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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뒷이야기
by Emblem Mar 05. 2018

기자는 왜 취재원에게 밥을 얻어먹을까

관계와 유착은 종이 한 장 차이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4896

미디어스는 레진코믹스가 기자들을 상대로 지출한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입수했다. 확인 결과 레진코믹스는 기자들에게 접대비, 선물비 등의 명목으로 법인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Intro


약 한 달 전 페이스북에서 이 기사를 봤다. 레진코믹스의 불공정행위를 폭로하지 않은 수많은 매체들이 레진코믹스 홍보팀과 오만찬을 함께 해왔다는 내용이었다.


오묘한 감정이 일었다. 취재원과 밥을 먹는다는 건 사람들과 접촉면을 넓히는 방법이자 기회라고 생각했다. 관례였지만 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다만 받아들인 것과는 별개로, 취재원과 밥을 먹는 자리는 언제나 불편했다.



기자의 밥


국회를 출입한다. 그러다보니 주로 국회의원이나 보좌진, 국회 사무처 직원과 점심 먹는다. 다이어리에는 최소 2주 동안의 점심 약속이 잡혀 있다. 많으면 일주일 내내, 없어도 최소 일주일에 두 번은 점심 약속이 있다.


마찬가지로 저녁 약속도 잡는다. 보통은 점심을 함께 먹고, "한 잔 하면서 저녁도 먹자"고 다음 약속을 만드는 식이다.  사람마다 약속의 개수는 다르지만 나는 일주일에 두 개, 혹은 세 개 정도의 저녁 약속이 잡힌다.


취재원과 1대 1로 밥을 먹는 경우도 있지만,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등 직위 있는 사람과 밥을 먹을 땐 기자 몇 명이 모여 함께 밥을 먹는다. 서로의 시간을 절약하자는 취지다. 약속 날짜가 정해지면, 약속 장소는 논의 후 취재원이 최종적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예약도 주로 취재원 측이 한다. 오찬은 주로 12시에 시작해서 1시 30분쯤 끝난다. 밥 먹는 시간이 긴 편이다. 저녁은 19시에 시작해서 알콜 농도에 따라 달라진다.


밥을 먹으며 취재원과 기자는 서로의 얼굴을 익힌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어색함을 깨면 정국 현안이나 국회 상황, 정당 내부 상황에 대해서 물어본다. 기자는 취재원을 통해 국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다. 취재원은 기자를 통해 제3자의 시각을 엿듣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알겠지만, 밥을 먹는다는 건 기자에겐 일의 연장선상이다.



대부분 취재원이 밥을 산다

사실 기자들이 출입처의 홍보 담당자와 식사를 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또한 김영란법이 제정되면서 액수와 횟수가 많이 줄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위 기사 발췌)


김영란법 도입 후 금액과 빈도가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래도 주로 취재원이 밥을 산다. 서로 친해져 여러 번 밥을 먹다 보면 기자와 취재원이 돌아가며 밥을 사기도 한다. 다만 첫 만남 자리에서는 못잡아도 90% 이상 확률로 취재원이 밥을 산다.


취재원이 밥을 사는 이유를 곱씹어봤다. 나름 타당한 이유도 있었다. 첫째, 대부분의 경우 취재원의 자금사정이 더 풍족하다. 기자를 상대하는 직종에서는 일반 회사의 법인카드처럼 관련 비용이 추가적으로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밥자리에서 취재원은 초청자고 기자는 손님이 된다. 한국과 일본의 취재 문화인 출입처가 가지는 특성 때문이다. 한국의 기자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출입처 기자실로 출근한다. 취재원은 출입처의 주인이다. 기자는 엄밀히 말하면 객손님이다. 그리고 인간 사회는, 높은 확률로 주인이 집에 온 손님을 대접한다. 당장 대학교 파티나 각종 피로연에서도 통하는 법칙이다.


이런 측면만 보면 그렇겠구나 싶다가도...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처음 만난 취재원에게 자연스럽게 얻어먹는 밥이 부담스럽다.



만악의 근원, 그 놈의 '분위기'

문제는 홍보 담당자와의 친분 때문에 기자들이 제대로 된 고발기사를 작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각 회사가 홍보팀을 꾸리고 기자들을 '관리'하는 이유다.
레진코믹스는 실제로 기자 관리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스가 레진코믹스 홍보 담당자의 법인카드 지출내역과 담당 매체의 기사 내역을 비교·분석한 결과 언론들이 레진코믹스 사태에 대해 눈을 감은 정황이 다수 포착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묘하게 생겨버리는 분위기가 싫다.


기자에게 정보를 알아내는 건 일이다.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사람과 안면을 트는 건 필수조건이다. 얼굴도 모르는 놈이 다짜고짜 민감한 정보를 캐묻는다고 가르쳐줄 사람은 없다. 평범한 기사나 사소한 단독은 물론, 특종도 알고 친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안면을 튼 기자와 경찰 사이에서 알려졌다. 전두환의 하나회가 알려진 계기도 밥자리였다.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도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와 FBI 부국장인 마크 펠트의 오랜 친분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하지만, 관계와 유착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자주 밥을 먹은 국회의원이 있었다. 허름한 멸치국수부터 3만원에 딱 맞는 한정식까지 꽤나 자주 식사를 함께 했다. 둘이 밥 먹기 어려운 출입처에서 둘이 먹은 적도 자주 있다. 그 의원과 관련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당연스럽게도 확인을 해야 했다. 사실이 맞다면 짧은 기사(단신)를 쓸 만한 이슈였다.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기 어려운 타이밍이었지만, 그래도 내 전화를 받아주었다.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 돌려돌려 물어봤다. "선배, 이러저러한 말이 있더라. 여쭤보기 참 죄송스럽다" "나도 모르겠다...그냥 그렇게 됐다" "알아들었다. 안타깝다" "안 써줬으면 좋을텐데 참..."


저 말이 훅, 들어왔다. 자주 밥을 얻어먹었다는 이유로 나는 괜히 '물어뜯고' '조지기' 어려워 돌려돌려 질문을 했다. 반대로 국회의원은 자주 밥을 사줬다는 명목으로 "안 써줬으면 좋겠다"는 본인의 소망을 넌지시 드러냈다. 우리의 관계는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유착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단신을 썼다. 말진인 나에게 선택지도 없었지만, 압박과 별개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반대급부로 들었다. 쓰지 않으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을 것 같았다.


첫 보도는 아니었으니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진 않았다. 그러나 국회의원과 나는 조금 어색해졌다. 그 후로 밥을 먹는 빈도는 급속도로 줄었다. 나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내가 이 내용을 처음으로 보도할 수 있었을까?

출처: YTN


더치페이는 정답이 아니다


'김영란법 식사 상한금액 3만원'이 알려졌을 때 기자는 특히나 욕을 먹었다. 기자가 왜 밥을 얻어먹고다니냐, 더치페이 할 생각은 없냐는 비난이 대다수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더치페이는 이 문제의 정답이 될 수 없다. 일단 출입처 문화가 남아있는 한 실현 가능성 자체가 낮다. 주인이 손님에게 베푼다는 인류 보편의 문화를 없애긴 어렵다. 그리고 까놓고 말하자. 미팅 자리에서 더치페이 하는 회사가 얼마나 될까.


설령 더치페이를 한다 해도 취재원과 기자의 관계를 없앨 수 없다. 돈을 따로 낸다 해도 밥을 함께 먹으면 관계가 생겨버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고 정보를 알아내는 게 일인 기자가 사람을 안 만나버릴수도 없는 일이다. 유럽 등의 언론도 취재원과의 관계 정립은 기자의 덕목으로 통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기자가 사람을 만나는 건 필수고, 밥 얻어먹는 문화를 없애긴 정말로 어렵다.



관계가 유착이 되지 않도록


나는 레진코믹스와 밥을 먹은 기자들을 비난할 수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유착이 되는 아슬아슬한 선을 절대 넘지 않겠다"는 나 혼자만의 다짐일 뿐이다. 결국 기자 자신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정말 중요해져버린다. 뒤집어 말하면, 기자 개개인에게 책임의 굴레가 씌워진다.


안면을 트자. 밥을 먹는 건 하나의 방법이다.

밥을 얻어먹는게 불편하다면, 나도 같이 사면 된다.

친해져서 나쁠 건 없다. 다만 문제가 있을 때는 부담 없이 조지자(=비판 기사를 쓰자는 은어)

조지면서 또 다른 관계를 만들자. 직언을 알아듣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그러면서도, '대안'에 대한 고민을 놓지 말자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방법은 분명 있을 것이다. 고민을 놓지 않는다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밥을 얻어먹고 말고의 수단을 떠난, 근본적인 무언가를 말이다. 나는 관계와 유착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정확히 구분해내는 순간의 찰나를 찾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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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자입니다. 생각나면 글을 씁니다. 더 많은 글이 읽혔으면 합니다.
취재 현장 뒷이야기와 세상에 대한 생각, 문화와 잡담이 공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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