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마 B Mar 01. 2023

나의 수호 천사

함께 사는 세상을 알려주신 분들을 위하여


한의원에서 하루의 절반 정도를 보내는 삶을 이어온 지 벌써 10년이 다 됐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때문인지 10년이란 시간은 마치 일 년이 지나간 듯 짧게 느껴진다. 매일 아침 한의원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변화하는 색과 기울기를 보며 지금이 어느 계절인지를 느낀다. 그리고 한의원을 개원했던 봄이 다시 오고 있음을 어김없이 알아차린다.


어렸을 때 돌 세 개만 있으면 하루 종일 노는 아이로 통한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혼자 노는 걸 즐기는 타입이다. 환자가 많이 없는 조용한 날에는 반납일이 임박한 도서관에서 대출받은 책을 읽거나, 점심시간에는 책이나 실제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좋은 작품들을 넷플릭스에서 시청한다. 그리고 글을 쓰기도 하면서 돌 세 개 대신 다른 놀잇감을 찾아 심심하지 않게 하루를 보내는 편이다.


서울에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동네에 한의원을 개원했을 때,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환자들이 자석처럼 내 한의원으로 끌려올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진 채 의기양양하게 한의원을 열었다. 하지만 나의 자신감은 자만심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석처럼 끌려 오기는커녕 오히려 자석의 같은 극끼리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환자는 오지 않았고 한의원은 조용했다.


그렇게 매일 창밖을 내다보며 절망 속에 빠져 자괴감을 느끼며 보내던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노점에서 야채가게를 하시는 무뚝뚝한 이모님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친해지려고 야채도 사고 과일도 가끔 샀다. 몇십 년 동안 이 동네에서 장사를 해 오셨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동네를 훤히 알고 있다는 말씀은 나를 소개하기도 전에 이미 내가 낯선 이방인임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한의원 바로 앞에서 열쇠가게를 하시는 사장님께도 매일 "안녕하세요 사장님!"이라고 크게 인사를 했다. 낯선 동네에 익숙해지기 위해 두려움과 근심을 숨긴 채 친해지고 싶은 출근길 인사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신환이 한두 명씩 찾아왔다. 얼굴 한번 뵙지 않은 동네 미용실 원장님, 인사할 때마다 웃음 가득한 열쇠가게 사장님, 그리고 놀라운 건 무뚝뚝한 야채가게 이모님까지 나에게 환자들을 보내주고 계셨다는 것이다. 거기다 노점에서 장사하시는 동네 터줏대감들이 새로 생긴 한의원 원장의 힘을 북돋아 주고 계시다는 걸 환자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지나가는 행인이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한의원을 물으면 내 한의원에 꼭 가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적에게 밀려 수세에 몰린 아군을 돕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지원군이 등장한 것 같은 상황은 바닥에 떨어진 나의 전의를 다시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돕기 위한 동네분들의 소개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 혼자 잘하면 저절로 잘 될 거라는 착각 속에 살던 나는 이분들의 도움으로 혼자만의 세상에서 헤엄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혼자 노는 걸 좋아했으며, 혼자 있는 것을 즐겼고, 혼자 공부하고 책 읽으며 보냈던 세월 동안 함께 사는 세상의 가치를 잊고 있었다. 사람들과 최대한 부딪치지 않고 사는 게 피곤하지 않게 사는 방법이라는 등식을 정립하며 살아왔었다. 그런데 터줏대감 동네분들이 한의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신 이후. 한의원은 소생하였고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분들의 수고로움과 도움으로 나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성공을 이루었으며 나의 열정을 한의원에 고스란히 쏟아부을 수 있었다. 감사함은 물론이고 한의사로서의 사명감까지 느끼면서 세상은 혼자만으론 잘 살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열기로 후끈해진 나의 가슴은 감동으로 범벅이 되었으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진료에 임했다. 환자들을 성심껏 치료함은 물론이고 소개해 주신 분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이런 게 함께 사는 거구나를 느꼈다. 나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삶이 훨씬 가치 있고 풍요로운 삶이란 걸 느끼며 마음속 깊이 든든함이 자리 잡게 되었다.


출근길 아침, 바쁘게 집에서 나와 출발 후 신호 대기 중이던 나는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창문을 내렸다. 모범택시 기사님이 내 차 타이어 펑크가 났으니 신호가 바뀌면 차를 길 건너에 세우고 고치고 가라 하셨다. 나는 타이어에 문제가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운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범택시 기사님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큰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다. 일부러 차에서 내려 알려주신 배려심에 말로는 다 표현을 못 할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 이후 나는 보답하는 마음으로 모범택시가 무리하게 끼워들려고 해도 무조건 양보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기사분이 운전하는 모범택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듯 좋은 일은 계주의 바통터치처럼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흐뭇해했다.


아파트 옆집 이웃이랑 인사를 나눌 기회가 일 년 중 손꼽을 정도로 드물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들과는 서로를 모른척하는 게 배려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게 도시 생활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서 얻는 에너지야말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살면서 종종 느낀다.


행복이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유럽 여행을 가야 행복하고 내가 사는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라 여기며 행복은 거창하고 저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내 생활 주변 곳곳에 감춰져 있는 작고 소박한 행복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발견하고, 행동에 옮기는 용기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가치를 더해 줄 것이다.


바쁜 출근길에 창문을 내리라던 모범택시 기사님, 한의원 주변 곳곳에 포진한 나의 든든한 지원군들은 함께 사는 세상의 가치를 몸소 보여주고 계시는 분들이다. 눈과 귀를 막고 자신들의 일만 할 수도 있었다. 그런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분들은 진정으로 사는 게 뭔지 아는 분들이었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던 나에게 경종을 울리며 사는 게 뭔지 보여주신 분들이다. 함께 살아가는 멋짐을 보여주신 분들이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환자와 함께하며 치료가 끝난 환자에게 파스 한 장을 붙여 드릴 때에는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은 바로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소박한 행복은 날마다 경험할 수 있으며, 이 행복의 출발은 바로 나를 응원해 주신 동네 분들이다. 돈으로 살수 없으며, 진열되어 있는 물건처럼 꺼내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거대한 분출력을 가진 마그마 같은 에너지 덕분에 아직까지 나는 한의원을 하고 있다.


한의원 창문에서 내려다보이는 열쇠 가게 사장님은 아직 우리 동네를 지키고 계신다. 인정이 넘쳤던 동네가 재개발로 인해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구청에서 허가를 받아 인도에서 운영하고 있는 열쇠가게가 민원 접수된 일이 발생했다. 아파트 주변 경관의 품위를 저해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터를 잡고 사업을 해 오신 사장님은 충격을 받으신 듯 보였다. 아파트 가격도 중요하지만 삶의 터전으로 삼아 온 사장님의 거리 가게를 오히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점으로 여기면 어떨까 싶었다. 장애를 가진 사장님을 내쫓는 것은 사장님이 알게 해 주셨던 함께 사는 세상의 가치와 어긋나는 것이었다. 나는 사장님이 그 자리에서 사업을 계속할 수 있기를 간절히 진심으로 바랐다. 다행히 구청 직원은 길 건너에 자리를 지정해 계속 열쇠 가게를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아파트 입구와는 떨어져 있기에 큰 문제로 삼지 않은듯했다.


낙후되고 오래된 동네가 재개발이 되어 번쩍거리는 아파트가 들어서 재 정비가 되었지만 열쇠가게와 야채가게가 있음으로 주변의 경관을 크게 헤치지 않으며 아파트 가격은 열쇠가게와 무관하게 높이 치솟았다. 이제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의 가치를 실천해야 할 때라고 본다. 야채 가게와 열쇠 가게가 몇십 년 동안 지켜온 자리를 아파트 주민들로 인해 옮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지만 그분들은 여전히 나의 수호천사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분들은 앞으로도 계속 함께 사는 세상의 긍정적인 면만 보고 살아가실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어쩌다 트롯에 빠졌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