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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편지를 쓰겠어요2

인천대공원을 다녀왔습니다

by 백서향

독감이 한창 유행하고 있다니 혹시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저는 지난 주에 책모임 회원들과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는 한 달에 두 번 책모임에 나가서 독서토론을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낭 한번 나가볼까 한 것이 벌써 1년 반이 다 되어 가네요. 이제는 제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회원들도 어느새 제게 가장 가까운 이들이 되어버렸고요. 저에게 요즘 일상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이분들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들은 저에게 책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번 달은 한 주가 남아 독서토론을 하는 대신 인천대공원에 놀러가기로 했습니다. 작년에도 같은 장소로 소풍을 다녀왔는데, 올 해는 조금 이르네요. 아쉽게도 인천대공원에도 단풍은 들지 않았더군요. 어중간하게 붉어지고 노랗게 변한 잎들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가을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로 인천대공원은 가득했어요. 삼삼오오 모여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단풍을 볼 때보다 더 웃음이 나왔습니다.

결국 우리는 단풍은 포기하고 억새밭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아마 인천대공원에 많이 와 본 사람들도 이곳은 잘 모를 것 같았습니다. 샛길을 지나가야 나오는 곳이었거든요. 부드러운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를 보니 눈이 부셨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하늘하늘 흔들리는 풍경에 넋을 잃을 뻔 했어요.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멍하니 앉아 몇 시간이고 그 풍경 속에 머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꼬르륵 때는 위장도 달래주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만의골로 가서 보리밥과 파전, 코다리 구이를 먹었습니다. 각종 나물을 듬뿍 넣어 비벼먹는 보리밥은 집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더 맛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는 밥이라 더 맛있게 느껴졌고요.


이번 가을 소풍은 쉼없이 달려온 나에게 주어진 귀한 휴식같았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 또 아무 생각없이 수다를 떨다보면 입 주위 근육이 아플만큼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은 거창한 계획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가을날 함께 걷고 웃는 시간이 아닐까요.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억새밭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리고 함께 웃던 그 따뜻한 시간들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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