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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작가 Oct 29. 2020

쇼핑몰 하는 아내 남편의 입장을 듣다

당신만 할 수 있는 그런...

엇 5시다. 오늘 나가야 하는 물량을 다 내보내야 하는데 택배 소장님이 오시는 7시까지. 나는 그 물량을 다 내보낼 수 있을까? 가만있자, 린이는 영어학원에 도착했을 시간이네~ 오늘은 영어가 끝나면 친구 생일 파티가 있어서 친구 엄마가 데리고 간다고 했으니 뭔가 여유가 있는 기분이야. 요거 마저 하고 저녁까지 먹고 빈둥거려야지. 남편은 오늘 정시에 퇴근하려나? 문자를 보내봐야겠다.


'오늘 정시 퇴근? 저녁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조금 일찍 나와서 가는 길. 지하철 역 도착했어. 뭐 사갈 거라도?'

'아직 마트 안 지났으면 두부 부탁해~ 지져먹자'

'오케이'


한때 택배 작업을 하는 작업실을 낼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아직은 아직은 아니다는 생각에 쇼핑몰을 시작한 후로 식구들이 출근한 거실은 자연스레 내 작업실이 되었다. 남편은 지하철에서 내린 듯한데 거실과 식탁으로 쓰는 테이블을 둘러보니 이건 뭐 난장판이다 핫-


가끔 남편은 나에게 '자기는 참 태평할 때가 있어. 뭐 먹고 싶냐고 물어서 말하면 도착해도 아무 준비도 안 하고 있으면서 뭐 먹고 싶냐고는 꼬박꼬박 묻더라~' 뜨끔했다. 난 정말 그럴 때가 있었다. 집은 택배 봉투에 박스에 마스킹 테이프에 온갖 먼지가 날리게 해 놓고는 천연덕스럽게 5시에서 5시 반쯤 남편에게 메시지로 뭘 먹고 싶냐니- 그러다가 '어 여보 나 약속이 생겼어 저녁 간단히 먹고 갈게'하면 그날은 땡잡은 날이었던 것이다!! 일도 잘하면서 따뜻한 저녁도 챙길 줄 아는 그런 아내의 이미지를 획득하면서도 저녁은 안 지어도 되는... 쓰고 보니 소설이다.


얼른 어질러진 거실 바닥부터 정리하고, 완료된 박스들은 현관문 밖에 내놓고 창문을 확 열고 성능 좋고 가벼운 청소기로 거실을 휙휙 민다. 그리고 그가 들어와서 맨 처음 들어갈 안방 역시 간단히 청소기를 밀고 창문을 열고 룸 스프레이도 뿌려 놓는다.


그리고 가용할만한 반찬을 스캔한 뒤, 제일 중요한 밥통 검사. 한 번은 그럴듯하게 반찬과 채소 국까지 준비(?)했는데 밥. 밥을 깜박했던 것이다! 남편은 새벽부터 나가 종일 숫자와 씨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집에서는 편하게 쉬게 해주려고 한다. 아마 내가 그렇게 일하고 들어와도 남편은 나에게 그렇게 해주겠지 하는 낙천적 믿음을 10년 이상 유지한 채... 어쨌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곧 그가 두부를 손에 들고 집에 올 시간이다!


밥이 없었다. 밥을 하고. 급해도 잡곡과 검은 쥐눈이 약콩을 빼놓지 않는다. 네모나게 잘린 다시마를 하나 헹궈서 마지막에 올리면 감칠맛이 돌아 그렇게 한다. 감칠맛을 뺏긴 다시마는 거의 내 차지다. 여자들에게 다시마가 좋으니 일석 이조.


'띵동' 그가 왔다. 밥은 칙칙 거리고 끓여둔 소고기 뭇국도 데워지고 파프리카와 양배추도 있다. 이제 밥을 푸고 고추장을 종지에 덜어놓으면 된다. 아, 두부를 부쳐야지. 콩기름을 넣고 지지다가 1분 전에 들기름을 넉넉히 부어준다. 그러면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하니까.


그런데 아차차! 미처 테이블 옆에 제멋대로 쌓아져 있는 택배며 택배 봉투, 접착 부분을 뜯어내고 남은 비닐들이 널려져 있는 걸 치우는 걸 깜박했다.


"어 왔어? 저녁 먹어야지~ 두부는?"

"집이 왜 이렇게 정신이 없어?"

"오후 내내 배송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오늘 정말 바빴거든, 점심도 걸러서 너무 배가 고프네 나도"

"..."

"응 왜?"

"나는, 자기가... 아니다, 나 씻을게"


나는 자기가... 라니?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얼른 두부부터 지지자! 나도 배고프니까. 다행히 김 구워놓은 게 있으니 그 통도 꺼내고. 김을 찍어먹을 양념간장을 만들어 둔 게 있는데 그걸 두부에 찍어 먹어도 되니, 이런 걸 일타 양피라고 하나? 뭔가 되게 효율적이며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배고팠나 보네? 점심도 못 먹었어?"

"응, 내가 오늘 낮에 동대문 갔다가 들어오자마자 택배 포장을 시작했는데 아직 완전히 끝내지도 못했어~ 얼른 밥 먹고 또 해야 해 7시에 소장님 오셔서"

"난 자기가 이런 택배 포장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좋겠단 생각을 해. 그거 해서 얼마나 더 번다고. 점차 다른 일도 찾아봐. 당신이 당신만 할 수 있는 그런 일, 분명히 있을 거야"

"..."


뭔가로 머리를 뎅 맞은 것 같았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참고 참았다가 토해내는 사람. 이 말도 몇 번을 하려다가 주춤했을까?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하는 말일까? 그때 문득 친정 식구들이 떠올랐다.


5남매 중에 가장 공을 많이 들인 막내딸. 어머니 아버지뿐 아니라 언니 오빠는 내가 오래오래 대기업에 다니면서 임원을 하려나 기대했는지 모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편이었던 나는 우리 집에서 보기 드문 유형(?)이었으니까. 일례로 명절날 친척들이 오랜만에 모여서 웃으며 맛있는 걸 먹는 저녁에도 나는 골방에서 그때 빠져있었던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막내딸이 길지 않다면 길지 않은 회사 생활을 끝내고 자기 사업을 한다며 벌린 일이 '온라인 쇼핑몰'이라니. 아무리 1인 기업 인디펜던트 워커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 한다한들 지방에 계신 어른들 눈에는 물건을 떼다 파는 장사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친정에서는 유년시절 나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듯 그 누구도 나에게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쉽지 않다는 말과 등치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좋다니까, 나를 믿으니까 그런 줄 알았다는 것이 맞았을까?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 문제였다.


그런데 남편은 달랐다. 우리가 연애할 시절 나는 이름을 대면 아는 대기업에 인하우스 광고대행사에 다니고 있었다. 펜슬 스커트에 잘 만들어진 구두. 시즌별로 좋은 가방을 들고 종로로, 강남으로 출근하고 퇴근했다. 남편의 미래에는 커리어도 소중하게 여기는 아내와의 맞벌이를 하며 자리를 잡아가는 30-40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종용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회사 다니던 시절의 나에 대해 가끔 동경하듯 말한 적이 있었다. '자기 그때 프레젠테이션 해서 성과 내고 야근은 좀 했었지만 내가 린이 종종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고. 그때 기억나? 바빴지만 재미있었는데'


재미있었다고? 하루하루가 너무 치열해서 이 길이 맞나?라는 생각을 물 마시듯 자주 했었던, 아이가 어릴 적 워킹맘 시절을 남편은 그렇게 회상하고 있었다. 그런 남편의 눈에 굉장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확실한 타이틀도 있는 것이 아닌 그저 작은 쇼핑몰을 운영하며 블로그를 하고 체험단 활동을 하고 가끔 기고를 하는 내 모습이 작게만 보였을까? 그래서 다른 길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나는 지금이라도 남편의 기대에 맞게, 여러 군데 이력서를 내고 그중 하나를 골라잡아야 하는 걸까?


양보하자면, 아내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좋게 봐주는 남편이 고맙기도 했지만 나는 그날 저녁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 일이 어때서? 택배 포장할 땐 고되기도 하지만 가끔 거래처 직원과 싸우는 건지 아닌지 애매한 통화를 할 때도 있고, 가끔 고객과 길게 통화를 할 때도 있지만, 나는 내 일이 좋은데 남편은 나의 이 일이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는 그 날 저녁 고소하게 지져진 두부를 간장에 찍어 먹으며 별다른 말이 없었다. 평소대로라면 서로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다하며 금세 밥 한 공기를 비웠을 텐데 나는 그날 밥을 남기고 말았다.


밥 먹는 동안 내 눈치를 살피던 남편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일어섰다. 나는 린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평소대로라면 차를 가지고 갔겠지만 그날은 차를 두고 나갔다. 걷고 싶었다. 이 씁쓸한 기분을 어떻게 전환할지 막막했다. 상품 픽업이 완료되었는지 배송이 시작되고 있다는 알림이 연달아 울리고 있었다.




어떻게 남도 아니고 남편이 내 '일'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지? 오기만 해 봐. 오늘은 꼭 말할 거야.


"띠리띠리 띠리링~"

다음 날 오후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남편의 '나왔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씻고 나왔다.


"당신, 내가 이 일 하는 게 싫어?"

"응? 무슨 말이야?"

"내가 블로그를 하고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내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거. 당신 눈에는 의미 없어 보이냐고. 시작할 때는 미미했지만 나, 잘하고 있어. 내 일 점점 더 잘되고 있다고. 나 그냥 물건만 떼다 파는 거 아니야. 상품기획, 마케팅, 브랜딩, 물류와 배송, CS까지. 쇼핑몰을 운영하니 콘텐츠 공부부터 마케팅, 심리학, 경제까지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온라인 상에 내 개인 브랜딩도 하나씩 쌓고 있고. 당신 듣고 있어...?"


안경 너머로 그의 작은 눈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남편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꼭 안아주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의지가 안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요 몇 달 내가 남편에게 느꼈던 부분이었다. 어깨를 감싸던 팔을 풀더니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 쉽게 말해서 미안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더 그렇게 해봐. 난 잘될 것 같은데?" 남편은 어느 때보다 부드럽게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이 상점을 내려고 했던 그 마음, 지금 이 상점이 존재하는 이유, 상점이 안정적이 되면 무얼 하고 싶었지? 마음 속에 고스란히 묻어 두었던 것들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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