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황색 간접등으로만 빛을 낸 카페의 내부이지만 전면 통유리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내부를 충분히 밝게 만든다. 커피를 받은 후 카페 중간쯤 위치한 자리에 앉아 책을 읽다가 전면이 보이는 뒤편 소파 좌석으로 옮겼다. 아무래도 나무의자의 시원함도 좋지만 한여름에도 적절한 냉방을 유지하는 카페에서는 폭신한 패드가 있는 의자를 선호한다.
재택의 즐거움. 처음 재택을 할 때는 보이지 않는 감시인에 쫓기듯 일분일초 쉬지 않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스스로의 일을 증명했다. 그리고 재택 2년 차,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회사에서의 연차가 쌓인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 마음가짐이 크게 변했다. 주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이 즐겁도록 시간을 활용하는 것, 삶의 본질에 집중하자 잡념이 없어지고 한 시간, 일분이 모두 나의 시간으로 느껴져 그냥 흘러 보내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이러한 태도 변화의 이면에는 체념의 정서도 일부 포함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조금 더 좋게 표현하자면 해탈 정도. 어차피 나의 행위가 기대했던 것에 충분히 미치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면, 나의 기대가 시스템으로 막혀 있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면 거대 담론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 조그마한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통찰에 이르렀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고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일들에 시간을 투자해나가는 행위. 그것이 일탈이더라도 스스로를 여유 있게 풀어준다.
오늘 아침에 함께하는 책은 이연의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휴가차 제주에 갔다가 들린 독립서점의 서가에서 발견해 즐겁게 읽고 있다. 나보다 10년(?) 정도는 어린 분인 것 같은데 삶에 대한 통찰이 대단하다. 나이 불문하고 이런 사람들을 ‘어른’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물의 세월을 보내 육체의 늙음만 얻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얻을 호칭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그냥 단어의 사회적 함의 없이 뜻글자 그대로의 ‘노인’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할 듯싶다.
여유로운 아침의 카페에서 잠시 쓸데없는 사고에 빠졌다. 어제의 퇴근길에는 아주 마음에 드는 음악을 찾았다. 따끈따끈하게도 바로 어제! 새 앨범 broken kaleidoscope를 발표한 니브의 escape! 기타 스트럼 스타일 연주와 베이스의 중저음 리듬이 아주 아주 아주 마음에 쏙 들어와 오래간만에 주변 신경 쓰지 않고 헤드셋의 볼륨을 한껏 높여봤다. 이런 노래를 들을 때면 신나게 기타를 가지고 놀고 있는 나를 상상하게 된다. 예전엔 그 리듬 자체에 심취해서 밤새 기타를 안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그런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곧 출근 시간이다. 여전히 여유 있는 아침의 카페를 조금 더 즐기고 올라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