한 관계는 ‘거리’가 유지되는 관계다. 상대가 사냥꾼이 되지 않도록, 내가 사냥감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것이 자유로운 관계의 조건이다.


찰스 존슨의 문장은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을 사냥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과의 거리는 충분한가?” 사냥꾼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우리는 숨을 쉬고, 생각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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