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에게 좋은 정보는 왜 중요할까
엄마는 자의 반, 타의 반 일을 그만두셨다.
40년 넘게 쉼 없이 일하던 분이었다. 이번 휴직은 어쩌면 은퇴일지도 모른다.
치매가 있다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공백은 그 자체로 혼란이었다.
“쉬는 게 더 불안해.”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통화해 보니 직장에서는 엄마 스스로 그만두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엄마는 계속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고용센터에 다녀왔다며 고용 보험을 기대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고용센터에는 신청 기록이 없었다. 더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 마음이 편하면 그걸로 됐다.
나는 그저 말했다.
“이제 맘 편히 쉬세요.”
그즈음부터 새벽에 생뚱맞은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너는 왜 나더러 장례식장에 가보라 했니?”
“모르는 사람 장례식장에서 얼마나 막막하던지... 바보가 된 기분이었어.”
시간은 새벽 4시 27분.
엄마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떤 날은 적금 얘기가 왔다.
“손주 적금 해약할 거야.”
“적금요?”
“매달 40만 원씩 넣고 있었잖아. 대학등록금 만들어주려고 넣은 돈. 내가 현금으로 갖고 있어야겠어.”
그 적금은 몇 년 전에 해지했었다.
엄마는 말했다.
“내가 보이스피싱 당했나 보다…”
그제야 알았다.
엄마가 보고 있던 유튜브 콘텐츠의 정체를.
썸네일부터 충격이었다.
AI로 만든 듯한 인위적인 그림. 제목은 더욱 자극적이었다.
‘장례식장에서 관 뚜껑 열릴 뻔한 일’
‘현대판 고려장, 자식을 믿은 죄’
'보이스피싱의 정체, 믿었던 며느리가.'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막장 드라마 뺨치는 이야기.
여성의 건조한 음성과 특유의 억양은 누군가를 본뜬 듯 섬뜩했다.
엄마는 그런 영상 속 이야기들을 자신의 기억 파편과 뒤섞어가며 밤마다 괴로워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직장에서의 섬망 증세로 힘들었는데 극단적인 내용의 영상에 노출되면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진 것이다.
이런 질 떨어지는 콘텐츠는 치매 환자에게 독이었다.
나는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해야만 했다.
먼저, ‘좋은 생각’ 큰 글씨 책을 구독했다.
“하루에 한 장만, 읽어 보세요.”
광고 없는 라디오 앱도 설치했다.
이젠 화면을 잘못 눌러도 이상한 데로 가지 않는다.
엄마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과 말소리에 집중하셨다.
유튜브도 선별해서 보내드린다.
아침엔 건강 체조 영상, 낮엔 김창옥 강연, 때론 좋아하는 팝송이나 뮤직비디오.
김미경 강사의 강연을 보고는 “나도 다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하셨다.
불안은 조금씩 가라앉았고 밤엔 숙면을 취하기 시작하셨다.
다시 소소한 미션들도 드렸다.
감사한 일 5가지 적어보기
손자 핑계 삼아 음식 만들기
숨은 그림 찾기
가끔은 아이패드 드로잉 앱으로 꽃 그림을 그려서 보내기도 했다. 수줍게 편지도 써봤다.
우리는 치매 어르신의 건강을 지킬 방법을 병원, 약, 운동에서 찾지만, 그보다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주입되는 정보’ 일지도 모른다. 유해한 정보는 기억을 흩트리고, 선한 정보는 마음을 다독인다. 엄마의 회복은 ‘말과 글’을 바꾸는 데서 시작됐다.
사실 나는 두려웠다. 엄마가 일을 놓으면 더 나빠질까 봐.
하지만 오히려 놓고 나니 더 나아지셨다.
일터에서의 긴장감, 작은 실수 하나에도 죄책감에 시달리던 나날들. 그 모든 것이 엄마를 더 힘들게 했다는 걸 이제야 안다.
지금은, 엄마 편에 시간이 있다.
50년 지기 엄마 친구가 말했다.
“자기가 이제야 쉬는 거 보니까… 나도 다 좋다. 우리 평일에도 맛집 다니자!”
나도 덧붙였다.
“엄마가 젊은 시절 고생하신 덕분에 지금 국민 연금으로 잘 지내잖아요.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사셨어요.”
엄마는 잠시 웃더니 말했다.
“어릴 때 너를 떼어 놓고 다닌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 그게 니 외로움 값이지…”
어릴 때 나는 엄마가 늘 일하러 가는 게 싫었다. 그 엄마가 이제 비로소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엄마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진짜 돌봄은 무엇을 하게 하느냐보다 무엇을 멈추게 해 주느냐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지증 환자에게 필요한 건 바쁜 일정이 아니라 평온한 환경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