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나폴리 여행의 단상
택시에 올라타 주소를 보여주자 운전기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창문을 열어 아직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동료 기사에게 질문을 던졌고, 몇 번을 되묻던 동료는 똑같이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다른 동료들에게 질문을 했다. 그렇게 우리가 탄 택시는 어느새 십여 명의 기사들에 둘러싸였다. 이탈리아 인 특유의 손짓 제스처가 사방에서 오갔고, 떠들썩한 설전이 5분이 넘도록 계속됐다. 뜨거운 남부 이탈리아의 태양 아래, 그 열기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그들은 목적지로 가는 길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으로 한판 토론을 벌였다.
나폴리 택시에서는 요금 바가지를 조심하라는 가이드북의 주의사항을 상기하며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던 우리는 그 한가운데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참을 앉아있다가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았다.
도시로 들어가는 내내 택시 운전사는 쉴 새 없이 허공에 두 팔을 내저으며 뭐라 뭐라 이야기를 했다. "스파뇰리"라는 단어가 계속 들리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찾아갈 스페인 지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게 어쨌다는 건지는 그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동차로 들어가기가 복잡하고 어려운 동네라는 거겠지. 그래서 그 긴긴 토론이 필요했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본인의 심경이 또한 어지럽다는 거겠지.
과연 그랬다.
그 동네의 길들은 예상보다도 훨씬 좁고, 아슬아슬했다. 끊임없이 스쿠터가 차와 사람들 사이를 지그재그로 휘젖고 다녔고, 거리에는 가정집의 살림살이가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좁은 길목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던 구멍가게의 할머니는 택시에 길을 터주기 위해 힘들게 일어나 의자를 치워야 했다. 택시 기사는 한번 길목을 잘못 들어설 때마다 "맘마미아"를 외치며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고, 느릿느릿 후진을 했고,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우리를 한번 쳐다보고는 어김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어찌어찌하여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택시기사는 애초의 우려가 부끄럽도록 정확하게 "공항-시내"구간의 정해진 요금을 불렀다. 그리고 돈을 받으며 물었다. 그 에어 비엔비인가 하는 그거냐고. 내가 고개를 미처 다 끄덕이기도 전에 그는 한심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허공을 쳐다보며 요란하게 한숨을 쉬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가난한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담장도 아닌 창문 너머로 집집마다의 얄궂은 사연들을 그대로 목격하게 되는 일이다.
한껏 나온 배를 드러내고 담배를 피우며 대낮부터 티브이를 보고 있는 아버지 앞에 앉아 숙제를 하는 삐쩍 마른 여자아이를 스쳐 지나가야 하는 일이고, 침대 매트리스가 놓여 있는 부엌의 한가운데에 식탁을 놓고 모여 앉아있는 네댓 명의 가족들과 눈을 마주치게 되는 일이다.
그것은 동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며 기념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올렸다가 베란다에서 웃통을 벗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청년과 눈이 마주쳐 민망함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고,
보풀이 올라오고 고무줄이 한참 늘어난 팬티와 브래지어를 걸어놓은 빨랫줄과 그 주인으로 여겨지는 여인들을 수 없이 마주치면서 미안함으로 카메라를 내리는 일이다.
마치 스스로가 누군가의 숨기고 싶은 치부를 구경하러 온 사람처럼 느껴져 왠지 모를 자책감을 느끼게 되는 일이다.
한껏 멋을 내고 올라 탄 바닷가 마을로 가는 기차 안에서, 썩은 이를 드러낸 채 입을 벌리고 잠이 든 남자를 한 시간 넘게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 일이다. 내내 생활의 피로와 고단함을 묻혀 다니는 사람들만을 마주치게 되는 통에 여행의 마지막에서 삶의 가치와 유쾌함, 즐거움으로 생기를 얻기보다는 그 전보다도 더 삶에 지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는 일 없이 거리에 앉아 있는 남자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어쩌면 그들은 그저 달리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어 다른 세계에서 온 당신을 구경하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르는데, 괜한 긴장과 위협감을 느끼며 가방의 소지품을 확인하게 되는 일이고, 저들은 왜 저기에 있는가까지 주제넘게 회의하고 원망하게 되는 일이다.
그렇게 내가 떠나온 도시보다도 더 피로한, 일상의 풍파를 맞닥뜨린 기분으로 밤을 맞고나서는 동네 청년들의 쉴 새 없는 오토바이 소리와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들의 고함소리에 잠 못 이루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잠 못 드는 밤 옥상에 나와 하늘을 바라보다가 어둠이 눈에 익어가면서 문득, 어두운 밤하늘에 숨어 있던 별들이 수십 개였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하고, 그 반짝임을 한꺼번에 느끼며 그 아래에서 불현듯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또 이들과 얼마나 다른가, 그렇다면 나는 그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었나 하는 생각에 찌들 데로 찌들어 있던 지나온 일상이 순간 선명하게 보이는 일이기도 하고, 누추하다 생각하며 타인의 삶을 재단하며 보낸 하루에서 스스로의 오만함이 느껴져 화들짝 놀라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면에 가득했던 편견과 자만을 마주하고 나면, 허영과 헛된 욕심으로 가득 찬 나의 글들이 너무나 부끄럽다며 중얼거리게도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