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요즘 인스타에서 화제인! 서진시장 히가라멘에 왔어요!
웨이팅 빡세기로 유명하죠~ 하루에 딱 백 팀만 받는 라멘집은 처음 본 것 같아요. 저희도 예전부터 몇 번이나 실패했다가 오늘 겨우 성공했잖아요.
캐치테이블도 테이블링도 없고 오직 번호표!! 예전에는 오전에만 가면 그래도 먹을 수 있었다는데 이젠 오픈런 실패하면 그대로 짐 싸서 집에 가야하더라고요.
세 번째 실패했을 때는 진짜 그냥 포기할까 싶었었는데 여러분이 댓글로 신청을 많이많이 해주셔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어요.
지금 시간이 오후 네 시고 저희는 아침 여덟 시부터 줄 섰어요. 번호는 72번! 방문하실 분들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시간 맞춰 왔는데도 앞에 대기가 좀 있어서 5분정도 기다려야 했어요. 천천히 앞으로 가다보니 기다리다보니 그 유명한 안내판이 저희를 맞이해주더라고요!
- 저희 가게 라멘이 맛있긴 하지만 세 시간이나 기다려서 드실 맛까지는 아닙니다.
세 시간만 기다렸으면 다행이게요. 아마 이거 보시는 분들 다 같은 생각이실 거에요. 대체 라멘이 얼마나 맛있으면 하루종일 기다려야 겨우 영접할 수 있는 건지!
가게가 협소한만큼 자리는 바 테이블에 딱 일곱 자리 뿐이에요. 나이드신 사장님 혼자 운영하시는 거라 어쩔 수 없으신가 봐요.
메뉴가 딱 두 개 뿐인 것도 그렇고, 뭔가 가게에 전반적으로 사장님의 장인정신과 철학이 녹아있는 것 같지 않나요? 손님 한 명 한 명 최선을 다 해서 대접하겠다는?
사장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꽤 유명하신 분이죠. 저기저기 뭐랄까, 막 카메라 너머로도 연륜이 느껴지시지 않나요? 어딘가 일생을 라멘 연구에 바치셨을 것 같은 느낌?
(돈코츠랑 시오 나왔습니다-)
아 나왔네요! 보자 보자.
(카메라가 막 나온 라멘 그릇을 비춘다)
저는 돈코츠로 시켰고 매니저님은 시오로 했어요. 그릇부터 손수 만든 것 같은 게…뭔가 예사롭지 않지 않나요?
와 잠깐만 맛이…
이건 진짜에요. 그냥 진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요.
요즘은 다 조미료 쓰지 돼지뼈부터 직접 우리지는 않잖아요? 제가 먹어보면 딱 아는데 여기는 무조건 직접 우려내서 쓰시는 것 같아요.
특히 여기 돈코츠에는 고등어 우린 육수가 들어가는 걸로도 유명하죠. 국물도 찐하고 간도 딱 맞고…여덟시간 가까이 기다린 보람이 있는데요?
잠깐만 매니저님, 우세요?
(너무 맛있어서….)
와 이 분 이러시는 거 처음 보네. 저희 매니저님 이래봬도 라멘 성지순례하러 일본도 자주 가고 하시는 분이거든요? 아무리 맛있다는 집을 가셔도 고개만 끄덕끄덕하시는 분인데…
(꺼흐흡)
아 그만 좀 울어요! 지금 천 팔백 명이 보고 있는데 부끄럽게!
(괜찮으세요?)
아 사장님, 네, 네. 괜찮아요. 저희 매니저님이신데 라멘이 너무 맛있어서 이러시나봐요.
(아이구 이거 감사합니다. 그 정도는 아닌데.)
아유 그 정도에요. 맞다. 혹시 카메라에 얼굴 한 번만 비춰주실 수 있으세요? 다른 유튜버들 영상 보니까 보통 모자이크하고 그러시긴 하던데…
(제가 부끄러움이 많아서요…)
아이 그래도요! 저희 구독자 분들 지금 라이브로 보고 계시거든요. 잠깐만, 혹시 우리가 최초인가? 세계 최초 히가라멘 사장님 얼굴 공개?
(에이 이런 나이 든 아저씨 얼굴 뭐 볼 게 있다고.)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은근슬쩍 이쪽으로 오시네? 사장님 진짜 재미있으시다. 혹시 시청자분들께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세요?
(에 그러니까, 저희 히가라멘 많이 사랑해주시고, 자주자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자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구독과 좋아요, 알림설정까지 잊지 마시고요! 다음 시간에 또 뵐게요! 안녕!
(크흡…)
김상철 그만 울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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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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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오늘 촬영 허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에이 내가 더 감사하지. 다음 번에 또 오세요. 내가 서비스 낭낭하게 드릴테니까.”
“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다음 번에는 촬영이 아니라 친구들 데리고 놀러올게요!”
목소리에서 느낌표가 떠나지 않는 그 처자는 비슷한 인사가 몇 번 더 오고 간 후에야 겨우 자리를 떴다. 배웅하면서 흔들던 손을 내리니 팔이 다 저릴 지경이었다.
폭풍같은 아가씨로구만.
그래도 요즘 애들 답지않게 예의가 있어서 좋다. 유튜버라고 으스대지도 않고 뭐 내놓으라고 하지도 않고. 촬영하게 해줬다고 영업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인사까지 하고 가는 사람은 내 또 처음보네.
예나 지금이나 카메라 들이대는 인간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저렇게 예의를 차리면 이야기가 다르겠지.
그러니 문제는 딱 하나 뿐이다.
내가 이 가게, 히가라멘의 사장이 아니라 알바생이라는 사실.
* * *
달칵.
출입문을 잠그고 안내판을 영업 종료로 뒤집었다. 미리 뽑아둔 번호표 뭉치를 입구 옆에 세워두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문은 닫았지만 가게는 아직 한창 돌아가고 있다. 가스불은 꺼지지 않았고 바닥은 하루종일 쌓인 기름으로 번들거린다.
라멘집, 아니 음식점의 하루는 마지막 손님이 돌아간 뒤 시작된다. 요식업의 꽃,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
‘마감’을 칠 때다.
남은 육수 상태를 체크하고 다음 날 사용할 분량만 남긴다.
나머지는 그대로 폐기. 특히 돈코츠 국물은 하루만 잘못 놔두어도 잡내가 장난 아니기 때문에 전부 버려야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앗 뜨거!”
보통 기름 때문에 육수통이 닦기 어려울 거라고들 많이 생각한다만, 사실 진짜 복병은 면 삶는 통 쪽이다.
육십 평생 라면이나 끓여봤던 나는 몰랐지, 하루종일 면을 삶은 통에서는 전분 찌꺼기가 미친듯이 올라온다는 사실을.
“어우 씨…”
통을 뒤집자 허연 전분 덩어리가 끝도없이 쏟아져나왔다.
이때는 조금 서둘러야 한다. 덩어리진 전분들이 배수구에 들어가면 막힐 수 있다.
싹싹 긁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통을 두어 번 더 헹궈주면 통 세척도 마무리. 기름에 쩐 손을 세 번쯤 박박 문질러 씻은 뒤 바닥 청소를 시작한다.
이하 생략. 다들 물청소 정도는 해본 적 있을 것 아니야.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지? 아르바이트?
…이걸 어디부터 설명해야하나.
우리 가게, 히가라멘은 원래 평범한 시장 앞 라멘 가게였다. 원래 무인 카페가 있던 자리였는데 어느 날 보니 라멘 가게가 새로 문을 열었다.
처음 며칠은 반짝 흥하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귀신같이 파리만 날리기 시작했다. 위치도 나쁘지 않고 인테리어도 그럴싸한테 왜 저러나 싶어 한 번은 딸애랑 같이 먹으러 가봤더랬다.
- 괜찮지 않아? 딸.
- 응, 나쁘지 않은데?
맛이 문제겠거니 생각했지만 이게 웬걸, 제법 먹을만한 물건이 나온 게 아닌가?
굳이 따지자면 특색이 좀 부족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외면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역 맛집 리스트에 올라가기는 좀 애매해도 가끔 생각날 때 들르는 가게 정도는 충분히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대체 왜 이렇게 장사가 안되는 거지?
당시 나는 인생을 바쳤던 식품회사를 퇴직한 예순 한 살 아저씨였다.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고등학생 딸 학원 셔틀과 강아지 산책하는 게 전부인 슬픈 중년을 보내고 있었지.
시간이라면 차고 넘치는 내게 이건 꽤나 재미있는 분석거리였다. 물론 거기에는 공교롭게도 내가 상권분석팀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다는 점도 한몫을 했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나름대로 분석을 이어가던 어느 날, 기회가 찾아오고야 말았다.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
강아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본 그 종이는 꺼진 줄 알았던 내 가슴에 불을 지폈다. 혼란스러워하는 뽀삐를 품에 안고 충동적으로 가게로 들어섰다.
- 어서오세요!
- 저, 아르바이트생 구하신다고…
- 아…!
서른은 먹었을까 싶은 젊은 사장은 적잖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아르바이트생을 뽑는다고 하면 보통 스물 한두 살 먹은 대학생이 오기를 기대할테니.
- 네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하지만 내게는 자신이 있었다. 예상 밖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새파랗게 젊은 사장이 나를 채용할 거라는 자신이.
사장과 마주앉자마자 나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그간 쌓아온 데이터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려 했다.
시장 유동인구와 메뉴 회전율에 대한 날카로우면서도 객관적인 분석 결과를 본다면 설득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 기다렸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오시기를.
하지만 그건 안이한 생각이었다.
- 예?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사장은 말했다. 내일부터 당분간 이 가게를 맡아달라고.
- 당장 내일부터요? 전 라멘이라고는 만들어본 적도 없는데요?
- 레시피라면 냉장고 옆에 다 적혀 있어요. 용량이랑 시간만 잘 맞추시면 됩니다. 메뉴도 내일부터는 다 정리하고 돈코츠랑 시오, 두 개만 운영할 거고요.
- 아니 그래도 갑자기 이러시면…
- 선생님의 얼굴이 필요합니다. 당장 내일부터요.
얼굴?
오해할까봐 말하는건데 난 꽤나 평범하게 생긴 축에 속한다. 타고난 덩치가 있어 볼품없는 노인네 소리는 안 듣지만 머리카락은 회색빛이 된 지 오래고 얼굴 여기저기 주름도 깊다.
물론 이 나이 먹고 머리 안 벗겨진 게 어디겠냐만 그래도 초면에 저런 소리가 나올 정도는 아닌데.
- 저한테 끝내주는 계획이 있거든요. 들어보시겠어요?
사장은 가게 문까지 걸어잠근 뒤 내게 그 계획이라는 걸 설명하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돼지 등뼈를 삶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커다란 육수통에서 쉴새없이 김이 솟아났다.
사장의 설명은 펄펄 끓던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이어졌다. 차가워진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나를 보던 그의 눈빛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 까짓 거, 해봅시다.
내가 그렇게 대답했을 때의 반응도.
다음 날부터 나는 혼자 가게를 책임지게 되었다.
- 이랏샤이마세!
- 어머, 사장님이 바뀌셨어요? 원래 좀 더 젊은 분이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 아들 놈이요, 후계자 수업 차 잠시 맡겨봤는데 하도 가관이라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30년 넘게 일본에 있다 한국에 정착하려니 쉽지 않네요.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이 말한 끝내주는 계획이란 단순했다. 히가 라멘을 ‘본토 출신 장인이 소일거리로 연 라멘 가게’로 이미지 메이킹하는 것.
저기서 맞는 단어는 라멘 가게 뿐이지만 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사장은 꽤나 오랫동안 고민을 해온 것 같았다.
열댓 개가 넘던 메뉴를 두 개만 남기고 쳐낸 것도, 깔끔해보이던 플라스틱 그릇을 전부 투박한 도자기들로 바꾼 것도 이미지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한 번은 사장이 시키는대로 모르는 사람들과 요리사 옷을 입은 채 사진을 찍은 적도 있었다.
그 사진은 흑백으로 인화되어 다음 날 가게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내걸렸다. 멋드러진 붓글씨로 무어라 적힌 채.
대를 이어온 장인의 집에 흔히 있는 옛날 사진 같은 거로군, 그렇게 생각하자 괜히 저 붓글씨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어졌다.
아마도 일본어로 적혀있을 그건 꽤나 흘려써져 있어 읽기 어려웠다. 사장에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지만 그저 웃기만 할 뿐이라 답답할 따름이었다.
내가 그 말의 뜻을 알게 된 건 꽤 오랫동안 번역기 어플을 만지작거린 뒤였다.
‘레이와 8년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뚝심, 대를 이어 계속 전해나가겠습니다.’
다짐이구나. 나쁘지 않네.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먼 훗날, 레이와 8년이 2026년이라는 걸 알게 되기 전까지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뭐 그런 건가. 묘한 곳에서 솔직한 젊은이일세.
이미지 메이킹이 성공한 건지 어떤지는 몰라도 가게는 잘 굴러갔다. 파리만 날리던 예전과 달리 그래도 제법 손님들이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라멘을 기가 막히게 끓여버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한 거라고는 그저 사장이 미리 준비해놓은 재료들을 끓이고 삶아서 합치는 것밖에 없었다.
그 왜 휴게소에서 우동 주문하면 나오는 그 방식, 다들 한 번쯤은 봤지?
- 그래도 재료가 좋으니 그게 통하는 거지. 사장 자네가 고생이 많아.
- 아니에요. 이 정도 가지고 뭘.
말은 저렇게 했지만 사장은 정말 최선을 다해 재료를 준비했다. 이렇게 노력하는데 그동안 왜 장사가 안 됐던 걸까 싶을 정도였다.
밤새 뼈를 고아 직접 육수를 우리는 건 물론 밑재료나 조미료 하나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게 없었다.
듣자니 밤에는 가게에서 재료를 준비하고 낮에는 아버지 회사에 가서 일을 돕는다는데, 이러다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 아버지 회사 일은 돈이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하는거고, 이건 제가 하고싶어서 하는 거니까요. 더 정성을 들일 수밖에 없죠.
사장은 늘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근래 보기 드문 열정 넘치는 청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젊은이가 도와달라는데 늙다리가 손 놓고 있을 수 있어? 팔 걷어붙이고 뼈가 부서져라 도와줘야지.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 아침, 잘 포장된 육수 팩 더미와 냉동 차슈가 배달되어오기 전까지는.
처음에는 거래처의 실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재료들은 일주일 가까이 매일같이 날라져왔고 명세서에도 수량까지 정확히 기재되어 있었다.
- 사정이 좀 있어서요. 일단 당분간은 그 재료들을 사용해주세요.
어리둥절해하며 사장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돌아온 건 마뜩찮은 대답 뿐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시키는대로 하지 않고는 도리가 없었다. 애초에 나는 사장을 연기하는 알바생일 뿐이었으니.
[와 리뷰 보고 왔는데 국물 진짜 장난 아니네요. 잘 먹었습니다.]
[별점 4.8, 전반적으로 대중적인 맛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았음. 돈코츠가 진짜라는데 먹으러 한번 더 와야할듯.]
[사장님이 일본에서 라멘집만 30년 넘게 하셨다던데 진짜인듯.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다름.]
[차슈가 좀 아쉽기는 한데…그래도 먹을 만 함.]
다행히 손님들은 아직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적어도 후기 여론은 그랬다. 종종 혹평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 리뷰들은 추천을 받지 못해 조용히 묻혔다.
날이 갈수록 우리 가게의 인기는 점점 높아져갔다.
문을 열기도 전에 가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번호표를 나눠주어야 했고, 성지순례니 뭐니 하면서 전국에서 찾아오는 매니아들도 생겨났다. 이따금씩 유튜버니 인플루언서니 하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입소문이 무섭다고, 그 흔한 일본여행 한 번 가본 적 없던 나는 일본의 어떤 장인 밑에서 라멘만 30년을 연구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 되어있었다.
그럴수록 내 불안은 더 커져갔다.
설상가상 사장이 내놓는 레시피는 점점 더 단순해져갔고 조리에 걸리는 시간도 더 짧아졌다. 밤새 육수를 끓이느라 불이 꺼질 새가 없던 가스레인지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차갑게 식어있었을 정도였다.
설상가상 언젠가부터 우리의 진짜 사장님은 가게에 얼굴도 비추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 일주일에 한 번 볼까말까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뭐.
- 사장, 혹시 잠깐 괜찮을까?
상황이 이러니 아무리 나라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날도 밤늦게 빼꼼 얼굴을 비춘 사장을 불러세웠다. 그리고 그동안 쌓아두었던 불만사항들을 털어놓았다. 점점 안좋아지는 재료들, 바빠지는 가게, 그리고 그의 지나친 무관심 등등.
- 나야 알바생일 뿐이니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너무 원가절감에만 치중하다보면 손님들도 금방 눈치 챌 것 같아서. 이제 막 인기 얻고 있는데 그러면 안 되잖아.
사장은 말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착잡한 표정을 짓기도 하는 등 나름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그가 문득 말했다.
- 드셔보셨어요?
- 뭐?
- 납품받은 재료들로 만든 라멘, 드셔보셨냐고요.
...?
그런 적은 없었다. 사실 그럴 마음도 크게 들지 않았다.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재료로 만든 라멘이 맛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지속적인 사장의 무관심에 대한 내 나름의 불만표시이기도 했고.
고개를 가로젓자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육수 포장을 뜯어 통에 붓더니 불을 켰다.
- 벌써 새로 끓이려고? 내일 쓸 건 이미 다 마련해뒀는데.
- 하룻밤 정도는 괜찮아요. 한 번 갈아엎었으니까. 저녁에 시간 괜찮으시죠?
- 나야 뭐 괜찮기는 한데…
심지어 그는 어디서 준비했을지 모를 돼지 등뼈까지 가져와 끓이기 시작했다. 두 통의 육수가 끓는 동안 그는 분주하게 밑재료들을 준비했다. 삼겹살을 썰어 차슈를 만들고 면을 삶을 냄비에 물을 올렸다.
얼마쯤 지나자 내 앞에는 두 그릇의 라멘이 놓였다.
- 하나는 예전 방식으로 만든 거고, 다른 하나는 완제품 재료들로 만든 거에요. 드셔보시겠어요?
육수 끓일 때부터 그럴 생각인가 싶긴 했다. 그를 한 번 올려다보고 젓가락을 들었다.
일단 예전 방식으로 만든 것부터 한 입.
진한 돈코츠 국물 사이로 고등어향이 은은하게 배어든다. 딱 알맞게 익은 면과 두꺼운 차슈,흐물흐물한 목이버섯과 멘마, 사각거리는 숙주의 식감이 일품이다.
원재료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신경을 써서 만들어진 깊은 맛. 처음 먹어보고 놀랐던 그 때와 완전히 같았다. 내가 사장의 장인정신에 감탄을 하게 된 맛이기도 하지.
시선이 옮겨졌다. 이번에는 이쪽 차례.
겉보기나 향은 그리 다르지 않다. 차슈는 수제가 아닌만큼 두께나 생김새가 좀 아쉽긴 해도 판매하기에 문제가 있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재료 하나하나 손수 신경 쓴 것과 비교할 수 있을 리가…
후룩-
…!
- 어떠세요?
…….
대답할 수 없었다.
분명 차이는 있다.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건…
- 비슷하네. 꽤.
충격적이었다.
차슈의 질감이 다르다. 국물의 진함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두 라멘을 차례대로 먹어봤기에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는 단골들조차 어지간해서는 눈치채기 어려우리라.
- 아시겠죠?
사장은 놀라는 나를 보고 힘없이 웃었다. 그러더니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그는 훨씬 라멘에 진심이었다. 세계 최고의 라멘집을 차리겠다는 일념 하에 스무 살이 되자마자 일본으로 건너가 한 장인의 가게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고 했다.
- 처음에는 무급으로 하루에 열 다섯 시간쯤 일했던 것 같아요. 청소부터 설거지에 재료 손질까지 안 해본 게 없었죠.
- 급여도 없이? 생활은 어떻게 했어?
- 가게에서 먹고 자고 했죠 뭐. 주방에서 자다가 쥐에 물린 적도 있었어요.
- 세상에, 집에서는 아무것도 안 도와줬나?
- 아빠랑 연락하고 지낸 지 얼마 안 됐어요. 대학 안 간다고 했다가 거하게 싸웠었거든요. 결국은 제가 이겼지만.
생활고에 언어 문제까지 겹쳐 엄청나게 힘든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가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얼마 뒤부터는 그 열정에 감동한 장인이 그를 정식으로 채용해 돈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사장의 눈이 벽에 걸린 액자로 향했다.
- 처음에는 이게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성질머리 나쁜 노인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정도 많고 꽤 괜찮은 분이더라고요. 가게 열었다고 했더니 직접 와서 사진도 찍어주시고.
- 뭐야, 그 장인이라는 사람이 저 사람이야?
스승까지 데리고 와서 사기친 거냐는 의미였다. 내가 경악하며 묻자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 반 년 넘게 무급으로 부려먹었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죠. 사진에 저도 나와있으니 문제 될 일도 없고.
그렇게 6년간 라멘을 배우고 귀국해 가게를 열었을 때는 꽤나 자신만만했다고 했다. 자리도 몇 개 없고 비좁은 가게지만 장인정신이 무엇인지 알려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 오픈빨이 끝나고 나자 손님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어요. 밤새도록 우린 육수를 죄다 버려야 했던 적도 많았죠. 맛이 문제인가 싶어 밤마다 연구해봤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가스비랑 전기세만 더 나갈 뿐이었죠.
고민이 이어지던 차에 우연히 한 라멘 체인점에 갈 일이 있었다고 했다. 나도 몇 번 간 적 있는, 합정의 4층 건물을 통째로 쓰고있는 이름난 가게였다.
- 큰 기대는 없었어요. 알바생 몇 명이 귀찮은 얼굴로 육수 포장을 뜯고 냉동된 차슈를 데우고 있었죠. 기껏해야 자극적이기만 하고 깊은 맛 같은 건 전혀 느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죠.
- 그게…
사장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 요즘 공산품 재료도 꽤 잘 나오더라고요. 비율만 잘 맞춰서 넣으면 밤새 끓인 진한 육수 맛이 날 정도로.
한 입 먹은 라멘 그릇을 한참동안 내려다보던 사장은 조용히 일어나 가게를 둘러보았다. 4층 전체가 손님들로 꽉 차 있었고 모니터에서는 주문번호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계산대 옆에 수북하게 버려진 영수증을 보며 가게를 나온 사장의 마음은 착잡함 그 자체였다. 그동안의 노력이 허송세월처럼 느껴져 절망감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다시 가게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이전같지 않았다. 마냥 즐겁기만 했던 오픈 준비나 재료 손질도 해야되니까 하는 일이 되어있었다.
마인드의 변화는 곧바로 라멘 맛에도 반영되었다. 이대로는 몇 명 없는 손님마저 놓치게 될 것 같았다.
자금 사정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아르바이트라도 한 명 뽑아볼까, 같이 일하면 그래도 좀 낫겠지.
- 그때 아저씨가 나타난 거에요.
- 나?
- 네. 아저씨의 얼굴을 본 순간 모든 계획이 세워졌죠.
그렇게 된 거로군.
라멘 그릇들을 내려다보았다. 렌게를 집어들어 다시 국물을 맛보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신중하게.
조금 전보다 식어서인지 맛의 차이는 더더욱 줄어들었다. 블라인드 테스트라도 했다면 직접 만든 사람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흡사했다.
착잡한 표정으로 사장을 올려다보았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그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 퀄리티, 당연히 중요하죠.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 맛있기만 하면 손님 입장에서는 다 고만고만한 라멘일 뿐이에요. 그 다음 중요한 건 마케팅이죠. 가령, 30년 라멘 장인이 만든 고등어 돈코츠 라멘처럼.
- 그래서 내 얼굴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거구만.
- 딱 제가 생각하던 장인의 모습이셨거든요. 품에 강아지를 안고 계신 것까지.
- 그건 또 무슨 소리래.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나 마냥 즐겁지만은 않게 들렸다. 이제 겨우 스물일곱인 사장이 그간 겪었던 고생과 고뇌, 괴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기에.
하기사 예술도 등 따뜻하고 배불러야 할 수 있는거지. 장인정신이 밥 먹여주남?
- 그건 그렇고 요즘은 왜 그렇게 바빠? 일주일에 얼굴 한 번 보기 어렵네.
- 2호점 자리 알아보고 다녔어요.
- 2호점?
- 아저씨도 언제까지나 알바만 하실 수는 없잖아요. 계속 혼자 일하실 생각이셨어요? 점장 소리 들어보실 생각 없으세요?
하도 놀라운 말이라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농담인가 싶을만큼 뜬금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언제나 그랬듯 그의 눈빛이 진심이라는 걸.
휴대폰을 꺼내 메모 앱을 켜 가장 최근 날짜가 찍힌 파일을 보았다. 나름 현역시절 마인드로 돌아가 분석해본 자료였다. 각종 통계와 수치로 보건데 서진시장의 상권은 앞으로 라멘집을 크게 키우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을 거라는, 부정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메모를 삭제했다.
나름 신빙성 있는 통계라고 자부했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의 사업수완과 통찰력은 이런 숫자놀음 따위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한 번 해봅시다. 까짓 거.
사장의 손을 맞잡았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아마 난 먼 미래에도 이 눈빛을 기억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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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3년이 지났다.
사장의 노림수는 적중했다. 히가라멘은 성공가도를 달려 이제는 서울에만 지점이 5개가 넘어가는 어엿한 라멘 프렌차이즈로 자리잡았다.
지점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가장 주된 건 좌석 수. 테이블도 없고 기껏해야 열 자리를 넘어가지 않는 탓에 손님의 편의 같은 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며 욕을 얻어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쪽의 대답은 늘 같았다.
‘손님 한 분 한 분을 케어해드리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렇다. 모든 불편은 ‘장인 정신’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졌다. 꽤나 철저하게.
처음에는 꽤나 반감을 사는 일도 많았지만 팬층이 두터워지니 변명을 자주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나쁜 후기라도 달릴라치면 알아서 변호해주시는 분들이 여기저기서 부리나케 튀어나오시던데?
날이 갈수록 두터워지는 팬층과 젊은 사장의 사업수완 덕분에 나는 지점 두 개를 운영하면서 2호점의 사장까지 맡게 되었다. 이제는 알바생이 아니라 정말로 어엿한 사장이라고. 흠흠.
물론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내가 히가라멘의 대표를 맡고있다. 사장은 가끔 나와서 가게가 잘 돌아가는지 정도만 확인하는 정도다.
듣자니 이번에는 남양주 쪽에서 카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또 어떤 엄청난 브랜드가 나오게 될지 궁금하군 그래.
- 히가라멘만의 이 독보적인 맛의 비법을 꼽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역시 사장님의 연륜과 정성일까요?
종종 카메라를 들고 찾아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유튜버나 인플루언서지만 얼마 전에는 누구나 알 법한 TV 프로그램에서 스태프를 대동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건 말이죠…
처음에는 꽤나 어색했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잘 대답하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다 쓴 육수 포장지를 진작에 내다버리길 잘했구만 그래.
- 특별한 건 없습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30년이 넘도록 똑같은 방식을 고집한다는 것 정도일까요? 처음 무일푼으로 일본에 건너가 견습으로 라멘을 배우면서 알게 되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