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은 단지 '게임'일 뿐인가?

오징어게임:시즌2를 보고

by 사람

7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게임 진행에 찬성하는)'찬성파'와 주인공 기훈이 속한 '반대파'가 인원점검을 하는 장면이다. 게임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투표에 앞서 양측 간에 격렬한 소요 사태가 발생하고, 원자화된 개인들이라는 우연적 집합에 불과했던 참가자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불현듯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획된다. 예컨대 민주주의 사회가 전근대적인 공동체 사회로 퇴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소 의아해 보이는 시퀀스가 이어진다. 기훈(이정재)은 이러한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의 갈등은 표면적인 대립에 불과하며, 주최 측과 참가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이야말로 진정한 대립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동료들에게 상기시킨다. 감독이 이것을 플래시백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관객은 사후적으로, 그것도 엉겁결에 이 과정에 동의하고 지나칠 뿐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총기를 탈취하려는 목적으로, 다수(의 대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자고까지 역설한다. 이것은 오징어 게임의 논리와는 정반대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소수(우승자 1명)를 위해 다수가 희생되어야 하는 경쟁의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근대사회에서는 합법적이었던 우정과 연대에 근거한 이러한 공동체주의자의 태도야말로 오늘날 시각에서 바라볼 때 가장 불법적인 것이다(예컨대 전두환의 하나회나 오늘날의 충암파도 일종의 공동체였다). 오징어 게임 주최측이 형식상으로나마 정당한 이유는 그들이 참가자(플레이어)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존중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반면 기훈은 그들이 존중하는 자유가 자본주의라는 게임 규칙에 대한 복종을 강요한다며 기각한다. 그는 ‘게임 속 자유’와 ‘게임을 하지 않을 자유’를 대립시키며 후자를 옹호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는 게임을 하지 않을 자유가 어떤 이들에겐 사실상 죽음과 같다는 점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예컨대 그는 자본주의에서의 실패(예컨대 자영업자의 사업실패)가 현실에서의 죽음과 등가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오징어 게임은 단지 게임일 뿐인가? 찬성파의 입장에서 볼 때 게임 너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오징어 게임의 규칙이 전부인 것이다. 오히려 기훈이 현실과 게임을 구분할 때 그는 현실을 게임화하는 입장에 선다. 놀랍게도 이러한 메타 레벨에서 기훈은 그가 그토록 부정하는 부유층과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게 된다(더 나아가 용병을 고용하고 무기를 밀매입하는 기훈의 행동은 그것이 정의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들 정확히 자본의 논리를 따르지 않았는가? 그의 최종 목적지 또한 상층부인 컨트롤타워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오영일(이병헌)은? 그는 개인적인 흥미를 위해 게임에 참가했던 시즌1의 오일남(오영수)의 반복이다. 따라서 시즌2에서 영일의 발걸음이 멈추는 곳은 컨트롤타워 문 앞인 것은 당연해 보이는데, 문 너머는 그에게는 더 이상 미지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게임화한다는 측면에서 기훈과 영일은 닮아있다. 기훈이 정의로운 투사로서 동료들을 사지로 몰고 갈 때 영일은 단지 기훈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볼 뿐이다. 이는 마치 비디오 게임 속 정의로운 용사(캐릭터)와 그의 여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플레이어의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과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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