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때

초인종이 울리지 않는 고요.

by 끝의 시작

아침부터 저녁까지, 초인종은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전화, 문자 메시지, 하다못해 일방적인 광고메시지 한 통도 오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이 고요가 공포처럼 다가올 수도 있다.

'내가 잊힌 건가?'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건가?' 하는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올지도 모른다.

끊임없는 연결과 소통을 미덕으로 삼는 시대에,

초인종의 침묵이 인간관계의 실패나 고립의 상징과도 같지는 않은지.


나를 찾는 각종 알림은 종종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외부적인 척도 같기도 하다.

마치 '나는 여기 존재한다'는 알림을 끊임없이 받아야만 안심되는 것처럼

바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혹은 최소한 외롭지 않다는 증거라도 되는 양.


그렇지만 나는 이 초인종들이 침묵할 때 비로소 진정한 나의 시간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요구에 응답해야 할 의무도 없고, 불필요한 대화에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고립이 아니다. 이것은 '나'라는 존재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거룩할 만큼 귀한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그 어떤 가치도 타인의 '딩동' 소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내면이 얼마나 많은 초인종 소리로 어지럽혀져 있었나? 외부의 시선, 타인의 기대, 관계의 의무감.

이 모든 소음들이 나를 바깥으로만 향하게 했을 뿐, 정작 내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빼앗지는 않았는가.


초인종이 잠잠한 하루는 불필요한 관계의 소음을 걷어내고, 내면의 초인종을 울려볼 수 있는 기회다.

스스로에게 질문할 시간.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타인의 부름에 답하기 위해 존재해왔던 내가, 이제 스스로에게 답할 차례다.


이 고요 속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혹은 미뤄뒀던 일을 하거나,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 시간은 채워야 할 공백이 아니라, 온전히 즐겨야 할 충만함이다.


초인종이 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나에게 '잠시 멈춰 서서 너 자신에게 집중해 봐'라고 속삭이는 순간일 수 있다.

내 가치는 외부의 '딩동' 소리로 측정되지 않으니,

고요 속에서 단단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하고 용기 있는 태도다.


초인종이 잠잠한 하루를 두려워하지 말자.

오히려 그 고요를 만끽하자.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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