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전원 왔다. 건강하게 살아왔던 아이는 성인을 눈앞에 두고 뇌종양이 발견되었고, 그로 인한 수두증을 해결하기 위해 지방에서부터 앰뷸런스를 타고 어른들 말마따라 '서울에 큰 병원'으로 달려왔다. 다행히 아이의 의식은 또렷한 상태였지만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는지 응급으로 수술을 들어가야 한단 말에 온갖 걱정을 쏟아냈다. 수술 자체에 대한 걱정은 당연하고, 아버지가 갈 곳이 없다는 걱정, 학교와 학원/아르바이트는 어떻게 하냐는 걱정.. 나는 응급 수술을 준비하느라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상태로 대답하다 병원비에 대한 걱정까지 다다랐을 때 곁에 갔다. 병원비 같은 건 우리 어른들이 알아서 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지금은 병원에서 잘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 걱정은 그만하고 괜찮을 거라는 말을 여러 번 해주었다. '어른들'이라고 말하고 나니 갑자기 말의 무게가 느껴졌다. 어른들, 어른들.. 나도 어른에 해당되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다 큰 줄 알고 병원비 걱정하는 이 아이 앞에선 내가 어른이겠구나 싶었다.
수술실과 중환자실 양측에 모든 준비가 끝난 후 나는 아이를 데리고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에 간단한 인계를 끝낸 뒤 나오기 전 잘하고 오라고 손을 잡아줬다. 나가려고 하자 아이는 내게 " 진짜 가실 거예요? "라고 물었다. 그 말에 웃음이 났다. 아이라는 말이 안 어울릴 정도로 건장한 아이였는데, 갑자기 정말 어린아이같이 느껴졌다. 가서 다시 손을 잡고 눈을 맞췄다. 전신 마취기 때문에 하나도 안 아플 거고, 자고 나온다 생각하라고. 선생님들은 다 중환자실에서 그대로 기다리고 있고, 여기 의료진들 다 최선을 다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나는 또 괜찮을 거란 말을 여러 번 해 주었다. 그제야 알겠다며 내 손을 놓더니 결연한 표정으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다음날 출근해 보니 다행히 수술을 잘 끝내고 날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을 더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우린 대학교 이야기도 하고, 학교 다닐 때 이야기도 하며 수다를 떨었는데, 아쉽게도 내가 쉬는 날 병동에 가서 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는 걸어서 날 찾아 중환자실에 왔다. 신경외과 특성상 의식이 명료할 정도의 환자는 하루이틀이면 병동에 가고, 장기로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의식이 없거나 혼돈된 상태다. 그래서 타 병동들에 비해 환자들이 건강해져 중환자실 생활을 기억하고 인사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나도 날 찾아온 건 이 아이가 처음이었다. 병원비를 걱정하던 건 언제고 편의점에서 과자를 잔뜩 사 와 나를 못 보고 갈까 봐 걱정했다고, 고맙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런 아이를 보니 순수함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 잘 회복하고 있는 거 같아 기뻤다. 비싼 카페 음료나 빵보다 그 편의점 과자가 참 귀엽고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퇴근하며 생각했다. 응급 상황에서 의식이 있는 환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괜찮아요"라는 말인 거 같다. 말 그대로 응급 상황에선 장황하게 설명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의료진이 분주하기만 해도 올라가는 환자의 불안감을 경감시켜줘야 하는데 어려운 프로세스와 의학용어들을 갖다 댈 수 없으니 "괜찮아요"라는 말로 압축해서 대답한다. 대략적인 치료 방향과 "지금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괜찮아요" 그런 말들. 사실 이 말을 생각하며 떠올린 기억들은 결론적으론 괜찮지 않게 된 상황들이었다. 죽음에 공포를 느끼며 호흡을 제대로 못하거나 반대로 과호흡 하는 환자들의 불안감을 낮춰주려 했던 말이었는데, 결론적으론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패혈증, 뇌출혈 등으로 돌아가셨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의사소통이 되었던 순간에 내가 해준 말이 "괜찮아요, 우리 잘하고 있어요."라는 말이었단 게 죄책감처럼 느껴졌다. 괜찮지 않았는데 내가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버린 격이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 봐도 그 순간에 다른 할 수 있는 말이 없던 거 같다. 죽음은 언제 올지 모르고, 그건 의료진도 마찬가지다. 앞선 환자들의 사례와 현 상태로 대략적인 추측을 할 뿐 정확한 시기는 신도 모를 거다. 특히나 급성기에서 악화되면 더 종잡을 수 없다. 나빠지는 원인을 알아내기도 전에 환자가 자꾸 내 손을 떠나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나는 떨어지는 혈압을 잡으려 승압제를, 호흡을 편하게 해 주려 기도삽관을, 출혈을 없애주려 수술을, 뇌압을 낮추려 온갖 약을.... 매 순간순간을 나도 안간힘을 쓰며 따라간다. 근데 그렇게 하는데도 자꾸 안 좋아지기만 하면 근무가 끝나고 죽음 앞에서 무기력함도 느껴진다. 지난 8시간을 정말 최선을 다 했는데, 내가 놓친 건 무엇인지 고민이 된다.
결국 일상생활에서도, 나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괜찮다는 말이다. 나 또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무엇도 예상할 수 없지만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어쩌면 그게 내게 제일 좋은 선택이었어서 나도 환자들에게 그 말을 자꾸 해주는 걸 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자신이 죽냐는 질문이나 죽을 거 같다는 질문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돌아가셨다는 익숙한 표현을 할 때면 내 마음속엔 "어디로?"라는 물음표가 떠오른다. 어디로 돌아간다고 말하려 그 말을 오래 오래도록 써 왔을까?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로 돌아간다고 생각해서 처음 말했을까? 나는 종교가 없지만 사원, 절, 성당 등 종교 장소에 가면 기도 한다. 나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던 내용은, 간호사가 되고 조금 달라졌다. 이젠 내 손에서 떠나간 이들이 모두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는 기도도 함께 올린다. 마지막 모습은 환자복을 입고 통증과 수술로 인해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이제는 살았던 시절 가장 예뻤던 모습으로 행복했던 시절을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