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를 받았다

주말 아침의 한줄

by Bora Jung
젊은 사람의 죽음을 들으면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나이 든 이의 죽음을 들으면 자연스레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번 주에는 부고를 받았다.

죽음, 그리고 죽음 앞의 평온함이라는 것은 내게 늘 스크린 속 이야기였다. 혹은 성인의 자서전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 같았다.

현실에서 내가 보아온 죽음은 대부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한없이 힘없어지는 모습들이었다.



살면서 몇 번의 충격적인 부고를 들은 적이 있다.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다녀오면 하루 이틀, 길게는 며칠 동안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가까운 이의 경우에는 몇 달을 슬퍼하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상실 앞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가슴 한켠이 여전히 쓰리다. 상실감이 지나고 애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가슴 어딘가가 꽉 조이는 느낌이 남는다. 오래 긴장한 것처럼 마음이 굳어 있기도 하고, 속이 텅 빈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이 정도인데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가늠조차 어렵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외할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젊은 나이에 사고로 삼촌을 잃은 외할머니는 가슴속에 큰 구멍이 뚫려 찬바람이 휑휑 지나가는 기분이라고 하셨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는 삼촌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신다. 그냥 살아가는 거라고 했다. 마음이 뚫린 채로 살아가는 거라고. 잊으려고 일을 미친 듯이 하다 보니 지금은 몸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내 마음을 후벼 판다.


대학 시절 내가 잘 따르던 교수님의 아버지 장례식에 다녀온 적이 있다. 호상으로 장례식을 다녀오고 나면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불필요한 것들에 시선을 빼앗긴 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갑작스러운 죽음의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던 순간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중학교 시절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였고, 또 한 번은 직장 동료가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애도의 시간 동안에는 슬픔을 추스리느라 어떤 생각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한 달, 길게는 몇 달이 지나서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 이렇게 바득바득 사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


젊은 사람의 죽음을 들으면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나이 든 이의 죽음을 들으면 자연스레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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