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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규 Nov 20. 2018

세상을 바꾸는 힘

꿈꾸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

스파이더맨, 헐크, 아이언맨 등 수많은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을 창조해온 만화 작가이자 편집자, 그리고 경영자였던 '마블의 아버지' 스탠 리가 향년 95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스탠 리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 팬들과 문화계 인사들은 추모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스탠 리의 수퍼히어로들을 연기한 배우들: 로버트 다우니 Jr (상), 휴 잭맨 (하/좌), 크리스 에반스 (하/우)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스탠 리와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을 올리며 “모든 것이 당신 덕분이다. 스탠 리, 편히 잠드소서”라는 글을 올렸다. '엑스맨' 중 '울버린'을 연기했던 휴 잭맨도 "우리는 창조적인 천재를 잃었다. 그는 슈퍼히어로 우주에서 선구적인 힘이었다. 그의 유산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어 영광스럽다"라고 트위터에 남겼다. '캡틴 아메리카'를 연기한 배우 크리스 에반스 역시 "스탠 리와 같은 사람은 또 없을 것이다. 수십 년간 그는 많은 이들에게 모험과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안락, 확신, 영감, 힘, 우정, 그리고 기쁨을 줬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스탠 리 (1922 - 2018)


그러고 보니 스탠 리와 그가 창조해 수많은 슈퍼히어로들은 여러모로 서로를 닮았다. 그들 모두 개성, 유머, 그리고 무엇보다 에너지가 넘친다. 우선 스탠 리는 마블 코믹스 편집장과 마블 엔터테인먼트 사장 등을 역임하며 마블 코믹스를 대형 멀티미디어 기업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에는 예술가들의 최고 영예인 '미국 예술 훈장'을 수상했다. 심지어 그는 90세를 넘긴 나이에도 트위터 계정을 통해 전 세계의 팬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각종 마블 관련 프로모션 행사에 참여하며, 40편이 넘는 마블 영화에 빠짐없이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식지 않는 열정을 뽐내며 슈퍼히어로와 같은 행보를 이어왔다.


작가의 열정과 에너지를 그대로 물려받은 생동감 넘치는 마블의 슈퍼히어로들 역시 만화와 영화에 종횡무진 활약하며 악당들의 '뚝배기'를 깨고 다녔고, 현실에서도 지난 10년간 온갖 박스오피스의 이란 기록들은 다 깨오며 영화계의 판도를 뒤엎어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흑인 감독과 흑인 배우들의 협업 하에 만들어진 『블랙 팬서』는 인종에 대한 편견까지 깨부수어 버렸고, 곧 개봉할 『캡틴 마블』은 강력한 여성 히어로를 전면에 내세워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마저 깨뜨리려 하고 있다. 이 정도면 가히 '문화현상'이라고 할만하다.


내가 이렇게까지 열변을 토하는 데는 사실 상당량의 팬심이 개입되어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슈퍼히어로 '덕후'다. 그래서 마블 작품들은 웬만해서는 다 챙겨보는 편이다. 모든 슈퍼히어로물의 전개는 거의 동일한데, 우연한 계기로 큰 힘을 갖게 된 주인공이 내적 갈등과 주변의 오해를 극복하고 용기 있게 적과 맞서 싸워 마침내 승리한다는 식이다. 50년 전통의 소머리국밥집의 비법 육수가 골백번 넘게 우려내어지듯이 거의 모든 슈퍼히어로물에서 수도 없이 재생산되어온 이 뻔하디 뻔한 스토리가 뭐가 좋냐고 하는 주변분들도 있지만, 이런 상투적이고 예측 가능한 스토리야말로 맛깔난 대사와 웅장한 배경음, 흡인력 있는 연기와 세련된 연출이 입혀지면 때때로 관객들에게 바늘 끝처럼 예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그 바늘 끝에 민감한 신경을 타고나서인지, 웬만한 자극에도 더 크게 흥분하고 더 쉽게 감동받는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걸 떠나서 내가 슈퍼히어로물을 찾는 이유는 그 순간만큼은 현실을 잊고 꿈을 꿀 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사실 개인의 취미라는 것이 다 그런 게 아닐까? 빈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여행을 가고, 술을 마시고, 문학 소설을 읽고, 복싱을 하거나 영화나 드라마에 빠지는 것이다. 나에게는 슈퍼히어로물이 현실을 잊고 싶을 때 가장 즐겨 찾는 도피처 중 하나인 것이다.


물론 낙천적인 천성 탓에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을 순간이 많지도 않고, 안 좋은 일도 금방 잊는 편이라지만, 하루키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각자 '그 나름의 지옥'을 부둥켜안고 산다. 나 역시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이러한 두터운 어둠의 순간들과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검사실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만 검사실에 앉아있어 보면 우리 사회의 이면에 어떤 무책임하고 비열한 책동들이 요동치는지 꽤 소상히 알 수 있다. 최근 검사실을 찾아온 사람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폭행당했다는 사람, 사기당했다는 사람, 사기당한 걸로 따졌다가 폭행당했다는 사람, 아니면 폭행당했다고 사기 치는 사람들이다. 상처 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피맺힌 하소연도 하소연이지만, 가해자들의 최소한의 인간적 양심도 결여된 뻔뻔한 변명들을 듣다 보면 왈칵 분노가 치밀어 오르곤 한다.


물론 분노한다고 내가 배너 박사처럼 '헐크'로 변신해 모든 걸 때려 부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분노는 그저 분노로 그칠 뿐인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이등병 시절 새벽부터 기상해 치워도 치워도 또 쌓이는 눈을 원망했던 것처럼, 처리하고 처리해도 처리할 사건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탐욕과 이기심들을 원망하게 된다. 결국 원망 뒤에 남는 건 무력감과 지독한 쓸쓸함이다.


최선이라도 다했다면 후회라도 없겠지만, 최선을 다하지도 못할 때가 많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 나조차도 감동할 정도의 친절을 베풀고 싶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이 버겁고 지칠 때도 있고, 어사 박문수처럼 거악을 단번에 일소해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싶지만, 업무처리능력이 미숙해 버벅될 때가 태반이며, 고귀한 이상을 품고 앞으로 쭉쭉 나아가고 싶지만, 속물적 근성 때문에 제자리에서 몸부림치게 될 때가 많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최근 인기를 끈 책의 제목처럼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둘 중 한길을 선택해 과감하게 다 내려놓고 나 편할 대로 살거나 아니면 세상과 대의를 위해 '캡틴 아메리카'처럼 내 몸과 정신을 바치며 살든지 하고 싶지만, 이도 저도 아니니 결국 단테의 『신곡』에 나온 연옥과 같이 애매한 중간 지점 어딘가에서 깊은 자기 모멸감에 허우적대곤 한다.


'연옥'은 지옥과 천국 사이에서 영적 구원을 받을 만한 여망이 있는 망령들이 머무는 영역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슈퍼히어로들의 활약상을 보면서나마 대리만족과 위안을 얻는다. 물론 현재 『어벤저스』 세계관 내에서도 타노스의 압도적 힘 아래 슈퍼히어로들의 연합체 '어벤저스'는 지리멸렬하며 암울한 결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는 확신하고 있지 않은가. 다가오는 속편에서 영웅들이 결국에는 재결합을 이루어내 타노스를 밀어내고 인류를 구원하리라는 걸.


이 확고한 믿음이 현실에서까지 투영되기가 쉽지 않다는 건 안다. 현실에서는 타노스보다 훨씬 더 막강하고 악랄한 온갖 종류의 불의와 부조리 덩어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타노스처럼 인구의 절반을 손가락 하나로 순식간에 절멸시키지는 않지만, 이 부조리 덩어리들은 인구의 절반, 아니 그 이상을 서서히 갉아먹어 사회를 해체시킨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타노스의 공격은 무작위였지만, 현실에서의 불의와 부조리는 무조건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계속 슈퍼히어로물을 보며 꿈을 키우고 싶다. 주인공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책임감 있게 적과 맞서 싸워 마침내 승리한다는, 그 뻔하디 뻔하고 단순한 전개가 현실에서도 이루어지는 꿈을 말이다. 이 세상에는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닥터 스트레인지』나 『배트맨』의 대사 따위나 중얼거리며 소소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나 같은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정말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초인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졸업과 동시에 이민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트럼프 정권 이후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는 멕시코 국경으로 날아간 내 로스쿨 동창이라든지, 아동인권을 위해 가족도 친구도 없고, 언어도 통하는 않는 캄보디아로 날아갔다는 공부벌레들이 많기로 유명한 보스턴의 어느 로스쿨을 졸업한 어느 한 한국인 청년처럼 말이다.



물론 이들 역시 부분적인 개선 외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 꿈들에 조소를 보내며 시니컬한 표정과 말투로 '구조적인 문제'를 운운하며 오늘의 현실이 절대로 변화될 수 없는 영구 불변한 것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꿈을 꿀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근본적 변화가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부분적 개선이라도 해보려고 넘어지고 좌절하면서도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려는 건 그들이 인간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세상 곳곳에서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땀 흘려 일하고, 때론 보상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오늘의 꿈이 내일의 현실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만일 이 시대의 어둠을 몰아낼 참된 '영웅'이자 '슈퍼히어로'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이렇게 현실은 바뀌어지고 사회는 진보할 수 있다는 꿈을 꿀 줄 아는 사람들일 것이다.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도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스탠 리에게, 그가 생전에 습관처럼 외치곤 했던 주문을 대신 바친다.



Excelsior!
더욱더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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