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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Sep 17. 2018

소금 기둥

레오폴도 루고네스(Leopoldo Lugones)/ 조구호 옮김

    이 이야기는 그 순례자가 소시스트라토 수사에 관해 들려준 실화다.

    "산 사바스 수도원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사람은 진정으로 황량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할 수 있답니다.  요르단 강변에 있는 케케묵은 건물 한 채를 상상해 보세요. 누르스름한 모래 색깔을 띠고 있는 요르단 강물은 거의 지친 상태로 작은 테레빈 나무 숲과 소돔의 사과밭 사이를 지나 사해를 향해 미끄러지듯 흐르고 있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수도원 담 위로 꼭대기가 불룩 튀어나온 야자나무 한 그루가 유일한 나무였습니다. 끝없는 고독은 일부 유목민이 가끔 가축 떼를 이끌고 지나갈 때만 흐트러질 뿐이고, 엄청난 고요는 지평선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산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답니다. 사막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미세한 모래가 비처럼 흩날립니다. 사해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모든 식물은 소금을 뒤집어씁니다. 낙조와 여명이 동일한 슬픔을 띠고 있답니다. 수도원에서는 미사를 드리고 영성체를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 수가 다섯에 불과하고, 모두가 적어도 칠십 대인 수사들이 순례자에게 대추를 튀겨 만든 소박한 과자, 포도 몇 개, 강물 몇 잔을 대접하고, 가끔은 야자 술을 대접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훌륭한 의사라는 이유로 이웃 부족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수도원 밖으로 나오는 법이 없답니다. 누군가 죽으면 저 아래 강변에 있는 바위 동굴 속에 묻습니다. 그런 동굴에는 수도원의 친구인 파란 비둘기 몇 쌍이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예전에, 그러니까 여러 해 전에 이미 이들 동굴에 첫 번째 은수자들이 거주했는데, 그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제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해 주기로 약속한 소시스트라토 수사랍니다. 우리의 카르멜 성모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기를 바라고, 자, 여러분 주의 깊게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들이시게 될 이야기는 팔십 평생 덕행과 속죄의 성스러운 삶을 산 사바스에서 마감하고, 현재 그곳의 어느 동굴에 묻혀 있는 형제 포르피리오가 내게 한 마디 한마디 자세하게 해 준 것이랍니다. 하느님, 당신의 은총 안에 그 형제님을 껴안으시길 비나이다. 아멘."

    아르메니아 출신 수사 소시스트라토는 세속적인 삶을 살다가 최근에 여러 젊은 친구와 함께 기독교도가 되어 고독의 삶을 영위하기로 결정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강인한 기둥 수도사(기둥 위에서 은거하며 수도하는 사람) 집단에 속하게 되었다. 그들은 사막을 오랫동안 방황한 뒤 어느 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적이 있던 동굴들을 발견하고는 그곳에 은거했다. 요르단 강물과 그들이 공동으로 경작하는 작은 채마밭에서 나오는 과일은 그들이 먹고사는 데 충분했다. 그들은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동굴들로부터 기도자 집단들이 생겨났는데, 그들은 세상의 죄 위로 곧 무너져 내릴 수 있는 불안정한 천계를 자신들의 노력으로 지탱하고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추방당해 살아가던 그 사람들, 즉 하느님의 정당한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매일 자신들의 육체에 모진 고통을 가하고, 금식을 일상화함으로써 속죄 행위를 하던 그 사람들의 희생은 수많은 역병과 전쟁과 지진을 피하게 만들었다. 이는 수도원에서 서원자들이 행하는 속죄 행위를 은근히 비웃는 무신론자들은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사람들의 희생과 기도는 세상의 천장을 지탱하는 것이다.

    소시스트라토와 그의 동료들은 절제와 침묵의 삼십 년 세월을 보낸 뒤 신성에 도달했다. 패배한 악마들은 이 성자들의 발아래에서 무기력하게 울부짖었다. 성자들은 하나하나 죽어 갔고, 결국 이 세상에는 소시스트라토만 남게 되었다. 소시스트라토는 몹시 늙고 체구가 아주 작아져 있었다. 몸이 거의 투명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매일 열다섯 시간씩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계시를 받았다. 친구처럼 지내던 비둘기 두 마리가 매일 오후 소시스트라토에게 석류 몇 개를 가져와서 부리로 쪼아 먹여 주었다. 소시스트라토는 이 석류만 먹고살았다. 반면에 오후가 되면 소시스트라토 몸은 재스민 향기를 풍겼다. 매년 성 금요일 소시스트라토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나뭇가지로 만든 침상 머리맡에 포도주가 가득 담긴 금배 하나와 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소시스트라토는 그것으로 영성체를 하면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황홀경에 빠졌다. 그는 그런 것들이 어디서 오는지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주 예수님은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천국에 올라 지복을 누리는 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기다리며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오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곳을 지나간 행인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소시스트라토 수사가 비둘기 친구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있는데, 비둘기들이 뭔가에 놀라 그를 놔둔 채 날아가 버렸다. 순례자 하나가 막 동굴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소시스트라토는 성스러운 언어로 순례자에게 인사한 뒤 신선한 물이 들어 있는 항아리를 가리키며 마시라고 청했다. 낯선 순례자는 피로에 지쳐 있기라도 하듯 조급하게 물을 들이켜더니 바랑에서 마른 과일 한 주먹을 꺼내 먹은 뒤 소시스트라토와 함께 기도했다.

    이레가 지났다. 그 순례자는 카이사르에서 사해 해변까지 이르는 자신의 순례에 관해 말하고는 말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소시스트라토의 마음을 붙들어 맸다.

"저는 그 저주받은 도시들의 잔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밤 손님이 소시스트라토에게 말하였다. "저는 바다가 흡사 거대한 화덕처럼 연기를 내뿜는 것을 본 적이 있고, 벌을 받아 소금 기둥으로 변해 버린 롯의 아내를 정말 놀란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친애하는 형제여, 그 여자가 살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신음을 들었고, 그녀가 정오경에 소금 땀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벤쿠스가 논저 <소돔에 관해서>에서 밝힌 것과 유사하군요." 소시스트라토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저도 그 대목을 알고 있습니다." 순례자가 덧붙였다. "그 논저에는 훨씬 더 결정적인 뭔가가 있답니다. 말하자면 롯의 아내가 생리학적으로는 계속해서 여자로 존재했다는 겁니다. 저는 그녀에게 내려진 형벌을 풀어 주는 것이....... 자선사업이 될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하느님의 정의지요." 외로운 수사 소시스트라토가 소리쳤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옛 세상의 죄를 사해주려고 오시지 않았나요?" 성서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여행자가 부드럽게 대꾸했다. "혹시 영세가 복음서에 규정된 죄와 법에 규정된 죄를 똑같이 씻어 내지 않을까요?"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 뒤 잠이 들었다. 두 사람이 함께 보낸 마지막 밤이었다. 이튿날 낯선 여행자는 소시스트라토의 축복을 받으면서 떠났는데, 순례자인 척하던 그 여행자의 외모가 반듯했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사람으로 변신한 사탄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여러분에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탄의 계획은 용의주도헀다. 그날 밤부터 집요한 걱정이 성자의 영혼을 엄습했다. 그 소금 기둥에게 세례를 주고, 사슬에 묶은 그 영혼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해! 성자를 향해 자비심이 요구하고, 이성이 주장하고 있었다. 이런 갈등 속에서 몇 개월이 지났고, 마침내 수사는 환영 하나를 보게 되었다.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는 그에게 마음먹은 대로 실행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소시스트라토는 사흘 동안 금식 기도를 하고,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 아카시아 나무 지팡이에 의지한 채 요르단 강변을 따라 사해를 향해 떠났다. 여정은 길지 않았으나 다리가 몹시 피로했기 때문에 겨우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틀을 걸었다. 충성스러운 비둘기들이 늘 그렇듯 그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 결정이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진실된 기도를 끊임없이 올렸다. 결국 그의 다리 힘이 쇠진되려 할 때 산들이 열리고 사해가 나타났다.

    파괴된 도시의 골격은 차츰차츰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불에 탄 돌 몇 개뿐이었다. 부서진 아치 조각, 소금에 절어 있거나 역청 속에서 굳은 채 늘어서 있는 아도베 벽돌...... 그 잔해 더미 속에 엉거주춤 멈춰 선 수사는 잔해를 밟을 때 발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애를 썼다. 갑자기 그의 늙은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제 부스러기 잔해를 지나 어느 산자락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남쪽으로 소금 기둥의 실루엣이 아련하게 보였다. 시간이 갉아먹은 딱딱한 망토 속에 든 그의 몸은 유령처럼 길고 가늘었다. 이글거리는 투명한 태양빛이 바위를 구워 대고 테레빈 나무 잎을 덮고 있는 소금 껍질을 반들반들하게 만들었다. 정오의 작열하는 태양빛을 받고 있는 관목들이 은처럼 보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사해의 씁쓰레한 물은 늘 그렇듯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잠들어 있었다. 순례자들은, 바람이 불면 그 물속에서 각 도시의 유령들이 슬프게 탄식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시스트라토는 소금 기둥에 다가갔다. 여행객이 해준 말은 사실이었다. 미지근한 습기가 소금 상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하얀 눈, 하얀 입술은  수 세기 동안의 잠 속에서 바위의 침범을 받으면서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바위에서는 생명의 조짐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태양이 불굴의 집념을 발휘하며 수천 년 전부터 항상 똑같이 소금 기둥을 태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은 땀을 흘렸기 때문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잠을 자는 것 같은 그런 상태는 성서에 기록된 경이로운 사건들의 불가사의를 요약하고 있었다. 야훼의 분노가 그 존재, 살과 바위로 이루어진 그 놀라운 합성물에게 미쳤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잠을 방해하려는 소시스트라토의 시도는 경솔하지 않았을까? 그 저주받은 여자의 죄가 그녀를 구하려고 애쓰는 그 분별없는 남자에게 떨어지지 않을까? 불가사의를 밝히려는 것은 범죄적 광증이고, 아마도 지옥의 유혹일 수도 있다. 비탄에 젖은 소시스트라토는 기도를 하기 위해 어느 작은 숲 그림자 속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행위가 어떻게 실행되었는지는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겠다. 여러분은 성수가 소금 기둥 위로 떨어지자 소금이 천천히 녹았고, 그 외로운 수사의 눈에 여자 하나, 영원한 세월 동안 늙어버린 여자, 무시무시한 넝마 옷에 둘러싸인, 재처럼 가볍고, 마르고, 온몸을 벌벌 떠는 여자, 수 세기의 시간으로 채워져 있는 여자 하나가 나타났다는 사실만을 알면 된다. 사탄을 보고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수사였건만 그런 환영을 보고는 공포를 느꼈다. 그 환영에 나타난 것은 신에게 버림받은 민중이었다. 그 눈들은 신의 분노로 그 추잡한 도시들에 쏟아졌던 불타는 유황 비를 보았어! 그 넝마는 롯이 소유한 낙타의 털로 짠 것이었어! 그 발들은 없이 타오르는 화재의 재를 밟았어! 그리고 그 놀란 여자가 예전의 목소리로 소시스트라토에게 얘기했다.

    이미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화재에 대한 희미한 이미지, 바다를 보았을 때 일어났던 무시무시한 느낌만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영혼은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잠을 잤고, 무덤처럼 검은 꿈을 꾸었다. 영문을 모른 채 그 악몽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수사가 막 그녀를 구한 것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최근에 본 광경 가운데 유일하게 선명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다..... 불..... 대참사.... 불타는 도시들.... 그 모든 것이 선명한 죽음의 장면에서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죽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받고 있었다. 그녀를 구한 사람은 바로 그 수사였던 것이다!

    소시스트라토는 몸을 벌벌 떨었다. 붉은 불 하나가 그의 동공을 태웠다. 과거는, 불바람이 소시스트라토의 영혼을 휩쓸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소시스트라토 안에서 희미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인식만이 그의 의식을 점유했다. '롯의 아내가 그곳에 있었어!' 해가 산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진홍색 불길이 지평선을 물들였다. 비극의 날들이 그 화염의 장관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 장면은 마치 징벌이 부활하는 것 같았는데, 화염이 애처로운 호수 수면 위에 두 번째로 반사되었다. 소시스트리토는 막 무수한 세월 속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대참사의 중심적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 그 여자는 소시스트라토가 알고 있던 여자였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조바심이 소시스트라토의 살을 태워 버렸다. 소시스트라토의 혀가 부활한 유령을 향해 말했다.

    "여자여, 한마디만 대답해 주세요."

    "말씀하세요...... 물어보세요......."

    "대답해 주시겠어요?"

    "그럼요, 말씀하세요. 저를 구해 주셨잖아요!"

    은수자의 눈이 번쩍 빛났다. 마치 산들을 태우던 불빛이 그의 눈에 모아지기라도 하듯이.

    "여자여, 그대가 뒤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무엇을 보았는지 내게 말해 주세요."

    번민에 젖은 목소리 하나가 그에게 대답했다.

    "아아, 안 돼요...... 엘로임(구약성서의 신을 의미한다)을 위해서라도 그걸 알려고 하지 마세요!"

    "무엇을 보았는지 말해 주세요!"

    "보지 않았어요...... 보지 않았다고요.  아마도 심연을 보았을 거예요!"

    "나는 심연을 좋아해요."

    "그것은 죽음이에요......"

    "무엇을 보았는지 내게 말해 주세요!"

    "말할 수 없어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당신을 구해 주었소."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막 태양이 지고 있었다.

    "말해요!"

    여자가 다가왔다. 목소리에 먼지가 잔뜩 끼여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잦아들고 희미해지고 있었다.

    "돌아가신 그대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말해요!"

    그러자 그 환영이 은수자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한마디 말을 했다. 그러자 소시스트라토는 번갯불을 맞아 파괴되면서 비명 한마디 내뱉지 못한 채 죽었다. 우리, 소시스트라토의 영혼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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