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전

한 걸음 더, Waltz - 윤상

by Hache

뭔지 모를 시간들이 또 지나간다. 살아보니 별거 없더라고. 엄마에게 얘기했다. 엄마는 크게 동의했다. 별게 있는 것 마냥 교육에 열을 올렸던 사람이라 의외였다. 남쪽 나라에서 돌아오는 기차 창 밖은 시꺼멓기만 했다. 간간이 보이는 먼 가로등 외엔 온통 어둠뿐. 깜빡 잠들었다 눈을 뜨니 다음 역이 내릴 곳이었다. 벌써란 생각에 아쉬워졌다. 좀 더 느리던 시절에는 완행열차로 다섯 시간 반, 시외버스로는 네 시간 정도가 걸려 돌아왔던 길이다. 자고 일어나도 시간이 충분히 남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 밖에 지나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곤 했다. 그럴 때면 마음이 편했다. 그곳에서만 마음이 편했다. 출발하기 전도, 도착하고서도 늘 편치 않은 마음만 안고 살다가 지나치는 잠시잠깐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여행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걷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저 마음이 편하려면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하는 운명이란 걸 직감했다. 그걸 옛날엔 뭐 래더라…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운명. 역마살. 아마 운명일 것이리라.


2024년이 5일 남았다. 어수선한 나라꼴과 내 꼴이 비슷해서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위안을 받게 되는 서른아홉 번째 해넘이. 아무것도 기대되지 않는 2025년은 또 별생각 없이 지나가버릴까 슬몃 두렵기도 하지만 이젠 체념에 가까운 정서가 됐다. 사람이야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불혹이 가까워오니 생전 듣지 않던 윤상 노래를 듣게 된다.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냐. 위로가 되지만 위로가 될 수 없는 어른의 삶. 어른의 삶. 왈츠처럼 우아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서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


답지 않게 12월 들어 청춘 애니메이션 한 시즌을 다 보게 됐다. 스킵과 로퍼. 오롯이 스스로만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는 학창 시절. 순간의 아름다움을 상경한 시골 소녀의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나의 학창 시절은 잔혹동화에 더 가까웠기에 공감이 되진 않았고, 부럽다는 감상이 지배했다. 다음 생이 온다면 기꺼이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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