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한쪽

by HAy

일요일 오후 심심함에 몇 년도였는지 정확히 모르나 몇 해 전 수학 능력 시험 언어영역을 풀어 보았다.

호기심 반, 요즘 내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강력한 느낌 반을 이유로 뜬금없이 문제를 풀었다.

푸는 동안 생각보다 풀기가 수월하다는 느낌에 내심 뿌듯했다.

그래도 그동안 읽은 책들이 어려운 글들을 수용하는데 필요한 읽기 능력을 더해 주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안도도 했다.

역시 주어진 100분 안에 푸는 것은 이미 틀렸고(100분이 끝날 무렵 나는 45문항 중 25번을 풀고 있었다) 거의 2시간에 걸쳐 문제를 풀었다.

시험을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검증해 보고 싶어 한 것이므로 점수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약간 실망은 했지만.

점수는 참사. 100점 만점에 70점.


문제를 풀며 수월했다.

척척 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문이 읽히고 내용을 분석하는 것은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수월해 내심 높은 점수를 기대했는데.

오답을 살펴보니 까불고 지문을 정확히 읽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뒤이어 정신이 드는 생각은 그동안 내가 책을 읽으면서도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문제의 대부분은 지문의 팩트, 내용 이해, 작자의 의도 등을 묻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틀리다니.

내가 책을 읽으면서 얼마큼 몇 번이나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때로는 내용마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제대로 읽지 못하고 넘어간 것이었겠는가.

여러 면으로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 와중에 지문의 내용은 흥미로웠고, 지문을 읽으며 알게 새 지식도 있다.


무엇보다 이것이 뭔가를 결정짓는 시험이 아니고, 더 좋은 건 내일 당장 내가 할 일이 시험 문제를 풀거나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

즐겁게 그냥 즐겁게 독서하는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가끔 한 번씩 해 봄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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