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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 May 23. 2019

할로윈

무척이나 오랜만에 바깥에서 여유로운 휴일을 보내는 듯하다. 요즘 신조어 중에는 ‘대충 살자’라는 말이 유행이던데, 쉬는 날만큼은 유행어대로 대충 씻고, 화장도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어디를 갈지 정하지 않고 대충대충 시간을 허비하도록 자신에게 허한 날이다. 그래도 약간의 계획은 있다. 집 근처 커피숍에서 카푸치노를 마시고, 얼마 전에 원고료로 구매한 코닥 200 필름을 넣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항상 가던 언어의 정원으로 출사를 떠날 참이다.


커피를 마신 탓인지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나는 커피숍을 빠져나와 2층 영화관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그렇게 볼일 보다가 왜 갑자기 그런 상상을 하게 된 건지……. 정체 모를 누군가가 화장실 문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나는 소변을 다 누고도 나갈 수 없게 됐다. 그냥 무서웠다. 나가지 못하겠다. 나는 문 앞에 계속 서 있다. 이대로 문을 열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괴한이 거침없이 밀고 들어와 주먹으로 내 머리를 갈겨버리고, 몹쓸 짓을 할 것만 같았다. 차라리 몰카가 더 낫겠다. 이러한 선택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분노보다 앞서는 것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용기를 내 문을 열었더니,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막 내 앞을 지나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심하기보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놀랬다. 이보다 무서운 할로윈은 없겠지. 아니, 없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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