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삐걱거리는 가구를 버리지 않을까?
어머니는 20년 넘게 가구 회사에서 일하셨다.
그 영향인지 집에 들이는 가구만큼은 당신이 몸담고 있던 회사 제품이었다.
물론 직원 할인이 가장 큰 이유였을 수도 있지만. ㅎㅎ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내 손이 닿은 가구라 믿을 수 있어.”
그런 묵직한 신념 같은 것.
내가 처음으로 내 취향에 따라 가구를 고르기 시작한 건, 결혼을 앞둔 신혼집을 꾸밀 때였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가성비와 디자인을 따져 골랐다.
화면 속에서는 꽤 근사해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우리 집엔 딱 맞는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TV장을 없애니 전선은 들춰졌고, 다용도실은 수납장을 원했지만 어디에도 맞지 않았다.
서로의 취향대로 책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작은 방을 서재처럼 꾸미고 싶었지만, 가구들은 늘 크거나 작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기분.
결국 우드락과 필름지를 사다가 ‘가구 흉내’를 냈다.
그 임시방편은 계절이 한 번 바뀌자 흐물흐물 무너졌다.
대학 시절, 나는 목공예 수업을 좋아했다.
실제로 쓸 수 있는 걸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 반지하 자취방에서, 딱 필요한 만큼의 쓸모 있는 가구를 만들어 쓰던 시절.
언젠가 내 집이 생기면 가구 하나하나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목공방 등록비만 봐도 입이 벌어졌다.
최근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바로 모듈 가구다.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와 연결 부품, MDF 판을 사용해 쓰임새에 맞는 디자인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구성은 간단했지만, 설레는 마음은 컸다.
먼저, 서재에만 두고 듣던 오디오를 거실로 옮겨 가족과 음악을 나누고 싶었다.
CD 서랍장도 만들고 싶었다. 계절마다 듣고 싶은 앨범이 다르니까.
작업을 시작한 후, 나는 다시 한번 '맞춤형 디자인'의 가치를 느꼈다.
작업복을 입고 아들 방에 매트를 깔고, 휴일 하루를 통째로 쏟아부었다.
3단 댐퍼 레일 간격을 맞추는 데 하루,
서랍 손잡이를 고르는 데 이틀.
알리에서 손잡이를 주문하고 3주를 기다렸지만 크기가 작았다.
결국 다시 서치.
스케치부터 최종 설치까지, 한 달이 걸렸다.
드디어 완성.
첫 번째 서랍을 슬그머니 당겨봤다. 스르르 미끄러지는 소리가 귀에 달콤했다. 딱 맞는 크기에 CD들이 차곡차곡 들어섰다.
장인어른께서 즐겨 듣던 사이먼 & 가펑클 CD를 꺼내어 플레이어에 넣었다. 거실에 'Sounds of Silence' 가흘렀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누가 보면 사서 고생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 시간이 행복이었다.
이 가구는 아마도 평생 쓸 것이다.
나만의 손길이 깃들었고,
내가 원했던 위치에, 원하는 기능, 취향에 맞는 만듦새로 놓였으니까.
시간이 지나 색이 바래고 모서리가 닳아도,
그건 낡은 게 아니라 살아온 기록이 될 것이다.
반면, 인터넷으로 주문한 다른 가구는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
몇 년 후면 다른 가구로 대체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 그런 걸까?
그건 아마도 쓸모를 넘어서는 감정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디자인은 쓸모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가치를 지닌다.
이제 나는 타임리스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조금 알 것 같다.
그것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가치와 시간이 지나도 그 쓰임이 여전히 느껴지는 디자인이다.
어머니가 20 년 넘게 쓰는 가구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
그 가구는,
그저 앉고 여는 기능이 아니라,
삶의 감각이 담긴 물건이었다.
어머니는 그 가구에 정성을 쏟았고, 편안함을 느끼셨던 것이다.
삶과 정성, 자부심과 애정이 스며 있는 그 모든 것.
누군가는 말한다.
'가구야 뭐, 쓰다가 바꾸면 되지.'
하지만 나는 안다.
어떤 가구는 쓰다가 바꿀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나를 닮았기 때문이고, 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유행을 좇지 않는 디자인,
오래 볼수록 정이 드는 쓸모,
그리고 손때 묻은 기억.
삶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물건들이,
우리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부디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제품이,
당신에게 쓸모 있는 디자인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